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잇템 #4 수족관 : 내 작은 유토피아


(좌) @Jungmin Choo / (우) @Mincheol Jang

처음 수족관이 집에 들어왔을 때를 기억한다. 거실 TV 옆에 직사각형의 유리 수조를 놓고, 모래와 자갈을 깐 다음, 관상용 수초를 여기저기 배치하고, 온도계와 여과장치 등을 설치하고 나면 거대한 예술 작품을 놓은 것 마냥 집의 품격이 높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수족관 자체를 가꾸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가장 즐거운 일은 수족관에 살게 될 열대어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지금은 주로 대형마트 한쪽에 자리한 수족관 코너에서 열대어를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열대어를 판매하는 상점이 곳곳에 존재했다. 생명체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화려한 색상의 열대어들은 참 쉽게도 초딩의 마음을 빼앗았다. 엄마 아빠와 함께 선택한 열대어들은 물이 담긴 투명한 비닐 속에 담겨 집으로 함께 이동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혹시나 비닐이 터지진 않을까 마음 졸이던 시간은 지금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정용 수족관을 기르는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아파트를 중심으로 생겨난 새로운 취미 생활이었다. 중산층 가정에 수족관을 놓는 것이 유행되면서, 청계천에는 수족관 전문 상점이 60곳이나 생기기도 했다.[1] 중산층의 거실에 수족관이 놓이는 이유는 다양했다. 1988년 월간지 <행복이 가득한 집>은 ‘바다가 있는 우리 집’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집 안에 수족관을 설치하는 행위를 ‘집 안의 습도를 맞춰서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해주고,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신비함과 탐구력, 관찰력을 길러줄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정서를 순화해주고 스트레스 완화를 시켜주는 등 수족관은 장어나 추어탕만큼 대단한 효능을 갖춘 것이었다.

수족관 관련 기사 <행복이 가득한 집> 1988년 2월호

사실 습도를 맞추기에는 가습기가 훨씬 더 효율적이고, 자녀들에게 탐구력과 관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현장 체험만 한 것이 없다. 정서 순화와 스트레스 완화는 같은 시기 유행했던 오디오의 역할에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기사에서 설명하는 수족관의 효능이 수족관을 꼭 두어야 하는 이유가 되기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다.

수족관은 집에 놓기 번거로운 점도 많았다.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청소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벽에 쌓인 이끼를 제거하고, 더러워진 물을 갈아주는 일은 보통의 가사노동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열대어들의 밥을 챙겨줘야 하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았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거실 한쪽을 자리하게 만든 수족관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수족관은 한 영화 속의 마을을 닮아있다. 이 마을 사람들의 생김새는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넘어갈 수 없는 한계선 속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간다. 마을은 ‘원로’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운영된다. 정해진 옷과 정해진 교통수단, 정해진 가족 구성원들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통제된 기후 속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나간다. 다른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경을 위한 조립식 나무만이 있을 뿐이다. 그곳에는 서로 경쟁을 할 필요도,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이 마을 속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구성된 완벽한 사회 속에서 어떠한 모험도, 위험도 없는 편안한 삶을 보장받고 있다.

영화 <더 기버 : 기억 전달자>[2]에 묘사된 이 완벽한 마을 속 사람들은 철저한 통제 속에서 개인 간의 차이가 없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다. 패자도 승자도 나오지 않는 무경쟁의 사회는 무한 경쟁 사회에 속한 현대인들에게는 얼핏 유토피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곳에는 무질서나 혼란, 고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며 생기는 변화 외에는 언제나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삶은 항상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감정이 폭풍처럼 몰려오기도 하고, 우연의 끝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러한 일들은 일상의 평화를 깨뜨린다. 깨뜨려진 평화는 새로운 즐거움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그 파동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를 마냥 반기지 않는다. 사회 속의 ‘나’에게 변화는 성가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정적인 삶은 원하면서도 무료한 삶은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사회 속의 ‘나’와 개인으로서의 ‘나’가 충돌되었을 때 발생한다. 우연히 빠져든 가수의 덕질을 시작할 때, 첫눈에 반한 이상형을 만났을 때 개인의 무료함은 해소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안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방해받는다. 평온하고 안정적인 일상은 사회 속 ‘나’를 위한 바람이었던 것이다.

사회 속 나의 모습은 사회가 바라는 구성원의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 속 원로들이 만들어 놓은 마을은 개인이 원하는 삶보다는 원로들이 원하는 삶에 가까웠다. 그들은 통제되는 사회가 철저하게 옳다고 믿어왔다. 그들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낭만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닌, 농작물을 망치는 주범일 뿐이었다. 기후 변화가 불러오는 이슈들은 한 개인에게는 추억이 될 수도 있지만, 관리자의 입장인 원로들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기만 했다. 결국, 언제나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일상의 최대 수혜자는 영화 속 원로,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권력자들이었던 것이다.

통제된 사회는 그 통제가 지속될수록 권력의 힘을 더한다. 사회 속 구성원들은 오로지 권력자들이 그리는 그림의 엑스트라로 작동할 뿐이다. 영화 속 원로들이 통제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내는 동안 마을의 사람들은 그저 그 이유에 수긍할 뿐이었다. 자신들의 생존이 원로들에 의해 결정되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인간의 통제가 불가능한 자연이라는 영역이 수족관이라는 작은 마을 속에서는 가능해진다. 먹이를 주는 손길을 따라 움직이는 물고기들의 생명은 오로지 수족관 주인의 판단에 달려있다.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선사하는 통제 가능한 권력! 그러한 권력은 ‘집 안의 습도를 맞춰서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해주고,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신비함과 탐구력, 관찰력을 길러줄 수 있는 것’이라는 합리적인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이 반복되는 수족관을 만들어냄으로써 비로소 집안의 환경과 아이들의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는 완벽한 중산층 가정이 완성된다. 언제나 같은 상태로 거실의 풍경을 만들어주는 수족관이라는 유토피아의 주인공은 수족관 속 물고기들이 아니었다. 그 작은 유토피아를 만들어낸 중산층이었던 것이다.


[1] 2014년 개봉한 영화로 1993년 출간된 로이스 로이의 소설 『더 기버 : 기억 전달자』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2] 조선일보, ‘관상어-수조 등 청계7가 수족관 상가 전문 가게 60곳’, 1993.03.29, 15면

Designflux 2.0 Essay Series
중산층의 잇템 : 90년대 가정의 디자인문화⟫ 양유진

중산층의 시대. 그들의 집에 자리한 ‘필수 아이템’은 무엇이었는지, 그 물건들은 왜 ‘필수 아이템’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며 그 시절 디자인문화를 들여다본다.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에서 《90년대 한국 중산층 가정의 디자인 문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디자인문화를 기반으로 한 기획, 강의, 연구 등을 한다. 공저로 《디자인 아카이브 총서2 세기 전환기 한국 디자인의 모색 1998~2007》가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디자인학부 강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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