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잇템 #2 토스터 : 취향의 재구성

2015년 출시된 발뮤다 토스터

319,000원. 집에서 빵을 구워 먹는 가전치고는 비싼 금액이었다. 2015년 국내 출시된 발뮤다 토스터는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다소 섬뜩할 수 있는 입소문을 타고 그 입소문만큼 무서운 가격으로 토스터 시장을 잠식해갔다.[1] 소위 말하는 ‘빵순이’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나는 차라리 그 돈으로 1년 치 갓 구운 빵을 사 먹는 편이 훨씬 나아 보였다. 죽은 빵을 살려낸다는 토스터의 금액은 배보다 배꼽이 큰 수준을 넘어서, 수박보다 수박씨가 큰 수준이었다. 죽은 밥을 살려내거나, 죽은 떡을 살려내는 전용 가전 따위는 있지도 않다. 빵은 이런 면에서 어떤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쌀이 없어서 못 파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칼로리 높다는 둥, 영양이 부족하다는 둥 소외 당하고 있는 ‘흰 쌀밥’은 한때 밥상 위의 로망이었다. 빵의 특혜는 쌀이 귀했던 시절, 흰 쌀밥을 대체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62년 11월 시작된 ‘혼⋅분식 장려운동’은 밥상의 로망이었던 쌀밥 대신 밀가루 음식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혼⋅분식으로 식생활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부 궐기 대회에서는 ‘쌀밥 편식’을 지양하기 위해 밥에 15% 이상의 잡곡을 섞고, 주 3회 이상 분식을 해야 하며, 혼⋅분식을 하지 않는 요식 업체는 방문하지 않아야 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2] 로망이었던 쌀밥 중심의 식단이 ‘편식’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1971년 식생활 개선 전국 주부 궐기대회
조선일보, 1971.08.07

분식은 주로 국수, 라면, 빵과 같은 밀가루 음식을 말한다. 가뜩이나 밀가루 예찬론이 펼쳐지던 시기 빵에는 ‘서양의 식문화’라는 환상까지 더해졌다. 1971년 삼미식품은 ‘분식을 주식으로 하는 구미 사람이 키와 몸무게가 동양 사람보다 월등히 크고 건강한 이유는 빵의 주성분인 밀가루 덕분’이라고 광고하기도 했다.[3] 특히 식빵은 단팥빵이나 크림빵과 같은 간식용 빵과는 달리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양의 주식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구운 식빵은 더욱 특별했다. 조리법에 따라 건조하게 이름 붙인 찐빵, 건빵과는 다르게 ‘토스트’라는 세련된 이름도 가진다. 1974년 매일경제 기사에서는 토스트가 무려 고급음식에 포함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요즘 단백질, 지방질을 많이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 많아 60대가 50대로 보이고,
50대가 40대로 보이는 등 많이 젊어졌다. 
이들 고급음식들이 세포를 갈아 끼워줬기 때문이다. 
돈만 벌면 며칠 후부터 식생활마저 서양화한다. 
토스트, 돼지고기, 밀크를 마구 먹고 마시는 것이다”[4]

세포를 갈아 끼워 준다는 말 자체도 어딘가 거북하지만, 세포를 갈아 끼워 주는 ‘고급음식’ 목록에 토스트가 끼어있는 것은 결혼식장의 트레이닝복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토스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시 부자들이나 하는 서구식 고급음식 목록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구식 고급음식인 토스트를 먹기 위해 가정에 토스터가 하나둘 놓이기 시작할 무렵, 외국산 토스터를 견제한 국산 토스터가 출시됐다. 1970년 출시된 금성사의 GT60-A 토스터는 식빵이 다 구워지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거나, 두께에 따라 굽기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토스터의 기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름의 기능을 갖춘 이 토스터는 6,550원에 판매되었다.[5] 1970년 자장면 가격이 100원, 영화 관람 요금이 200원이었음을 고려하면, 당시 토스터는 지금의 발뮤다 토스터 못지않은 비싼 금액의 가전이었다. 

아파트로 시작된 입식 생활은 부엌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내부로 들어온 음식 조리 공간은 반짝거리는 싱크대와 함께했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바빴던 밥상 대신 고정된 식사 장소를 제공하는 식탁이 자리했다. 그러니까 6~70년대 아파트로 이동한 중산층은 서구식 입식 부엌에서, 서구식 고급 가전과 함께 서구식 고급음식인 토스트를 즐겼던 것이다. 토스터는 이러한 움직임에 화답한 부엌 가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식탁의 변화가 늘 환영받던 것은 아니었다. 1976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는 이 시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산층 가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과음 후의 시장기로 배 속이 무두질하듯이 쓰리다. 부엌에 식탁 놓고 식사하는 문화생활만 해도 아직도 서툴고 과람한데 언제부터 아침 한 끼 토스트 조각까지 먹게 되었더라? 
오라, 그러니까 그게 바로 초희가 은행 그만두고 집안일을 거든답시고 집에 있고부터고나. 
어쩌면 오래오래 아침에 토스트를 먹게 될지도 모르겠다. 허성 씨는 그게 끔찍스럽고 절망스럽다” [6]

끔찍스럽고 절망스러웠던 아침 한 끼 토스트는 소설 속 초희가 가정을 이뤘을 무렵인 90년대 중산층의 확산으로 보편화된 아침 식사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다양한 토스터가 등장한 시기도 이 무렵이다. 발뮤다 토스터와 비슷한 형태의 오븐 토스터가 출시되는가 하면, 식빵 끝을 봉합해 내용물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는 샌드위치용 토스터가 출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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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가득한 집, 1991.02월호

1991년 출시된 샌드토스터 ‘모닝쉐프’는 이름 그대로 아침 식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작은 행복은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가능합니다. 작은 행복을 연출하세요. … 좋은 하루는 좋은 아침에 시작됩니다.’라는 문구는 토스트와 함께하는 아침이 일상의 행복을 열어줄 것만 같이 느껴진다. 맛있는 음식은 분명 일상의 행복을 준다. 특별한 급식 메뉴가 점심시간을 기다리게 만들고, 냉장고에 대기 중인 한우가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토스트가 그 정도의 행복을 줄 수 있는 음식일까? 맛있는 것이 넘쳐나는 지금은 행복을 제공하는 음식으로 토스트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음식의 취향은 내가 살아온 환경을 드러낸다. 새로운 중산층에게 하루 세 번 식탁을 구성하는 음식은 새로운 계급을 확인받게 해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전 시대 서구식 입식 부엌에서, 서구식 고급 가전과 함께 서구식 식문화를 즐겼던 중산층의 그것이 90년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확산된 중산층의 자기 존재 확인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의 확인은 단순히 토스트와 같은 서구식 아침을 먹는 것에 그치는 일은 아니었다. 

음식을 먹는 것과 먹을 줄 아는 것은 다르다. 음식이 우리의 입을 거쳐 소화기관으로 향해가는 것이 음식을 먹는 것이라면, 음식을 먹을 줄 아는 것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내포한다. 그 음식을 먹기 위한 적절한 도구를 아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음식의 맛을 최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조리 과정과 타 재료와의 조합도 숨 쉬듯 나열할 수 있어야 한다. 먹을 줄 안다는 것은, 진정 그 음식의 문화를 체득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체득은 그 과정을 모르는 집단과의 구별짓기이자, 그 과정을 모르던 스스로와의 구별짓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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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익숙한 토스터의 형태 / 조선일보, 1994.02.07

네모난 기계 속에 규칙적으로 잘린 식빵을 넣고, 내가 원하는 굽기를 찾아 온도를 조절한 후 식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린다. 빵집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고소한 향이 부엌을 채우기 시작하면 잘 익은 식빵 두 조각이 툭 하고 무심하게 튀어 오른다. 한층 바삭해진 식빵 겉면에 각종 잼과 토핑을 추가하면, 어느새 식탁은 테이블이 되고, 부엌은 키친이 된다. 집 안에 놓인 토스터는 이 가정이 서양식 식문화를 체득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토스트를 즐겨 먹는 취향은 바뀌어버린 생활 환경과 계급을 드러낸다. 누구나 집에서 토스트를 즐길 수 없던 시절, 토스터는 타자와의 구별을 통해 행복을 주는 사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시간이 흘러 누구나 토스트를 즐길 수 있는 지금, 토스터는 또 한 번의 구별짓기를 시도하고 있다. 죽은 빵도 살려낼뿐더러, 겉은 더 바삭하고, 속은 더 촉촉한 토스트를 즐기는 취향을 가진 존재의 확인. 발뮤다 토스터의 인기는 90년대 토스터의 그것과 꼭 닮아있다. 

[1]  2015년 11월 국내 출시 당시 발뮤다 토스터의 가격은 319,000원이었다. ‘발뮤다 갓 구운 빵 재현한 ‘발뮤다 더 토스터’ 국내 출시’, 국민일보, 2015.11.11,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053261 (검색일 : 2021.05.27)

[2]  ‘혼분식으로 식생활 개선’, 조선일보, 1971.08.07, 2면

[3]  ‘[이상헌의 광고풍속도] ⑪ 혼·분식 장려 운동’, 2019.03.14, http://mobile.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031318450199828 (검색일 : 2021.05.30)

[4]  ‘식품과 영양 “지방질·단백질 과다 섭취는 해롭다”’, 매일경제, 1974.09.14., 8면

[5]  ‘자동토스터’, 매일경제, 1970.05.21, 4면

[6]  박완서, 휘청거리는 오후, 세계사(e-book), 2012(동아일보 연재 당시 1976년), p.154

Designflux 2.0 Essay Series
중산층의 잇템 : 90년대 가정의 디자인문화⟫ 양유진

중산층의 시대. 그들의 집에 자리한 ‘필수 아이템’은 무엇이었는지, 그 물건들은 왜 ‘필수 아이템’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며 그 시절 디자인문화를 들여다본다.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에서 《90년대 한국 중산층 가정의 디자인 문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디자인문화를 기반으로 한 기획, 강의, 연구 등을 한다. 공저로 《디자인 아카이브 총서2 세기 전환기 한국 디자인의 모색 1998~2007》가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디자인학부 강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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