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적 디자인 #1 가장자리를 밟고서

무엇이 주변적인가

익히 알려졌다시피 디자이너들은 열에 아홉쯤 비주류의 마음을 품고 산다. 창의성을 동력 삼아 먹고 사는 자들이 으레 그렇듯, 적지 않은 디자인계 사람들이 자기 감성과 작업이 조금쯤 마이너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한 태도가 디자이너의 자기발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므로 굳이 놀릴 필요는 없다. 다만 그러한 자아상을 모두 존중하자면 제도권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진행을 위해 무엇을 주변, 또는 비제도권이라고 부를 것인지 정해 두려 한다.

디자인에서 ‘제도’라는 경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질문에는 예술철학의 내용을 빌려올 수 있다. 이 학문의 주요 문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어떤 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이다. 제도론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인간이 만든 것 중 ‘예술계’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예술의 지위를 수여한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답한다.

예술제도론은 ‘예술계’에 대한 모호한 기준으로 실패하지만, 디자인의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구별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다. 제도란 결국 디자인계라는 경계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예술제도론자들은 예술제도 바깥의 것을 예술로 취급하지 않지만, 우리는 디자인제도 밖의 것도 얼마든지 디자인 영역으로 포섭할 수 있다. 그 전통적인 사례로는 버내큘러 디자인이 있다.

디자인을 생업으로 하거나, 월간 『디자인』 또는 계간 『그래픽』에 한 번이라도 이름(내지는 다니는 회사, 참여한 작업물)이 실렸거나, 「100 films 100 posters」에 참여한 적이 있다면 그는 제도권 디자이너다. 작업 스타일이 마이너하거나, 사업장이 영세하거나, SNS 팔로워 수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제도권에서 탈락했다면, 심심한 사과를 건넨다.

비제도권 디자이너가 되려면, 당연하지만 일단 디자인계에 적(籍)이 없어야 한다. 다수의 디자이너들이 그를 디자이너라고 인식하지 않거나, 혹은 존재 자체도 잘 몰라야 한다. 또한 디자인으로 먹고 산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 설령 실제로는 디자인 작업으로 생계를 꾸린다고 하더라도, 인식만큼은 그래야 한다. 사업자등록번호조차 없다면 비로소 적격이다. 그러나 그것이 ‘알려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대중적인 문화의 한복판에도 주변적 디자인은 존재한다. 지극히 제도적이지만 대중에게 전혀 인식되지 않는 디자인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의 제목에 붙어 있는 ‘주변적 디자인’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의미를 염두에 두고 쓰였다. 첫째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제도권 디자인의 영역 바깥에서 생산되는 디자인이다. 둘째는 흔히 서브컬처로 통칭하는 수많은 장르의 세계에서 향유되는 시각문화 전반과 디자인생산물이다. 세 번째는 주류 디자인 담론에서 이야기되지 않지만, 디자인을 매개로 토론되는 이야기들이다. 담론을 형성하기에는 너무 작아 금세 휘발되는 담화들, 익명이거나 권위 없는 발화자들의 비평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림 1 주변적 디자인의 자리

주변적 디자인의 수요와 공급

디자인 연구는 보통 산업과 문화라는 두 가지 축을 따라 생산된다. 업계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생산물, 그들이 다니는 직장(기업과 에이전시, 스튜디오)의 작동 방식 등이 ‘산업’ 담론에서 주로 다루는 대상이다. ‘문화’ 담론에서는 그렇게 생산된 디자인이 어떻게 존재하고 움직이며 소비되는지를 다룬다.

하지만 주변부의 디자인에서 이러한 분리는 무의미할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꽤 넓은 교집합을 이룬다는 것이 주변적 디자인의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자급자족 사회에서 생산과 소비는 한 몸이다. 이 둘이 가장 끈끈하게 뒤얽혀 있는 각종 서브컬처와 덕질의 영역은 원래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대표적인 생태계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컴퓨터란 그 우물을 파는 굴삭기 같은 것이다.

PC와 디자인툴은 고사양화와 대중화를 동시에 이루어냈고, 디지털 작업은 점점 경량화되고 있다. 각종 디자인과 목업을 위한 프리소스들이 넘쳐나고, 핀터레스트와 구글 이미지검색은 고유한 스타일마저 금세 프리소스화한다. SNS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생산자와 판매자의 거리를 좁혔고, 을지로의 각종 제작업체와 인쇄소들은 하나둘씩 소규모 제작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물류산업의 세분화 역시 제작자들의 보관과 유통을 돕고 있다.

지난 2010년대는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된 시대였다. 버내큘러 디자인이나 ‘어쩌다 디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누구든 그럴듯한 수준의 그래픽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뜻이다. 무엇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된 수준 있는 디자인인지, 무엇이 핀터레스트와 드리블을 짜깁기한 것인지, 점점 그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누구나 좋은 디자인을 접하고 따라 할 수 있게 될 2020년대의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화려한 스킬이 아닌, 훌륭한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감식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주변적 디자인은 무엇을 하는가

‘중심과 주변은 무너졌다’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선언은 비제도권에 존재해 온 대상들을 담론의 장으로 끌어내면서, 그것을 제도권 디자인의 반(counter) 또는 대안으로 위치시켰다. 그러나 최근 십여 년간 비제도권에서 등장해 온 디자인들은 오히려 끊임없는 ‘제도권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버내큘러 디자인은 그 특유의 ‘버내큘러함’으로 인해 ‘디자인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아닌가’ 자체를 토론 주제로 만들었지만, 앞으로 다룰 대상들은 대체로 누가 보아도 명실상부 디자인이다. 적어도 이러한 주변적 디자인 문화에 있어서만큼은, 중심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이 중심으로 포섭되면서 그 경계가 희미해진 것이다. 이러한 비제도권 디자인은 제도권의 반대편에 서 있다기보다 오히려 제도권의 경계 언저리를 밟고 서 있다.

그런가 하면 제도권 디자이너들 또한 계속해서 주변부로 영역을 넓혀 왔다. 취미나 사이드프로젝트로 주변부에 진출하는 제도권 디자이너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데다, 하위문화의 시각적 코드를 차용한 작업 또한 진부할 정도로 많다. 주변은 중심을, 중심은 주변을 욕망한다.

조형성은 더이상 디자인의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주변적 디자인을 여전히 제도권으로부터 분리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화와 주체에 달린 일일 것이다. 따라서 더더욱 주변적 디자인은 그 생김새만큼이나 존재 양태로, 문화적 텍스트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거기에 대단한 미적﹒역사적 가치가 숨어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시대 시각문화의 풍경을 구성하는 분명한 일부분이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될 여지는 충분할 것이다.

Designflux 2.0 Essay Series
주변적 디자인⟫ 최은별

동시대 디자인의 주변부. 디자인사에서 아직 누락되지 않았지만 분명 누락될 것들을 엄선한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디자인학을 전공하고, 2000년대 디자인 공공성 담론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메타디자인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 현재 제주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세기 전환기, 한국 디자인의 모색 1988~2007』, 『행복의 기호들: 디자인과 일상의 탄생』에 필진으로 참여했고, 전자책으로 『잃어버린 미스터케이를 찾아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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