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0 | 플립플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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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신다 슬쩍 버린 플립플랍이 먼 나라의 해변까지 흘러듭니다. 이 무심한 쓰레기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버려진 플립플랍을 수거해 재활용하여 실내 소품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사실 이러한 유형의 디자인 뉴스는 많고 많습니다. 그렇게 매년 친환경, 재활용을 이야기하는 사이에, 기후 변화는 기후 위기가 되고 말았지요. 공교롭게도 오늘은 네덜란드의 비영리 디자인 단체 왓디자인캔두의 ‘노 웨이스트 챌린지’ 공모전 마감일입니다. 자원을 취해 새 물건을 만들어 곧 내버리는 이른바 “테이크-메이크-웨이스트” 경제의 고리를 끊기 위해 디자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잃어버렸거나 버린 플립플랍(Flip-Flop)들의 상당수가 하수구나 바다로 흘러 들어, 멀리 아프리카 동부나 아시아의 해변까지 밀려 간다.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디데릭 스네이만(Diederik Schneemann)이 바로 이 낡고 닳고 찢어지고 색 바랜 플립플랍에 관해 이야기한다. 

‘플립플랍 이야기(A Flip Flop Story)’에서 버려진 신발들이 새 삶을 맞이한다. 플립플랍을 재활용해 만든 일련의 제품들이 하나의 ‘지속가능한’ 컬렉션을 이루었다. 유니크에코(UniquEco) 재단의 도움으로, 동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해변에서 상당한 양의 신발 쓰레기가 수거되었다. 

이렇게 거둔 신발들은 나이로비에 있는 유니크에코의 작업장으로 향했다. 디데릭 스네이만과 유니크에코는 함께 신발 쓰레기를 가공하고 다듬어, 실내 소품들을 만들었다. 플립플랍들은 그렇게 조명, 화분 등의 물건의 재료가 되어 새로운 삶을 맞이했다. 

디데릭 스네이만의 ‘플립플랍 이야기’는 이번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였다.  

www.aflipflopstory.com
www.studioschneeman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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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9 | 브랜드로서 케이트 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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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패스트패션 브랜드 톱숍이 ‘케이트 모스’ 컬렉션을 발표합니다. 이를 위해 ‘브랜드 이름으로서의’ 케이트 모스를 위한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필요해졌지요. 디자이너 피터 사빌과 타이포그래퍼 폴 반즈가 찾은 답은 반세기도 전에 태어난 오래된 서체, ‘알-브로’였습니다.

다음 달이면 전 세계 톱숍 매장에서 브랜드 명으로서의 ‘케이트 모스’를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워너비들을 지닌 패션 아이콘과 패션 브랜드의 만남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이름이 브랜드의 이름으로 변모하는 과정, 즉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구축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케이트 모스가 지닌 독특한 지위란, 그녀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는 일종의 불완전함이었다(가령 우리는 모델로서 너무 작은 키, 여성미를 드러내기에는 너무 마른 몸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케이트 모스를 브랜드화 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 독특한 지점들을 부각해야 한다. 

크리에이티브 리뷰에 ‘케이트 모스가 브랜드 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흥미로운 리포트가 게재되었다. 장식미가 깃든 복고적인 서체로 쓰여진 ‘Kate Moss’ 로고는, 그래픽 디자인 계의 거장 피터 사빌(Peter Saville)과 타이포그래퍼 폴 반즈(Paul Barnes)의 공동 작품이다. 

피터 사빌은 “케이트 모스라는 아이덴티티에 관한 수많은 표현물을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절실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비단 톱숍과의 협업으로 구체화된 의류 브랜드뿐만 아니라, 그녀가 운영하는 모델 에이전시 스톰(Storm)의 대외 활동과도 연관되어 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을 위해 피터 사빌은 그녀의 서명을 로고화해볼까 하는 아이디어를 실험해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고 결국 알맞 서체를 찾아보기로 결정한 후, 타이포그래퍼 폴 반즈를 찾아갔다. 이 두 사람은 한 가지 문제에 부딪혔다. ‘Kate’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폰트들은 상당히 많았다. 문제는 ‘Moss’였다. “Moss는 모스 브라더스, 내셔널 트러스트 토지 운동 등 엉뚱한 뜻을 연상시키며 본래의 의미에서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폴 반즈는 과거 언젠가 작업에 사용해 보리라 기억해두었던 한 서체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1934년부터 57년까지 <하퍼스 바자>의 아트 디렉터로 일했던 전설적인 인물) 알렉세이 브로도비치(Alexey Brodovitch)가 디자인한 서체가 그것이다. 폴 반즈는 “장난 삼아 한 번 이 서체를 써봤는데, 실제로 결과가 상당히 괜찮았다. 기교가 많으면서도 여전히 모던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케이트 모스 개인이 지닌 어떤 특징과 유사했다.” 그리고 케이트 모스 역시 20개의 시안 중에 숨어 있던 이 디자인을 단번에 선택하였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예요.”

브랜드로서의 케이트 모스를 표현하기 위한 두 디자이너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인명이 브랜드명이 될 때 그 안에 어떠한 요소들이 담기게 되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케이트 모스라는 개인의 정체성, 그녀의 이름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방식, 구체적인 패션 브랜드로서 이 브랜드가 표방하는 개성 등은 기본이다. 물론 ‘그래픽’의 관점에서 바라본 두 개의 단어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평가도 흥미롭다. 결국 이들은 아이콘으로서의 케이트 모스 개인과, Moss라는 까다로운 단어마저 멋지게 소화하는 서체를 찾아냈다. 복고적인 느낌에, 약간은 변덕스러운 듯 하면서 세련된 그러한 서체를 말이다. 

[Creative Review] Kate Moss: The 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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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6 | 디지털 콘텐츠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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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물리적 매체를 탈피하면, 음반 디자인에서는 무엇이 남을까요? 2007년 오늘자 뉴스는 jpeg 형식의 커버 이미지 파일만이 남은 현실을 절절히 아쉬워하는 <디자인 옵저버>의 아티클을 소개했습니다. 그야말로 스트리밍의 시대인 지금, 또 하나의 흥미로운 아티클을 덧붙여 봅니다. AIGA의 ‘아이 온 디자인’에 실린 케이팝과 CD 음반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케이팝 신에서 CD는 팬들을 위한 “선물”처럼 채워지고 디자인되고 있으며, CD의 판매고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요.

테이프의 시대가 끝나버린 것처럼, 조만간 CD 역시 그러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들 한다. 물론 LP처럼 무덤에서 부활하게 될 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만일 그러한 관측이 100% 사실이 된다면, 물질적 형태를 갖춘 음반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추동하는 것은 음반의 디지털화다. 초대형 레이블은 애플, 스타벅스, 월마트, 아마존 등 디지털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에 둘러싸인 채, 오늘도 누군가의 새 앨범을 디지털 버전으로 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집스레 물리적 실체를 지닌 ‘음반’ – 케이스, 커버 아트, 속지를 포함한 패키지 일체를 제작하는 음반사들이 있다. CD나 LP 등의 포맷을 고집하는 아티스트와 애호가들도 상당수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음반을 단순한 음원의 집합이라고 생각한다면 mp3 다운로드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음반이 음원 이상의 무엇이라 믿는 이들이라면 단일 폴더 속 노래 파일들, 이라는 음반 형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옵저버에 게재된 ‘새로운 앨범 커버 JPEG?’는 이러한 맥락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시한다. “만일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컴퓨터 속에 자리잡은 비가시적인 무엇인 된다면, 음악에 내재한 핵심적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일까? 음악이 본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물질성이 필요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본격적인 디지털 콘텐츠 시대를 목전에 둔 우리들의 당혹스러운 표현인 지도 모른다. 음악, 영화, 심지어 책에 이르기까지 디지털화된 콘텐츠가 도래하면서, 즉시성과 편의성으로 무장한 이들 포맷에 대한 환영과 우려가 공존하는 실정이다. 말하자면 현재는 새로운 포맷과 기존의 관습이 경합하는 시점인 것이다. 

이러한 경합은 지적재산권과 같은 이슈에 집중되어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콘텐츠의 개념을 내용에 한정할 것인가 아닌가에 관한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 콘텐츠를 담는 포맷이 변화하면, 자연히 콘텐츠의 의미 역시 달라진다. 하지만 현재의 디지털화는 내용의 의미를 정보의 차원으로 축소하고 있지는 않은가? e-book이 책을 ‘씌여진 글의 집합’이라고 간주하듯, 혹은 디지털 음반이 음반을 ‘녹음된 음원’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접근에 대한 저항감은 ‘놀랄 만큼 다양했던 기존의 아름다운 표현 형식들’을 잃게 된다는 아쉬움에서 비롯된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아쉬움을 담은 글이 나온 지 일주일 전에, 디지털 음반을 기존 음반처럼 즐겨보자는 하나의 제안이 공개되어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Ironic Sans에 게재된 ‘디지털 주얼 박스’는 디지털 음반을 위한 디지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실현 가능성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단순한 아이디어의 제안에 불과하지만, 글 아래로 달린 덧글들의 어조는 열렬하기 그지없다(mp3 애호가들 조차 기존 음반 패키지를 가슴 절절히 그리워했음을 반증하는 듯 하다). 

DJB(Digital Jewel Box)는 JPEG 섬네일이 되어버린 음반 커버와 온데간데 사라진 앨범 속지를 되살리는 일종의 디지털 액자다. 마치 CD 케이스처럼 생긴 이 기기를 충전 도크에 끼워 스테레오 시스템이나 컴퓨터 옆에 설치하면, 음향 기기와 도크가 무선으로 연결되어 현재 재생되는 음악의 음반 이미지를 자동으로 스크린 위에 띄운다. 또한 트랙 리스트, 가사, 앨범 크레딧 등 기타 정보를 마치 속지를 뒤적이듯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DJB는 현재의 무선 홈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해 mp3 파일을 전통적인 형식의 음반처럼 경험케 한다. 

이미 우리는 사방으로 펼쳐지던 아트록의 화려한 LP 커버 아트를 잃었다. 뉴오더의 <블루 먼데이> 와 같은 앨범 커버 디자인에 가슴 두근거렸던 나날도 멋 옛일처럼 느껴진다. 멋지게 디자인된 음반에는 어떤 여운이 있어, 단순히 안에 담긴 음악으로 환원되지 않는 매혹을 자아낸다. DJB는 이러한 경험을 복구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과 형식으로 익숙한 과거의 외양을 복원하려는 시도란 아이러닉하다. 차라리 그것은 디지털 콘텐츠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처한 딜레마를 절충적으로 화해시키려는 시도에 가깝다. 

“우리 시대의 앨범 커버는 JPEG 파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그마한 섬네일과는 사랑에 빠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이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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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4 | 포르마판타스마의 ‘자급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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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또 다른 ‘자급자족’의 디자인입니다. 2010년 디자이너 듀오 포르마판타스마가 선보인 ‘자급자족’은 재료로 보나 제작 방식으로 보나 모두 소박한 자급자족의 공동체에서 태어났을 법한 물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포르마판타스마는 앞서 소개했던 ‘다음 10년, 20인의 디자이너’에서도 언급되었는데요. 지난 10년 정말로 그러했고, 또 앞으로의 10년도 묵직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이름입니다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의 신작, ‘자급자족(Autarky)

포르마판타스마의 새 프로젝트가 밀라노에서 공개된다. 상품을 생산하는 자율적인 방식의 제안. ‘자급자족’은 산업시대 이전의 역사로 돌아가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그들은 상상한다. 오직 필요한 만큼의 먹거리와 도구를 만들기 위해, 조용히 자연을 경작하고 수확하는 공동체. 스스로 부과한 한계선 안에서 욕심 없이 삶을 영위하는 그러한 공동체를 말이다. ‘자급자족’은 포르마판타스마가 단순한 삶에 바치는 오마주다. 

‘자급자족’은 그릇, 조명 등 일상적인 용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릇은 자연에서 구한 재료들로 만든 것이다. 70%의 밀가루와 20%의 농업폐기물, 10%의 석회석을 반죽하여 형태를 잡은 후, 이를 자연건조 시키거나 저온에서 구워 완성하였다. 은은한 색상은 역시 땅에서 수확한 식물의 덕이다. 비트, 파프리카, 시나몬, 커피 등 다양한 식재료로 그릇에 색을 입혔다.

그릇과 전등은 밀가루, 농업폐기물, 석회성 등의 바이오소재로 제작되었다. 

포르마판타스마는 화학자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방수를 위한 래커 기법을 연구하여 이를 그릇에 적용했다. 
다양한 식물, 향신료, 뿌리 등이 제품의 염색제로 사용되었다.
계란을 물감처럼 사용하여 그릇의 마른 표면에 디테일을 더했다.

한편 포르마판타스마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이탈리아의 빗자루 장인 지우세페 브루넬로(Giuseppe Brunello)와 프랑스의 유명한 베이커리 푸아란느(Poilane)를 초청했다. ‘짚 빗자루(Strawbrooms)’는 사탕수수의 뿌리에서 낟알 부분까지 모두 이용하여 전통적인 빗자루에 미묘한 디테일을 더했다.

지우세페 브루넬로와 공동으로 디자인한 빗자루 시리즈  
all photos by Formafantasma

‘자급자족’은 이처럼 제품을 만드는 대안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전승된 지식이 지속가능하고 복잡하지 않은 해결책을 찾는데 이용될 수 있다고, 포르마판타스마는 이야기한다. 그들의 소박한 디자인, ‘자급자족’은 4월 14일부터 19일까지, 스파치오 로사나 오를란디에서 전시된다. 

www.formafantasma.com
www.poilane.fr
www.scopesaggi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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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 엔초 마리 ‘자급자족 디자인’ 부활

Enzo Mari for Artek 03.03.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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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코로나19가 안긴 수많은 부고 가운데 안타깝게도 엔초 마리와 그의 부인 레아 베르지네의 타계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열린 회고전의 개막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오늘의 뉴스는 엔초 마리의 ‘자급자족 디자인’[i]입니다. “디자인은 지식을 전할 때 오로지 디자인이다.” 엔초 마리의 ‘자급자족 디자인’은 완성품으로서의 가구가 아니라 지식으로서의 가구를 전했습니다. 2010년 아르텍은 그 ‘자급자족 디자인’의 첫 번째 가구인 ‘의자 1’을 다시 소개하며 엔초 마리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짤막한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모습과 그가 믿는 디자인 이야기도 다시 만나봅니다. 

엔초 마리(Enzo Mari)와 그의 ‘의자 1(Sedia 1 – Chair)’ 

엔초 마리(Enzo Mari)의 1974년도 프로젝트 ‘자급자족 디자인(Autoprogettazione)’이 2010년 부활한다. 아르텍(Artek)이 ‘자급자족 디자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오브제였던 ‘의자 1’의 생산, 판매에 나선다는 소식이다. 

‘자급자족 디자인’은 말하자면 DIY 가구 컬렉션이었다. 당시 갤러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전시에서 엔초 마리는 나무판과 못으로 만든 소박한 가구들을 전시하며, 안내서 <자급자족 디자인>을 무료로 배포했다. 만일 어떤 가구가 마음에 든다면, 전시품을 구입하는 대신 직접 가구를 ‘재현’해보라는 권유인 셈이었다. 30여 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찾아온 ‘자급자족 디자인’의 ‘의자 1’ 역시 송판과 못, 그리고 설명서 세트의 구성으로 판매된다. 

설명서를 참고하여 의자를 직접 만들게 된다. 
완성된 의자의 모습  
all photos by Jouko Lehtola

한편 아르텍은 ‘의자 1’과 함께, 엔초 마리의 ‘자급자족 디자인’ 프로젝트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다큐멘터리 <엔초 마리와 아르텍 Enzo Mari for Artek>을 상영한다. 20분 가량의 상영시간 동안 엔초 마리가 ‘자급자족 디자인’ 프로젝트의 콘셉트와 의미를 설명하는 작품으로, 4월 15일 오후 6시, 트리엔날레 뮤지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www.artek.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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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번역 수정: 자가디자인 -> 자급자족 디자인

2007-04-12 | 독일, 복제품 전시관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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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도용, 복제라는 오랜 문제에 대해 아예 그런 제품을 시상하고 전시하는 방식으로 불명예를 안기는 단체가 있습니다. 2007년 오늘자 뉴스는 독일의 ‘표절 방지를 위한 행동’이 연 표절 제품 전시관 소식입니다.

혁신적 아이디어 뒤에는 반드시 모방과 짝퉁이 뒤따른다. 정보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오랜 시간과 노고를 들여 이룩한 혁신적 아이디어가 표절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마는 일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특히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발명가의 그것처럼 중요한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 저작권 침해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지난 4월 1일 독일의 솔리겐 지역(쾰른 인근)에, 오리지널 창작물의 권익을 보호하고 모방을 근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복제품 전시관(Museum Plagiarius)’이 문을 열었다. 전시관에는 총 300점의 오리지널 제품과 복제품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 파리에도 이와 유사한 ‘표절 박물관(Musee de la Contrefacon)’이 있다. 하지만 파리 박물관의 경우 루이뷔통, 리바이스, 구찌 등 거대 브랜드의 복제품을 전시하는데 비해, 솔리겐의 복제품 전시관에서는 주로 중소기업의 제품과 그 복제품을 전시하면서, 자체적인 법적 보호 장치가 미약한 회사들의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캠페인을 펼친다.

전시관의 큐레이터이자 ‘표절 방지를 위한 행동(Aktion Plagiarius)’ 단체의 운영위원인 크리스틴 라크루아(Christine Lacroix)는 디자인 회사를 대상으로, 저작권 보호를 위한 법률 자문과 표절 방지 교육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오리지널: ‘소피 저그(Sophie Jug)’, 알피 베르트하임(Alfi, Wertheim), 독일
복제품: 허 샨 지아 후이(He Shan Jia Hui) 진공플라스크 용기, 중국, 광저우
-2007년 표절상 1등 수상

박물관의 공동설립자인 리도 뷔세(Rido Busse)는 해마다 최고의 표절자를 선정하여 ‘표절상(Plagiarius award)’을 수여하는 흥미로운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1977년 자신이 디자인 한 제품이 일본 회사에 의해 복제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공개적으로 표절자에게 망신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 끝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 하노버 박람회에서 1명의 기자를 앞에 두고 표절자에게 직접 트로피(금색 코를 가진 검정색 난장이 모양)를 수여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창작물을 복제 당한 회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이듬해에는 더 많은 기자단이 모인 자리에서 성대한(?) 표절상 시상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오리지널: ‘몰스틴 노트북’, 몰스킨, 이탈리아, 밀라노
복제품: 아르스 노바(Ars Nova), 독일, 바텐 
-2007년 표절상 2등 수상
오리지널: ‘러브시트’, 데돈(Dedon), 독일(뤼네부르크)
복제품: 안틱 하일리겐슈테텐(Antik Heiligenstedten), 독일(헬링엔슈테텐)
-2007년 주목할 만한 표절

올해부터는 공식 심사위원단을 구성하여 최고 표절 디자인을 선정, 매년 2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무역박람회에서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아시아의 회사들이 이 불명예스러운 수상자 리스트에 자주 오르고 있지만, 이에 못지 않게 많은 유럽 회사들도 대열에 끼어 있다.

‘표절 방지를 위한 행동’이나 복제품 전시만으로 복제품 생산을 근절시킬 수는 없지만, 꾸준한 교육과 캠페인 등이 장기적으로는 저작물을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표절상 심사위원단
2003년 표절상 2등 수상작 ‘하트 바스켓(Heart Basket)’, 서울

머그컵과 미니 스낵 접시를 결합한, 칼라 투어링엔 도자기회사(KAHLA/THUERINGEN porcelain GmbH)의 오리지널 제품 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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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9 | 휴대폰의 시대, 시계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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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이라면 아이폰이 발표되어 시장에 등장한 해입니다. 4월 9일의 이 뉴스는 아직 휴대폰이 그렇게까지 ‘스마트’하지 못했던 때에도, 이미 제 기능을 휴대폰에게 내주었던 시계의 운명에 관한 기사입니다. 자기표현의 수단 혹은 휴대용 전자기기화. 두 가지가 양립 불가능한 관계의 선택지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후자의 흐름이 현실이 되어 스마트시계라는 카테고리가 태어났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시계 시장 외부에서, 그것도 다름 아닌 휴대폰 시장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시계는 지금 다시 한 번 시계의 모습을 한 기기와 경쟁하는 중입니다.

휴대폰 없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해 보이는 요즘 세상에, 위기를 맞은 것이 공중전화만은 아니다. 최근의 소비자들은 시계의 필요성을 그리 체감하지 못한다. 몇 시냐는 질문에 손목을 보는 대신,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드는 일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휴대폰이 시계를 대신해버린 시대에, 전통적인 시계 회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비즈니스위크>가 시계 업계의 최근 행보를 정리한 흥미로운 리포트를 게재했다. 시계 산업의 현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카르티에, 롤렉스 등 럭셔리, 하이엔드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업계 매출 곡선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소비자들이 ‘시간을 알기 위해’ 시계를 구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젊은 소비자들을 휴대폰에 빼앗긴 시계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어쩌면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시계를 시간을 알려주는 기기 이상의 무엇으로 만들어내면 된다. 

관건은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돌려놓는 데 있다. <비즈니스위크>는 알레시, 세이코 등 몇몇 브랜드의 사례를 통해 시계가 점차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어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알레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디자이너 시계를 생산해왔다. 소비자들은 에토레 소트사스, 알베르토 메다,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등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최근의 히트작은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의 여성용 시계 ‘버클(Buckle)’이었다. 이 제품은 손목이나 목에 찰 수 있는 디자인으로, 2006년 알레시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가격 역시 130달러로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세이코는 앤디 워홀의 작품을 라이센싱하여 팝아트 시계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세이코의 당초 예상보다 50% 이상 더 팔려나가며, 일본의 10~20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시계가 하나의 문화 상품이 되었기에 거둘 수 있었던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과거의 라이센싱은 대체로 어린이용 제품 시장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문화 마케팅을 통해 새로이 부활했다(미키 마우스나 헬로우키티 대신 앤디 워홀이 자리한 셈이다).

혹은 휴대용 전자 기기의 기능을 시계에 흡수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지 모른다. Fossil은 블루투스 시계를 출시했다. 휴대폰과 시계를 연결하여,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도 바로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나이키는 애플과 함께 iPod과 연동되는 동시에 심장박동계수를 측정하는 시계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시계의 앞날에는 두 갈래의 선택지가 있는 듯 하다. 전통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대신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는 쪽으로 선회하거나, 전통적인 시계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하거나. 하지만 모든 것이 컨버전스 되어가는 시장의 흐름을 염두에 둔다면, 후자보다는 전자가 장기적인 ‘생존’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그 언젠가 시계형 휴대폰이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Businessweek Online] At Timex and Seiko, the Clock Is Tic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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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8 | 다음 10년, 20인의 디자이너

Editor’s Comment

정확히 10년 전 오늘, 디자인 비평가 앨리스 로스손과 MoMA의 디자인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가 다음 10년의 디자인을 조형할 20인의 디자이너를 꼽았습니다. 정말로 10년이 지난 지금 그 명단을 되돌아봅니다. 참고로 앨리스 로스손과 파올라 안토넬리 두 사람은 ‘디자인 이머전시’라는 이름으로 더 나은 미래를 지어나갈 디자인을 인스타그램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앞두고 이탈리아 <롤링 스톤>지도 디자인 특집 기사를 실었다. 다음 10년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칠 디자이너들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앨리스 로스손(Alice Rawsthorn)과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가 20인의 디자이너 명단으로 답한다. 

명단을 작성하며, 두 사람은 안배의 문제를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 디자인 내 분과들을 충분히 다루고 있나? 특히 앞으로 더욱 중요성을 더할 분과들이 반영되어 있는가? 지역적으로도 균형 잡힌 명단인가? 더불어 이러한 류의 명단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문제가 있으니 바로 성별이다. 앨리스 로스손은 그러나, 적어도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명단에 여성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우리가 젊은 여성 디자이너들을 지지하고 싶었다는 것만이 유일한 이유일까?… 이 명단은 미래에 초점을 마주고 있다. 아마 그래픽이나 제품과 같은 전통적인 분과에만 매몰되었더라면 성별 구성도 달라졌을 것이다. 새로운 디자인 영역들을 규정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협업이다. 개인들 그리고 분과들 사이의 협업으로, 여성들이 잘 해 나가는 무엇이기도 하다.”

버그 런던(Berg London), 디지털 매거진 ‘맥+(Mag+)’ 콘셉트 
조너선 해리스 & 셉 캄바르(Jonathan Harris & Sep Kamvar), WeFeelFine.org

앨리스 로스손과 파올라 안토넬리는 이와 같은 배경에서 20인의 차세대 디자이너 명단을 작성하였다. 과학, 기술,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한 응답으로서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디자인 영역들에 대한 고려가 특히 두드러진다. 버그 런던, 프로세싱(Processing)의 벤 프라이(Ben Fry)와 케이시 리스(Casey Reas), 데이지 진스버그(Daisay Ginsberg), 조너선 해리스, 요스트 흐로턴스(Joost Grootens), 네리 옥스만(Nero Oxman), 휴 허(Hugh Herr), 스푸트니코!(Sputniko!)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포르마판타스마, ‘자급자족(Autarky)’ 
크리스틴 메인데르츠마(Christien Meindertsma), <돼지 05049>
비주얼 에디션스(Visual Editions)

전통의 제품 분과에서는 포르마판타스마와 율리아 로만(Jolia Lohmann)의 이름이 눈에 띈다. 개념적, 비평적 디자인에 전통에 서 있는 디자이너들로, 또 이러한 맥락에서 크리스틴 메인데르츠마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한편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는 네덜란드의 ‘디자인 선동가들’인 메타헤이븐(Metahaven)과 중국의 차세대 그래픽 디자인의 핵심주자 리우 지지(Liu Zhizhi)가 명단에 합류했다. 출판사 비주얼 에디션스의 선정에도 주목할 만 하다.

20인의 디자인 명단으로 바라본 미래의 디자인. 아래 <도무스>의 요약 기사에서 명단의 주인공들을 확인할 수 있다. 

[Domus] Rolling Stone design special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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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스토리 | 2009 | 타미네 자반바크트와의 대화

타미네 자반바크트(Tahmineh Javanba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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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초청으로 아르테니카(Artecnic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미네 자반바크트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9월 16일, 디자인플럭스는 그녀와 광화문 어귀의 한 카페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타미네 자반바크트가 말하는 서울, 아르테니카, 그리고 디자인 이야기. 


디자인플럭스(이하 DF)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셨는데요. 벌써 많은 일정을 소화하신 듯 합니다. 

타미네 자반바크트(이하 TJ) 말씀하신 대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측으로부터 전시 참여 및 방문 초청을 받았습니다. 비엔날레 참여가 확정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대로부터 학생들에게 아르테니카를 소개해달라는 부탁도 받았어요. 바로 어제 강연을 진행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캠퍼스도 아름다웠고요. 강연을 마치고는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스팀드 우드(steamed wood)로 작업한 어느 학생 작품이 아주 좋더군요. 그 동안 세계 곳곳의 학생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학생들의 작업은 신선해요. 물론 개중에는 예전에 본 것 같은 작업들도 있지만, 모두가 아주 열정적입니다. 그게 중요하죠. 

한국에는 3일 전에 도착했는데, 오늘에야 겨우 서울을 둘러볼 시간이 생겼네요. 입국해서는 광주에서 미래 큐레이터들을 위한 강연을 진행했고, 서울대 강연 건으로 또 서울로 돌아왔어요. 내일은 비엔날레 개막식 참석을 위해 다시 광주로 내려갑니다. 

DF : 한국의 인상은 어떤가요?

TJ : 아직 서울의 옛스러운 지역은 보질 못했어요. 서울은 매우 현대적이고 커다란 도시예요. 익숙한 간판들이 눈에 띄는데, 스타벅스, 던킨 도넛, 이브 생 로랑 등등… 아마도 세계화의 반갑지 않은 부분이겠죠. 좀 더 한국적인 곳들을 보고 싶어요. 

처음 도착해서는 교통체증 때문에 깜짝 놀랐어요. 공항에서 호텔까지, 한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할 거라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네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정말 놀랐죠. 진짜 큰 도시구나, 하지만 또 아름답기도 해요. 저희 회사에 한국인 스태프가 있는데, 그녀와 같은 언어, 비슷한 제스처를 쓰는 사람들을 보니, 그렇구나 내가 지금 한국에 있구나 실감이 나요. 또 동시에 언젠가 와본 듯한 기분도 들고요. 좀 더 머물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미술관도 둘러보고 싶고, 프라다 트랜스포머도 보고 싶어요. 서울, 광주, 서울… 지금까지는 공항만 너무 많이 봤네요. 

한국은 우리에게는 새로운 나라이고, 이 곳에서 뭔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한국의 디자인계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요. 호텔이나 상업공간, 주거 공간 등등 한국에서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한국의 디자이너와 협업하면서요.

DF : 아무래도 ‘양심적인 디자인’ 컬렉션에 관한 질문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요. 얼마 전 쿠퍼-휴잇에서 열린전시 ‘생태계를 위한 디자인’ 소식을 보면서, 아르테니카를 떠올렸습니다. 전시 작품도 그렇고, 작품의 제작 방식도 그렇고요. 이처럼 최근 들어 아르테니카를 연상시키는 디자인 제품들을 더욱 더 자주 만나게 되는데요.

TJ : 네, 확실히 아르테니카가 시작한 트렌드라고 할 수 있어요. 실제로 많은 매체들이 저희를 선구자라고 평가합니다. 최고의 디자인을 지역의 수공예인들과 함께 전개하는… 최근에는 카펠리니가 스티븐 버크스와 비슷한 작업을 했고, 모로소도 마찬가지로 스티븐 버크스와 함께 아프리카 컬렉션을 선보였죠. 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저희에겐 찬사와도 같아요. 실제로 파트리시아 모로소는 제게 “당신들의 작업을 정말 존경한다”고 말한 적도 있죠. 

우리가 이런 트렌드를 시작한 것은 사실이에요. 공예인들에게 생활기반을 제공했고, 또 그들의 기술이 조명되었죠. 이렇게 갑자기 많은 대형 회사들이 공예인들과 일하려는 시도는 좋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또 아르테니카가 그러한 움직임의 선구자라는 사실이 기쁘고요. 저희와 함께 일했던 헬라 용에리위스, 스티븐 버크스는 말씀하신 쿠퍼-휴잇 전시에도 참여했죠. 그리고 조만간 스티븐 버크스는 저희 새 컬렉션에도 참여할 예정이에요. 

2009년 아르테니카는 ‘양심적인 디자인’으로, 에이드 투 아티잔(Aid to Artisans)이 수여하는 ‘공예 & 비전 혁신상’을 수상했다. 

DF : 올 봄에는 에이드 투 아티잔(ATA)으로부터 뜻 깊은 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특히나 아르테니카와는 오래도록 함께 일했던 단체이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도 같습니다. 

TJ : 아르테니카 이전 수상자들로는 리 에델코르트, 조너선 애들러와 같은 사람들을 꼽을 수 있는데요. 우리의 노력과 철학을 인정받은 만큼 자랑스러워요. ATA는 정말 멋진 단체입니다. 저희 작업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구요. ATA 소속 공예 커뮤니티에 관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그런 정보들을 기반으로, 실제로 작업을 진행하게 되거든요. 

DF : 지난 달에는 아르테니카의 신제품들이 선보였습니다. 특히나 ‘스트레치 백’이 화제였는데요. TBWA로부터 처음 제작 제안을 받았을 때의 소감은요? 

TJ : 아르테니카의 ‘양심적인 디자인’에 감명을 받아 이런 제안을 해온 터라, 더욱 자랑스러웠습니다. 물론 대형 회사와 함께 진행하는 일이라 어렵기는 했어요. 아주 긴 프로젝트였던 데다 까다로웠죠. 하지만 멋진 제품이 나와서 정말 기쁩니다. TBWA는 정말로 큰 회사인데, 제품에 사용한 광고 빌보드물은 TBWA 내부의 미디어 아트 랩(MAL; Media Arts Lab) 팀이 작업한 것들이었어요. 대기업과의 작업이 쉽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그만큼 얻는 성과도 크죠. 

DF : 특히 스트레치 가방은 그 방식, 아이디어가 신선했습니다. 

TJ : 아르테니카의 철학을 엿볼 수 있을 텐데요. 우리 제품들 가운데 다수는 형태 그 자체가 곧 제품이 되곤 합니다. 가방을 보면 소재가 꽤 무거워 보이는데, 실제로 그래요. 박음질도 어렵고… 어쨌거나 우리는 소재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방수성이나 내구성, 내광성이 높은 소재라서, 그 이점을 살려보기로 했고, 그래서 이렇게 원컷 방식의 가방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소재의 특성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에 맞게 다룬 결과죠. 

DF : 전등갓 ‘프레나(Phrena)’를 디자인한 칼 잰(Karl Zhan)은 이번에 처음 작업한 디자이너인데요. 아르테니카는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할 디자이너들을 선택하나요? 

TJ : 많은 디자이너들이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해와요. 그 중에 제작해도 좋겠다 싶은 디자인이 있으면 제작에 나서는 거죠. 사실 결정하는 데는 많은 요인들이 있어요. (앞의 다기 세트를 가리키며) 누군가 내게 정말 아름다운 다기 세트를 보낸다 해도, 이미 본 디자인이라거나 하면 아무리 아름다워도 제작할 수 없으니까요. 

칼 잰, ‘프레나’ 전등갓, 2009 아르테니카 가을/겨울 신제품 

우리가 좋아하는 형태나 컬러도 있어요. 칼 잰과는 1년 반 정도를 함께 작업했는데요. 종이 소재였으면 좋겠다 싶어서 타이벡(tybek)을 선택했어요. 종이 전등갓 하면 중국식 랜턴도 있는데, 또 그런 것과는 차별화했으면 했어요. 이런 식으로 칼과 함께 일하면서 디자인을 정제시켜 갔죠. 대화도 많이 나누었구요. 광고 빌보드를 칼에게 보낸 적도 있어요. 실제로 상당히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왔는데, 좀 무겁더군요. 결국 타이벡 버전으로 결정했어요. 디자인을 봤을 때 ‘이거야’ 하는 순간이 있어요. 보는 순간 딱 알게 되죠. 바라보고 바라볼수록 더욱 아름다운 그런 오브제요. 딱히 “와 난생 처음 보는 형태인데!” 그런 건 아니지만, 계속 바라보면 비율의 아름다움이나, 완벽한 디멘션, 빛이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모습을 차츰 깨닫게 되죠. ‘프레나’를 실제로 보면 정말 아름다워요. 조용한 힘이 느껴지죠. 

토르트 본체(Tord Boontje), ‘차밍 2(Charming 2)’, 2009 아르테니카 가을/겨울 신제품 

DF : 토르트 본체처럼 오래도록 일해온 디자이너도 있어요. 

TJ : 토르트 본체는 가장 오래 함께 일해온 디자이너입니다. 처음 함께 작업을 시작했을 즈음, 토르트 본체는 신인에 가까운 디자이너였어요. 우리와의 작업이 그에게 있어서는 커리어의 시작과도 같았죠. 그 해 밀라노에서 성공을 거두었구요. 그와 함께 일하는 과정은 편하고 자연스러워요. 저 역시 그의 작품을 정말로 존경하고, 토르트 본체 역시 아르테니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어요. 그가 LA에 오기도 하고, 우리가 그의 파리 자택으로 가기도 하죠. 토르트 본체와 우리의 관계는 비즈니스 관계가 멋진 우정이 된 케이스예요. 그가 최근 RCA 제품디자인 학과장이 된 것 아시죠? 정말 자랑스러워요. 내가 만났던 그 젊은 디자이너가 이렇게 커다란 존재가 되다니요. 홍보에 능한 디자이너들이 있어요. 매체들을 잘 다루죠. 하지만 진짜 재능은 그런 것과는 무관해요. 토르트 본체는 홍보보다 자신의 작업에 진정 관심이 있는, 재능 있는 디자이너예요. 

토르트 본체, ‘컴 레인 컴 샤인(Come Rain Come Shine)’ 
– 2002년 선보인 최초의 ‘양심적인 디자인’ 컬렉션 제품이다. 
images courtesy of Artecnica 

DF : 소식을 듣고 그가 너무 바빠져서 아르테니카와의 작업이 늦춰지는 것은 아닌가도 싶었어요. 

TJ : 작업실을 런던으로 아예 옮겼다더군요. 런던에서 모든 일을 진행하는 거죠.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같이 일할 거예요. 10월에 런던에 찾아가 그를 만날 예정인데, 아마 스튜디오에 가면 몰라도 10개 정도의 새 디자인들이 있을 거예요. 멋진 스태프들도 있고, 또 그 자신이 능력 있는 디자이너니까요. 학과장직을 수행하면서도 앞으로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은 계속 하는 만큼, 아르테니카와의 협업도 그리 변하지 않을 거예요. 예전만큼 많이 해야죠! 또 그 사이 우리도 진행할 다른 디자이너들의 제품들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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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니카의 ‘양심적인 디자인’은 벌써 7년이 넘게 계속되어 왔다. 아르테니카의 ‘지속가능성’은 보다 깊은 함의를 지니고 있는데, 토속공예와 하이엔드 디자인의 만남이 실제로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더불어 재활용 기법을 통해 전하는 친환경의 메시지는 물론이거니와, 공예인들에게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여, 전통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말하자면 지속가능한 공예(sustainable craft)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된다. 아르테니카가 거둔 성취란 그 다중적인 “지속가능성”에 있는지도 모른다. 

바쁜 일정에도, 디자인플럭스에 기꺼이 시간을 내준 타미네 자반바크트 디렉터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더불어 이번 인터뷰 진행을 도와준 아르테니카의 김안나 님께도 감사 드린다. 한 가지 기쁜 소식.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아르테니카의 또 다른 공동설립자, 엔리코 브레산(Enrico Bressan)과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다음 달 개최되는 서울디자인올림픽 내 월드디자인마켓 세미나에서, 그의 강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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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7 | 책 속에서 태어나는 빛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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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외양을 취한 조명 혹은 빛을 담은 책. 디자이너 타케시 이시구로의 ‘빛의 서적’입니다. 이 팝업북 혹은 조명은 ‘양심적인 디자인(Design with Conscience)’으로 유명한 아르테크니카를 통해 출시되었습니다. 2008년 아르테크니카의 공동설립자이자 디렉터인 타미네 자반바크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그와의 인터뷰도 함께 소개합니다.

전 IDEO의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타케시 이시구로가 만든 팝업북 스타일의 탁상 램프이다. 이야기책을 펼치는 순간 눈 앞에 동화 속 풍경이 펼쳐지는 팝업북이야말로 상상의 세계를 깜짝 놀랄만한 현실로 만들어주는 꿈의 도구이다. 팝업북은 비단 어린이들만의 놀이기구가 아니다. 책 속 풍경을 이미 예측할 수 있는 어른이라 할지라도 펼침의 순간이 안겨주는 감동은 언제나 짜릿하다.

타케시 이시구로는 동화 속 꿈 안에 실제 불을 밝혔다. ‘빛의 서적(BookOfLights)’이라는 이름의 이 책을 펼치면 정교한 솜씨로 제작한 전등이 솟아 오르며 순식간에 테이블 조명으로 탄생한다. 책을 덮어 두었을 때는 패브릭으로 장정한 한 권의 책이었다가, 펼치는 순간 환한 LED 조명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마치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빛의 서적

타케시 이시구로의 디자인은 한 마디로 섬세하고 선이 가는 ‘감성적’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IDEO를 떠나 일본으로 돌아온 후 이시구로는 줄곧 실험적 기법을 연구하며 개념적인 제품 디자인과 환상적인 공간 설치를 선보여오고 있다. RCA 졸업작품으로 선보인 그의 데뷔작 ‘소금과 후추(Salt and Pepper)’—쌀로 만든 속이 빈 국수를 반으로 구분하여, 한쪽에는 소금을, 다른 한쪽에는 후추를 담은 용기—는 자연 소재와 감성적 디자인을 추구하는 이시구로의 스타일을 잘 말해준다.

소금과 후추(Salt and Pepper)

타케시 이시구로의 ‘북오브라이츠’를 판매하고 있는 아르테크니카에는 이처럼 미적이고 감성적인 생활 소품 디자인들이 가득하다. 1989년 설립된 아르테크니카는 주로 환경 친화적이면서 혁신적인 소재의 특성을 잘 살린, 표현적인 인테리어 소품 디자인만을 선별, 제작, 판매해오고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서로를 만지거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리가 나는 소파, 실제 나뭇잎으로 만든 나뭇잎 모양의 용기 디자인 등은 매우 이상적이다.

나뭇잎으로 만든 나뭇잎 용기(Leaf plate – plate made from a real l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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