사물이 말을 한다면 #4 노매드, 스마트폰

오늘로 몇 번째일까? 그 누구라도, 안전 장치 없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일은 살면서 정말 간혹 겪는 일 아닌가? 자칫하면 몸이 다 부서지는 이 상황을 난 하루에도 몇 차례나 겪는다. 아침에는 식탁에서 떨어졌고, 조금 전에는 소파에서 한 바퀴 굴러 떨어졌다. 이렇게 매일 떨어지다가 조만간 큰 일이 벌어질 것이다. 분명하다. 난 내 운명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까맣고 납작하고 네모나다. 크기는 성인의 손바닥 정도. 내 외형은 이정도의 설명으로 끝이 난다.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한 모습과 달리 나에겐 복잡한 사연이 있다. 3년 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나를 소유했던 주인은 무려 세 명이다. 평균적으로 한 사람과 1년 2개월의 시간만 보내고 또 다른 사람에게로 넘겨지는 일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했다. 정착과 안정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내 환경은 계속 바뀌었고 불안정했다.

첫 번째 주인

나의 첫 주인은 젊은 남자였다. 그는 전자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침대와 책상, 책장으로 가득 찬 작은 방에는 각종 전자제품 박스들이 쌓여있었다. 바닥, 책상 위, 책장 위, 공간이 비는 곳 여기저기에 크기가 다른 네모반듯한 박스가 많았다. 그는 전자 제품을 구입하면 박스를 열기 전부터 사진을 찍었다. 박스를 열며 찰칵, 제품을 꺼내며 또 찰칵. 새로운 제품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다 찍었다. 구입한 제품의 전원을 켜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일본에서 데리고 왔다. 도쿄 시내의 매장에서 직원을 통해 예약을 하고 구입했다. 그가 나를 구입했을 때 한국에서는 나와 같은 모델이 아직 출시되지 않은 때였다. 그는 그 사실을 즐겼을 것이다. 모두가 출시 날을 기다리며 신제품을 손에 쥐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한 제품에 대한 갑론을박이 온라인에서 이어질 때, “구입했습니다.”라는 말을 던지는 일. 그것은 마치 불이 붙고 있는 장소에 기름을 붓는 기분이 아닐까? 나의 말과 행동이 이 상황을 더 뜨겁게 한다. 누구보다 빠른 나의 선택을 사람들이 주목하고 궁금해 한다. 나의 한 마디가 그들을 안달나게 한다. 여기서 느껴지는 희열…. 아마도 이런 심리가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나에대한 그의 관심은 지속되지 않았다. 나를 파헤치듯 상세하게 촬영하고 관찰하던 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10주년 기념으로 나와 거의 동시에 출시된 다른 제품에 그는 곧장 관심을 돌렸고 나는 책상 위에 얌전히 놓여있게 되었다. 대체 그는 나를 왜 구입했을까? 나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의 행동이 처음엔 상처로 다가왔다. 하지만 책상 위에서 그를 지켜보며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는 대부분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신제품을 누구보다 빠르게 구입하고 경험해보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제품은 기존 제품보다 조금씩 업그레이드 된 새로운 기술이 적용이 되어 출시된다. 화면이 좀 더 커졌대. 카메라가 하나 더 생겼어. 버튼을 없앴대. 뒷면은 유리래.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의 적용에 관심이 많다. 얼마만큼 진보했을까? 우린 또 어떤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까? 나의 몸은 기술을 보여주는 무대다. 기술이 그리는 새로운 세상의 시뮬레이션을 펼쳐 보이는 무대인 것이다.

두 번째 주인

두 번째 주인에게로 간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첫 주인은 쌓여있던 박스더미에서 나를 포장했던 박스를 가지고 왔다. 단단하고 반듯한 하얀 박스와 플라스틱 통 안에 얌전히 말려있는 이어폰, 그리고 나를 책상 위에 나란히 놓더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온 당근! 당근! 소리. 난 그 소리를 안다. 그가 주로 사용하던 휴대폰에선 자주 그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나고 몇 몇 제품들이 다시 재포장 되어 봉투에 담겨 주인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봤다. 이번엔 그 소리가 나를 향해있다는 걸 알아챘다. 다음 날 나는 박스 안에 담겨 작은 종이봉투에 넣어졌고 주인의 손에 들려 밖으로 갔다.

“혹시… 당근?”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 맞아요. 제품 여기 있어요. 박스 안에 이어폰이랑 다 들어있어요.”
“한번 꺼내봐도 되죠?”

낯선 목소리가 내가 들어있는 박스를 들었고 뚜껑을 열었다. 아, 얼마만의 바깥공기인가! 박스의 뚜껑을 여는 그 순간. 오랜만에 느낀 바깥의 공기와 소음. 그리고 낯선 목소리, 낯선 손길, 낯선 얼굴이 뒤섞여 결코 잊히지 않는 장면이 되어 내 머리 속에 각인이 되었다.

“정말 깨끗하네요….”
“네 사고 거의 안 썼어요.”
“지금 바로 입금해드릴게요. 계좌 좀….”

당근. 계좌. 나는 별 다른 과정 없이 간편하게 두 번째 주인에게로 소유 이전되었다.

“야, 나 폰 박살났잖아. 우리 딸이 양치한다고 보고 나오다가 화장실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그게 어떻게 떨어졌는지 액정 산산조각 나고 모서리는 찌그러지고… 에휴, 화딱지 나서. 당근에 거의 안 쓴거 올라와 있길래 그냥 질러버렸어.”

누군가와의 전화 통화 내용을 통해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주인은 나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갑작스레 나의 존재 위상이 180도 달라졌다.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이전과 다르게, 이제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나를 잡았고, 눈을 감을 때에야 나를 놓았다.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집 안에서 많은 일을 했다. 집 안의 다른 가족들을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내보내고. 사람들이 다 집에서 나가면 사물들의 아우성이 시작된다. 설거지통에 쌓인 그릇을 닦고 빨래통에 가득한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출처 불분명의 먼지를 쓸고 닦고. 나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녀와 항상 함께 했다.

요리를 할 때 나를 들여다보며 요리 재료나 방법을 확인했고, 설거지를 할 땐 드라마를 틀어서 벽에 기대어 두었고, 화장실에도 들고 들어갔다. 청소를 할 때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고 주기적으로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돌아다니다 가까이 와서 화면을 터치하며 확인을 하기도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에는 나를 손에서 꼭 쥐고 소파에 등을 붙이고 누웠다.

나는 어떤 통로였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집 안이 아닌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청소만 하는 자아가 아닌 또 다른 나의 자아를 찾으러가는 통로. 그는 나를 통해 잠시 갑갑한 집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를 통해 사회적 자아를 찾을 수 있었다.



세 번째 주인

그의 딸은 6살이고 유치원생이었다. 딸은 주인의 모든 행동을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따라하고 싶어 했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면 본인도 주방 놀이 장난감으로 설거지를 하고, 엄마가 자신에게 하는 것 처럼 본인도 인형을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고 토닥토닥해주었다. 엄마의 물건들로 시간을 보내는 건 최고의 놀이였다. 옷장을 헤집어 엄마 옷을 꺼내서 입어보고, 엄마 화장대에 있는 형형색색의 화장품으로 얼굴을 꾸며댔다. 하지만 모든 소유물 중 가장 탐내는 것은 바로 나였다. 엄마가 항상 손에 쥐고 다니는 나를 딸도 가지고 싶어 했다. 게다가 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안에 꿈과 환상의 나라가 숨어있다는 것을! 특히 시크릿쥬쥬! 나를 통해 아름다운 언니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딸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엄마가 나를 두고 잠시 자리를 이탈하거나 엄마가 기분이 좋아 보일 때 슬며시 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손으로 나를 들고 다니다 놓쳤고 하필 현관 바닥에 떨어졌는데 동시에 오른쪽 아래 두 갈래의 굵은 금이 그어졌다.

“아악! 또 떨어뜨렸어? 어디 봐, 아…… 또 금갔잖아. 엄마가 뭐라 그랬어! 들고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너 진짜 너무한다!”

나는 이 일이 있고 세 번째 주인, 6세 딸의 손으로 인계되었다. 이제 곧 7살인데, 어차피 학교에 입학하면 스마트폰이 있어야 하고 그렇다고 새로 사기에는 이르니, 액정만 깨졌지 별 문제가 없는 나를 보호 필름으로 단단히 붙여서 쓰라는 논리였다. 뭐 이참에 내 두 번째 주인은 새 휴대폰을 사고 싶었을 수도 있다.

나의 세 번째 주인은 손이 너무 작았다. 어떤 것을 잡는 악력이 아직 약하고 물건을 주의깊게 다루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나를 계속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쥐고 다니다가 바닥에 쿵. 식탁에 올려놨다가 팔꿈치로 쳐서 쿵. 소파에서 뛰다가 바닥으로 튕겨나가서 쿵.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쿵. 바닥으로 낙하한다.

그럼에도 나의 세 번째 어린 주인은 나를 좋아한다. 카메라를 켜서 찰칵 찰칵 사진도 찍어보고, (엄마의 허락 하에) 빨간 네모 속에 작은 세모가 그려진 버튼을 눌러서 비밀스러운 세계에 흠뻑 빠져든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괴물이 입 속의 세균을 잡아내는 영상을 보며 3분 동안 이를 닦기도 한다. 호랑이가 곶감이 무서워 달아나는 옛날이야기를 읽어주는 느릿느릿한 목소리를 틀어놓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나는 노매드

언젠가 들었던 단어. 정체성. 그건 아마도 첫 번째 주인의 책상 위에 놓인 만년필이 한 말이었다. 그는 우리를 종종 조롱했다.

“너넨 정체성이 없어, 정체성. 나에겐 역사가 있거든. 난 공장에서 찍어낸 너네랑 달라.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고. 내 펜 촉은 뭔지 아냐? 금이라고 금.”

너무 노골적인 조롱을 들으면 아무런 느낌이 없다. 다른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주인이 손을 대지 않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 혼잣말로 스스로의 가치를 붙들어 매려는 노력이 오히려 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정체성이라는 말은 나에게 스며들어와 작은 울림을 일으키며 내 안을 맴돌았다. 계속 주인이 바뀌며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그 말은 더 선명해졌고, 질문을 만들었다.

정체성. 정체성이라는 게 있다면 난 정말 정체성이 없나? 사람들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중요한 게 나인지 다른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나에게서 펼쳐지는 새로운 기술이 더 중요해보이기도 했고, 나를 통해 만나는 다른 세상이 더 중요한 것도 같았다. ‘당근’ 소리로 간편하게 소유 이전된다는 건, 내가 아닌 다른 휴대폰이 내가 있던 자리를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친 손, 부드러운 손, 작은 손을 전전한 나의 생. 손에서 또 다른 손으로 쉽게 넘겨지며 빠르게 대체되어 버리는 존재에게 정체성은 신기루 같다. 그것은 우리를 지칭하는 ‘스마트폰’이라는 단어에만 존재한다. 개별자인 난, 그저 나를 만지는 손길을 따라 흘러간다. 물론 내가 선택한 삶은 아니지만 그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고 정착하지 않는 나를, 노매드라 불러주길. 기능을 잃고,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열지 못할 그때까지 나의 흘러가는 생이 누군가에게 일상을 지속하는 힘이 되기를.

Designflux 2.0 Essay Series 
사물이 말을 한다면⟫ 채혜진

사물의 일대기를 상상하는 일을 통해 우리의 일상 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것은 사물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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