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of Voice #3 두연씨, 우리 잘 먹고 잘 살아요.

매년 돌아오는 여름이지만 올해 유난히 ‘이렇게까지 더웠던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2021년 7월, 전국적으로 연일 최고 기온을 갱신하며 뜨거운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이 더위를 견뎌내는 것은 너무 혹독한 일이다. 이 와중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기록적인 폭우로 백여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고, 또 다른 대륙에서는 지속되는 폭염으로 인해 수백 명이 사망하고 10억 마리 이상의 해양 동물이 폐사하는 기이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대규모로 발생하는 화재 또한 50℃가 넘는 폭염, 동시다발적인 번개, 열돔 현상 등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 기후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기후 변화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얼마 전 정부는 ‘한국판 뉴딜’ 정책 방향으로 경제 기반의 친환경・저탄소 전환을 목표로 한 그린 뉴딜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저탄소 프로젝트 착수를 선언했고 지자체와 산업계는 ‘2050 탄소중립’ 실현을 향한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도 탈탄소를 위한 일들에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다.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해결 방안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1990년대부터 기후 전문가 집단과 환경 단체를 중심으로 들려왔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대중이 관심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플라스틱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2015년 미국 텍사스 A&M대 해양생물 연구팀이 공개한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바다거북 코에 박힌 12㎝ 빨대를 제거하는 영상에 사람들은 크게 반응했다. ‘그린피스’는 2015년 플라스틱 전담팀을 꾸렸고, ‘지구의 벗’은 2016년 플라스틱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돌입했다.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2017년 방영한 영국 BBC 다큐멘터리 ⟨블루플래닛 II⟩이다. 플라스틱이 해양 생물에 끼친 영향을 집중적으로 보여준 ⟨블루플래닛 II⟩의 마지막 회는 더 많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행동하는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했다.[1]

⟨블루플래닛 2 Blue Planet II⟩ © BBC
출처: BBC NEWS 코리아(블루 플래닛 2 : 플라스틱이 서서히 바다를 죽이고 있다, 2017년 11월 21일)

플라스틱은 일상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깊고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에 대중은 플라스틱으로 발생하는 환경 문제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용하지 않거나, 줄이거나, 재활용하는 등 빠르고 즉각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2010년대 후반,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면서 탈플라스틱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이제는 플라스틱 문제뿐만이 아니라 그린 컨슈머리즘, 제로웨이스트 운동, 비거니즘 등 환경과 지구를 지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공장식 축산업 및 파괴적인 어업이 기후 변화에서 주목해야 하는 원인으로 지목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육식을 줄이는 것을 세계 각국에 권고해 왔다.[2] 국내에도 환경 문제에 대한 이슈와 기후 변화에 대한 해결안 중 하나로 채식이 소개되었고 최근에는 대중적으로도 채식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채식협회에 따르면 2008년 약 15만 명이었던 채식 인구가 2018년에는 약 150만 명으로 늘어 10년 동안 10배가량 증가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 중 하나인 ⟨카우스피라시(2014)⟩는 축산업을 기후 위기의 주요한 원인이라 보고 공장식 축산 경영이 지구의 천연 자원을 어떻게 훼손시키고 있는지, 왜 환경 단체들이 이러한 사실을 무시해왔는지를 파헤친다. 정부나 기업에서 행하는 기후 대책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에너지 분야와 교통 등에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상 축산업에서 발생되는 오염물질이 그보다 더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후 정책의 실효성을 향해 의문을 던진다.[3]

⟨카우스피라시⟩에서는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40년까지 20퍼센트 증가하지만 축산업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50년까지 80퍼센트 증가할 것이라 제기한다. 출처: ⟨카우스피라시(2014)⟩
전 세계의 아산화질소(지구 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이 이산화탄소보다 296배가 높은 물질) 65%가 축산업에서 배출된다. 출처: ⟨카우스피라시(2014)⟩

공장식 축산업과 육식에 대한 전문가 의견이 분분하고 한편에서는 감독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편협하게 선별된 연구를 과장해서 제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탈플라스틱 운동이 일상에서 환경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실천 방법인 것처럼, 비육식 또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고려할 수 있는 행동 중 하나라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차츰 육식이 플라스틱 문제만큼이나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알려졌고, 윤리·환경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의식적 소비문화와 결합해 채식은 이제 하나의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온∙오프라인의 비건 제품 광고나 SNS 인플루언서의 #비건패션 피드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이러한 경향을 체감하면서도 개인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막막할 때가 있다. 또 환경을 위한 개개인의 의식과 행동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이러한 생각을 하던 나에게 작은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채식 요리 웹툰 『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이하 『두잘잘』)이다. 만화가 하토가 그리고 쓴 『두잘잘』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서른 살 ‘마두연’이 채식을 시작하며 겪는 이야기다. 대중과 다른 방식의 식생활로 인해 가족, 친구, 직장 동료와 빚는 마찰이나 사회생활에서 쉽지 않은 비건 식사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주인공 ‘두연씨’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독립 연재 플랫폼 딜리헙(dillyhub)에서 2020년 시작해 지금은 시즌 2를 연재 중이다. 시즌 1은 지난해 12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단행본으로도 출간이 되었다. 

출처: 딜리헙 https://kr.dillyhub.com
『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 단행본 1,2권 (일러스트: 하토, 표지·타이틀 디자인: 성정은) 출처: 텀블벅 https://tumblbug.com/dzz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출간된 두 권의 단행본 프로젝트는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줄이고자 책과 함께 동반되는 리워드 굿즈를 제작하지 않고 책으로만 구성되었다. 책의 종이는 친환경 인증을 획득한 종이를 사용했고, 코팅 등 후가공을 거친 종이는 재활용이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표지의 오염을 방지하는 표지 코팅도 하지 않은 아주 담백한 촉감의 책으로 제작되었다. 

『두잘잘』에서는 ‘비건’을 지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채식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여준다. 이 등장인물들은 건강을 위해, 동물권을 위해, 누군가는 환경을 위해 ‘비건’을 지향한다. 작품 초반부에서는 두연이라는 인물 내면의 생각과 고민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다가 점점 두연씨와 그의 가족, 회사 동료, 채식을 하며 알게 된 새로운 친구, 그들과의 관계에 얽힌 이야기로 확장된다. 만화에 등장하는 채식 요리는 비건 돈가스 카레, 비건 짬뽕, 연두부 오므라이스 등 친근한 음식부터 맛이 궁금해지는 음식까지 다양한 요리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등장인물 중 두연이 채식으로 새롭게 알게된 친구인 ‘유지나’에게 가장 공감이 간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지나씨는 비육식이 환경 문제 해소에 기여할 수 있기에 동물성 식품 섭취를 줄여나가기 시작한 인물이다. 그 밖에도 어린이집의 휴원으로 회사에 자녀를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과장님, 식비에 대한 걱정으로 채식을 고려하는 직장 동료 등 현실적인 등장인물 설정 또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웹툰 시즌 1에서 동물권을 주요하게 다루었다면 현재 연재 중인 시즌 2에서는 전염병, 농・축산업으로 인한 환경 문제 등 채식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문제들을 거시적인 관점으로 다루며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한 방안을 흥미롭게 그린다.

『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 출처: 텀블벅 https://tumblbug.com/dzz

『두잘잘』은 채식 관련 이슈와 정보를 알리기 위해 기획된 콘텐츠이지만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4] ‘잘 사는 것’이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실현된 삶을 사는 것이다. 『두잘잘』 속 인물들은 ‘잘 살기 위해’ 마련된 다양한 선택지 중 비거니즘을 택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 중 일부는 육류를 과도하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렇기에 채식은 당사자와 동물, 환경을 위한 일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미세먼지, 이상기후와 같은 재난을 겪으며 사람들은 이제껏 당연하게 누려왔던 기후, 공기, 물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깨달았고 과거보다 확장된 차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두연씨는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지속 가능한 방법인지 의문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의 다양성에 기반한 주체적이고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 Ⓒ 하토, 다이빙도브랩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우리가 잘 살면 좋겠다.’

‘마두연’이라는 가상의 인물은 모니터나 스마트폰 액정, 그리고 책 속에 존재하지만 지금은 마치 내 지인의 친구 같은 거리감으로 내 주변 어딘가에서 지내고 있다. 사람, 생물・비생물 어떤 것들은 그가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만들고, 잘 사용하고, 지속 가능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일에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고 깨닫는 일은 꽤 건강한 경험이다. 또 어느 창작자의 작업이 그런 시도가 가능하게끔 계기를 만들어준다면 훨씬 더 흥미롭고 근사한 일일 것이다. 두연에게는 그런 건강하고 근사한 영향력이 있다. 글을 쓰는 동안에 늘 책상 위에 『두잘잘』 단행본 두 권이 함께 했다. 책 표지의 두연씨는 어딘가를 응시하며 오늘도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 생각한다. 두연씨와 함께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그럼 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다양한 가치가 생겨나고, 나아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두연씨, 우리 잘 먹고 잘 살아요.’

[1] 『지구에 대한 의무: 우리의 삶은 어떻게 환경을 파괴하는가』, 스티븐 부라니, 폴 툴리스, 조너선 왓츠, 다르 자메일 공저, 전리오, 서현주, 최민우 옮김, 스리체어스, 2019

[2] 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인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2006년 ‘축산업의 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에서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18%로, 이는 자동차, 비행기 등 전체 운송업에서의 배출 비중 13.5%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기후변화를 저지하려면 붉은 고기를 적게 먹고 통곡물과 채소, 과일 위주의 식물성 식단을 먹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3] 킵 앤더슨(Kip Anderson), 키건 쿤(Keegan Kuhn)(감독) (2014). 카우스피라시(Cowspiracy: The Sustainability Secret) [영화] 

[4] 문화다양성 즐기기 : 네이버 포스트, “[문화다양성 인터뷰] – 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하토 작가)”

Designflux 2.0 Essay Series
Design of Voice⟫ 이지원

우리 주변에 자리하는 사회적 불균형에 목소리를 내는 창작자,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들의 작업은 실천적이며 연대의 동기를 제공한다.

이지원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디자인사 자료 수집을 위한 구술 연구의 방향 모색》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오늘날 비주류로 분류되는 담론 내 미시사에 관심을 두고 이를 실천적 방법으로 전달하는 작업을 실험한다.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인 아키타입(archetypes)을 운영하며 저술과 출판 활동 등을 통해 책과 기록물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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