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적 디자인 #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어느날 타임라인에 새로운 아이돌이 나타났다.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레드벨벳, 오마이걸, (여자)아이들과 같은 ‘여돌’[1]을 선호한다. 그런데 뉴페이스는 웬일로 ‘남돌’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매력을 가진 그룹이길래 강경 여돌주의자들의 틈을 뚫고 최신 아이돌에 일자무식인 내게까지 이름을 알려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새롭게 익힌 이 아이돌의 이름은 ‘테스타(TeSTAR)’였다. 처음 들었을 때 맡은 것은 ‘망돌’의 향기였다. 내가 연예기획사 사장이라면 절대 짓지 않을 것 같은, 5분 만에 지은 듯한 이름이었다. 그룹명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팬아트뿐, 좀처럼 실물을 만날 수가 없었다. 데뷔하자마자 팬아트가 넘쳐날 정도로 인기가 많은 대형 신인도 몰라볼 만큼 벌써 구세대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전말은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그들은 처음부터 실존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테스타는 올해 초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되기 시작한 웹소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백덕수 작. 이하 《데못죽》)에 등장하는 보이그룹의 이름이다. 《데못죽》은 웹소설의 수많은 장르 중 현대판타지, 그중에서도 요즘 흥한다는 ‘아이돌물’로, 현재 236화까지 게재되었다. 236화나 되는 소설을 독파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테스타의 팬클럽 ‘러뷰어’들이 정리·배포한 방대한 자료들을 찾을 수 있었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 2021. kwbooks

소설의 골자는 이렇다. 어느 날 아이돌 연습생 ‘박문대’의 몸에 빙의한 한 4년차 공시생이 눈앞의 상태창으로부터 ‘데뷔를 하지 못하면 죽는다’라는 미션을 받는다. ‘프로듀스101’과 비슷한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 주식회사〉에 출연한 박문대는 데뷔의 꿈(?)을 향해 달리면서 작중의 비밀도 파헤쳐 나간다. 공시에 네 번 낙방하고 생판 남의 몸에서 눈을 뜬 것도 어안이 벙벙할 텐데 이제 ‘돌시’까지 쳐야 한다니,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설정이다. 아무튼, 고난과 역경을 거쳐 박문대는 7인조 아이돌 그룹의 메인보컬로 데뷔하는 데 성공한다. 그 그룹의 이름이 바로 ‘테스타’인 것이다.

“4년차 공시생, 낯선 몸에 빙의해 3년 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나타난 갑작스러운 상태창의 협박!
[돌발]
[상태이상: ‘데뷔가 아니면 죽음을!’ 발생!]
돌연사 위협 때문에 팔자에도 없던 아이돌에 도전하게 된 주인공의 대환장 일지.
※특이사항: 빙의 전 아이돌 데이터 찍어다 팔았었음”[2]

소설의 제목으로 보나, 상태창의 미션으로 보나 박문대가 데뷔에 성공한 시점에서 이야기가 끝날 듯싶으나, 이는 1차 관문일 뿐이다. 박문대는 데뷔 후 상태창으로부터 또다른 미션을 받게 되고, 선아현(메인댄서), 이세진(댄스라인), 배세진(비주얼 담당), 류청우(리더), 김래빈(메인래퍼), 차유진(센터) 등 멤버들과 함께 ‘테스타’로 활동하며 아이돌의 삶을 무사히 영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텍스트 아이돌

내가 팔자에도 없는 가상 아이돌을 알게 된 경위는 단순하다. 몇 주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대체 그 《데못죽》이 뭐냐’면서 사라졌다. 그렇게 타임라인에서 종적을 감춘 사람들은 며칠 뒤 ‘#테스타는_실존한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나타났다. 하나같이 순조롭게 자타공인 과몰입 오타쿠가 된 것이다.

소설이나 만화 속 가상인물을 덕질하는 것 자체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테스타가 첫 번째 가상 아이돌인 것도 아니다. 아이돌 또는 스타를 소재로 한 작품은 이전부터 셀 수 없이 많았고, 굳이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작중 인물에 대한 덕질에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당장 셜록 홈스만 봐도 150년 넘게 탄탄한 팬덤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배경이 되는 작품 없이 버추얼 스타 자체를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도 적지 않았다. 무려 1998년 데뷔한 사이버 가수 아담이 그랬다. 최근에는 게임 속에서 활동하던 아이돌이 실재하는 가수의 목소리를 입고 앨범을 발매해 화제가 되었다.[3]

(좌) 사이버가수 ‘아담’ ⓒ 1998. ㈜아담소프트, (우) 걸그룹 ‘에스파’ ⓒ 2021. SM Entertainment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가장 최근 아이돌은 2020년 ‘블랙맘바’로 데뷔한 에스파(aespa)다. 멤버 전원이 2000년대생인 에스파는 SM스러운 실험정신이 가득 담긴 콘셉트로 지극히 유영진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4인조(또는 8인조) 걸그룹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에스파의 멤버는 4명이지만, 이들에게는 각각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가상세계 아바타 ‘æ(아이)’가 있다. 멤버 ‘카리나’와 ‘아이 카리나’가 함께 활동하는 식이다. 비록 아이는 3D 모델링으로 존재하는, 0과 1로 만든 가상의 데이터지만, 아무튼 SM은 에스파의 멤버가 8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미 외계인도 데려다가 데뷔시킨 전적이 있으므로,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멤버 전원이 ‘텍스트’인 아이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전통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SM이 데뷔시킨 것은 실존하는 완전한 인물에 1:1 대응하는 가상 인물이다. 그러나 종합 콘텐츠 기업을 표방하는 신생 기획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데뷔시킨 것은 아예 원본이 없는 종이돌, 아니 ‘뷰어돌’이다. 아이 카리나에게는 카리나라는 원본이 있지만, 테스타 멤버들에게는 아예 ‘원본’이 없다. 작가가 글로 서술한 배경서사와 성격, 생김새 자체가 원본인 것이다.

게다가 비극적이게도, 러뷰어들은 테스타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없다. 《러브 라이브!》 같은 2D 아이돌이라면 애니메이션으로라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에스파의 경우, 팬들이 사랑하는 것은 ‘카리나’이므로 콘셉트의 일부일 뿐인 ‘아이 카리나’가 실존하든 실존하지 않든 그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러뷰어가 사랑하는 것은 원본이자 가상인 테스타 자체다. 무대를 볼 수 없는 아이돌을 깊이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테스타는_실존한다

테스타의 실존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감각할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 또는 사랑하는 대상을 감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테스타에게 주어진 문제가 아니다. 테스타를 사랑하는 러뷰어의 문제다. 따라서 이 문제는 러뷰어의 손에서 해결된다. ‘테스타는 실존한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테스타는 엄연한 존재자다. 테스타 자체가 비존재인 것이 아니라, 테스타라는 존재가 ‘부재’한 상황인 것이다. 부재는 채우면 된다.

《데못죽》은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까운 연예계와 팬덤문화 묘사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런 만큼 테스타에게는 자세한 신상정보부터 성장배경, 살아온 궤적, 인간관계, 취향과 성격, 적성과 능력, 일의 기쁨과 슬픔 등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데못죽》이 인기를 얻으면서 멤버 이미지가 삽화로 추가되어, 구체적인 얼굴까지 생겼다. 테스타에게 부재하는 것은 오로지 육체 뿐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에 삽입된 ‘테스타’ 멤버 삽화 ⓒ 2021. 텡(@clumsyoranges)

러뷰어는 숙련된 아이돌 덕질의 문법으로 이 육체의 부재를 채운다. 러뷰어의 특이점은 완벽하게 ‘3D 덕질’의 문법으로 ‘2D’를 덕질한다는 것이다.[4] 지나친 일반화일 수 있지만 2D 오타쿠는 작품 속의 세계를 대안적 세계로 인식하고, 그 안으로 몰입되어 들어가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러뷰어는 테스타를 《데못죽》 밖의 현실로 끌어내어 현실세계에 안착시킨다.

우선 작품 속에서 발매된 음반과 노래를 만든다. 음반의 재킷과 앨범아트, 포토카드까지 실물로 만들어 판매도 한다. 다종다양한 비공식 굿즈 생산은 물론이고 팬픽도 쓴다. 테스타 멤버들의 〈아이돌주식회사〉 성적과 방송 스케줄은 엑셀시트로 정리한다.[5] 급기야 ‘#테스타는_실존한다’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이들의 실존을 주장한다. 테스타에게는 실재하는 육체만이 없을 뿐, 아이돌에게 있을 것은 다 있다.

특히 러뷰어에게 굿즈는 여느 아이돌 팬덤에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굿즈는 덕후의 손에 쥐어지는 유일한 실체다. “굿즈는 원본을 그대로 복제한 것은 아니지만, 원본이 되는 대상을 대리하고 상징한다. 너무나 멀리 있는 인물이라서, 혹은 비물질적인 ‘콘텐츠’라서 사랑하는 대상을 직접 소유할 수 없다면, 그와 관련된 물건이라도 갖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6] 하물며 테스타의 경우라면 그 대리자로서 굿즈의 역할은 더 증폭된다.

러뷰어의 이러한 덕질 양상은 오히려 감각되는 ‘현상’이 부재함으로써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에게는 작화로 구현된 형상이 있어 현실세계와의 통합이 가로막힌다. 3D 아바타 역시 마찬가지이면서 때로 불쾌한 골짜기가 역효과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테스타에게는 렌더링된 가상 아이돌의 숙명인 불쾌한 골짜기가 없다. 삽화로 내보여진 형상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는 원본인 텍스트를 기반으로 구현된 2차적인 설명 이미지다. 게다가 아이돌 팬덤에 기존해 온 팬아트 문화는 ‘실제’ 테스타에서 삽화 테스타를 적당한 거리로 분리해 내는 데에 도움이 된다. 테스타를 모델로 생산된 공식 아트인 셈이다.

러뷰어가 디자인한 TeSTAR 앨범 ⓒ 2021. TEN(@Loviewer_ten)

감각할 수 없다면 감각할 수 있도록 2차적인 창작물을 만들어내면 된다. 2차 창작, 곧 모방 가능성은 원본의 실존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보이고 들리는 실체가 없다는 비극은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테스타는 순수한 이데아로 존재하면서, 일간지 사회면에 등장할 우려도 없는 완전하고 안전한 아이돌인 것이다.

주워들은 최신 아이돌 두 팀이 모두 반쯤 또는 완전히 데이터 인간이라니, 이제 실존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닐 수 없다. 테스타는 2D인가 3D인가? 현상계인가 실재계인가? 존재자인가 비존재인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모두 무의미한 것이다. 러뷰어는 매우 주체적인 방식으로 테스타를 경험하며, 경험 가능하게 만든다. 결국 아이돌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팬이라는 진리만이 남는다.

[1] ‘여돌’: 여자아이돌. ‘~돌’은 ‘~아이돌’의 약어로 쓰인다.

[2] 카카오페이지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작품설명. (https://page.kakao.com/home?seriesId=56325530)

[3]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 속 가상의 K-pop 걸그룹 ‘K/DA’

[4] 여기에서 ‘3D’와 ‘2D’는 덕질 용어로, 각각 실존 인물(주로 연예인)과 작중 인물(주로 만화·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을 가리킨다.

[5] 숭늉.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스탯, 스케줄 정리’. 포스타입 블로그 ‘Scorched’. 2021.02.27. (https://sricewater.postype.com/post/9327913)

[6] 최은별. 잃어버린 미스터케이를 찾아서.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2020. p.38

Designflux 2.0 Essay Series
주변적 디자인⟫ 최은별

동시대 디자인의 주변부. 디자인사에서 아직 누락되지 않았지만 분명 누락될 것들을 엄선한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디자인학을 전공하고, 2000년대 디자인 공공성 담론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메타디자인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 현재 제주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세기 전환기, 한국 디자인의 모색 1988~2007』, 『행복의 기호들: 디자인과 일상의 탄생』에 필진으로 참여했고, 전자책으로 『잃어버린 미스터케이를 찾아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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