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 Friendly : How the Hidden Rules of Design Are Changing the Way We Live, Work, and Play

User Friendly : How the Hidden Rules of Design Are Changing the Way We Live, Work, and Play
Cliff Kuang, Robert Fabricant / MCD(2019)

<유저 프렌들리>라는 400쪽이 넘는 책부터 시작해 보련다. 한때 무슨무슨 프렌들리 식의 말이 유행했던 터라 이 책 제목도 은유적인 표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디자이너들이 아는 그 ‘유저 프렌들리’ 얘기다. 저자들도 UX 디자이너 경력이 제법 있는 사람들이니 허투루 쓰진 않았을 게다. 이 책은 ‘user-friendly’라는 개념이 어떻게 등장했고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지 다룬다.

그렇다고 유저 프렌들리를 비평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저 프렌들리의 역사성, 그러니까 1920년대, 2차 대전,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황에 따라 전개된 개념의 발전(?)을 여러 사례와 인물들(헨리 드레이퍼스부터 조너선 아이브까지)을 언급하면서 설명한다. 특히,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의 사례가 자주 언급되는데 공동저자인 Robert Fabricant가 프로그의 크리에이티브 부사장이었기 때문일 것 같다.

사실, “friendliness”가 갖는 의미는 사용자와 기기 사이의 관계를 쾌활하게 표현한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한쪽에서는 사용자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이라는 비판적인 평가도 있다. 아무튼 저자들은 사용자 친화적인 디자인이 단지 버튼이나 디지털 디바이스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쓰리마일 섬의 사고 사례에 대해 도널드 노먼의 저서와 그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지만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error’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설명한다.(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든다)

프렌들리의 대상이 사람들의 행동임을 강조하는 아래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일 것 같다.

..User-friendliness is simply the fit between the objects around us and the ways we behave… the bigger truth is that design doesn’t rely on artifacts…The truest material for making new things isn’t aluminium or carbon fiber. It’s behavior.(p.96)

UX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 찾아보는 유익한 책임에 틀림없다. 이 분야와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거리가 먼 내게도 흥미로운 내용이다. 다만, 한때 유행한 ‘기업 프렌들리’라는 말이 불현 듯 떠올라 불편하긴 했는데 뭐 이 책의 저자들 잘못은 아니다.  

Design of Voice #1 낯선 세계에서 발견하는 공통의 감각 – 『서울의 엄마들』 돌봄, 그 행위와 가치에 대하여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일까지 그만둬야 한다고?’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어느 날, 한 기사를 보고 적잖게 놀랐다. 바로 ‘돌봄노동’에 관한 이야기로, 코로나19로 인해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의 개학이 연기되면서 일을 그만두고 전업 가사 활동 중인 여성이 전년 대비 20여만 명 증가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 기사를 읽은 당시에 나는 개인 작업으로 코로나19로 발생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조사하고 있었다. 돌봄노동에 관한 기사도 그중에 발견한 것으로 아무래도 여성의 시선으로 자료를 살펴보다 보니 가장 눈에 많이 띄던 것이 여성의 노동에 관한 주제들이었다. 나에게 ‘노동’이란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경제적으로는 자유로움을, 사회적으로는 주체성을 인정받는 의식과 같은 것인데,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니 상상하기 어려웠다. 꽤 오랫동안 시간을 유연하게 운용하는 프리랜서 생활을 해왔고, 주변에 나와 생활을 함께하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없기 때문에 기사에서 말하는 돌봄노동의 강도도 쉬이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건 내가 돌봄노동에 대한 책무를 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우리가 사는 세계 속 두 가지 노동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두 가지 노동이 존재한다. 하나는 생산노동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 뒤편에 존재하는 재생산노동이다. 생산노동이란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각종 재화를 만들어 물질적 부를 창출하는 일을 뜻한다. 보편적으로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금전적 가치를 지닌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말하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이들이 생산을 위한 용역을 수행하고 임금으로 보상받는 생산노동 종사자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이 생산노동 외에 필수적인 다른 노동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재생산노동이다. 재생산노동은 임금 노동 외의 모든 노동 행위를 말한다. 가령 출근을 하기 전 아침 식사를 위해 요리하는 일, 퇴근 후 집에 와서 내일 출근시 입을 옷을 챙기는 일, 휴식을 취하기 위해 청소를 하는 일 등 생산노동을 위해 필요한 재충전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돌봄노동은 재생산노동 중에서도 환자나 노인, 어린이와 같이 자립하기 위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의미를 확장해서 우리 생활에 대입해 생각해 본다면 돌봄노동은 부모, 자녀를 포함해 친구, 애인, 이웃, 반려동물의 삶을 위해 수행하는 일이자, 타인의 생활을 생산하는 노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유한한 신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른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거나 돌봄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본격적으로 불거진 가정 내 돌봄노동 문제를 재택근무나 아동돌봄지원사업 등의 제도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경우가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 분담과 같이 개인적인 권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여성이 더욱 적합하다는 인식이 여전한 상황에서 돌봄에 대한 여성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기사와 통계 자료가 코로나19로 인한 돌봄노동 부담이 여성에게 더 많은 휴가를 사용케 했고, 나아가 노동시장 이탈까지 촉진시켰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면서 마음속 한구석에서 복잡한 안도감과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Double Income, No Kids’가 신조인 2인 가구 구성원으로서, 아직은 경제생활을 하시는 엄마와 신체 건강한 가족을 둔 딸로서, 육아, 간병, 가사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내 환경이 일종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만약 아픈 가족이 있어 내가 곁에서 간호해야 한다면, 함께 생활하는 어린이가 있어 등원과 하원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면, 내 주체적인 삶을 가능케하는 생산노동을 지금처럼 자유로이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돌봄, 그 행위와 가치에 대하여

『서울의 엄마들』은 이런 나의 복잡한 심경을 위로하듯 다가왔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삶에 놓인 시민이자 여성이자 엄마인 열 명의 사적 서사를 담은 책이다. 에세이와 인터뷰 그리고 사진을 통해 누군가를 ‘돌봄’하거나 혹은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경험할 ‘돌봄’의 행위와 가치를 이야기한다. 열 명의 엄마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가족의 형태나 사는 곳, 하는 일도 모두 가지각색이다. 전업주부로 가사 활동을 하기도 하고 생산노동 종사자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어 돌봄에 대한 무게와 가치를 다양하게 제시하며 2020년 팬데믹의 시간 속에 우리는 ‘어떤 돌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질문한다.

사람은 돌봄의 순환 고리에 적을 둔 존재라는 이 분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간혹 잊거나 가볍게 여기기도 하고, 때론 그 고리의 늪에 깊이 빠져
돌봄이 지우는 무게에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당신은 어떤 돌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가.

열 명의 엄마들은 각자 처해있는 상황에서 어떤 돌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응답한다. 어떤 이는 사랑으로, 어떤 이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수행하는 돌봄노동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에서 기쁨과 감사함, 때로는 걱정과 불안함을 내비치기도 한다. 

‘엄마가 되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평생 누군가의 돌봄 속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왔다는 것 역시 새로 추가된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일을 자아실현으로 생각한다지만, 나는 아니다. 일이란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는 생계 수단이다. 나는 남편과 경제 공동체를 이뤘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보탬이 되게 함께 벌고 있다. (…) 아이 돌봄만 생각하면 둘 중 하나가 그만두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을 돌보려면 둘 다 일을 하는 것이 맞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아이 돌봄에 내 인생을 올인하지 않고 돌봄의 균형을 찾기 위해 일터로 나간다.’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아 키우는 지금까지 회사로부터, 팀원들로부터 돌봄을 받는다고 느낀다. 임신 당시, 팀원들이 늘 점심 메뉴에 신경을 써주었고 따듯한 안부를 건네줬다. 만삭 때 시작된 코로나19는 아기가 9개월이 된 지금까지도 감염자 수가 줄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 회사는 나만 재택근무를 하도록 배려해 주어서 약 2주 전 업무에 복귀한 이후 딱 한 번 사무실에 잠깐 들러 회의한 것 외에는 모든 업무를 집에서 하고 있다. (…) 회사와 팀원들에게 매우 감사하다.’

엄마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각자의 상황에 따라 돌봄을 경험하는 시간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엄마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그동안 자신이 받아온 돌봄과 앞으로 주게 될 돌봄에 대한 의미를 새로이 깨우친다. 어떤 이는 생산노동 활동과 돌봄 활동 사이의 균형을 탐색하면서 여전히 돌봄의 의미를 고민하고, 또 다른 이는 회사 팀원들로부터 자신이 받고 있는 배려에 돌봄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다양한 목소리에서 비롯한 이 돌봄의 의미들은 나의 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할 수 있다. 나 역시 동료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시간과 마음을 내어줄 때가 있고, 반대로 내가 그들로부터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돌봄을 받기도 한다. 일이 바쁠 때면 내 몫의 가사일을 도와주는 가족이 있고, 종종 출장을 떠나는 친구의 반려견을 맡아 돌봐주는 일까지. 균일하지 않지만 이러한 경험들을 마주하며 나처럼 누군가에게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그 돌봄이라는 행위와 가치가 내 삶에도 늘 존재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울의 엄마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책에 수록된 사진이다. 책의 사진들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사진가가 찍은 인물 전체 및 부분 모습들이고 다른 하나는 참여자들이 일회용 카메라로 직접 기록한 일상 장면들이다. 인물 사진은 참여자 각자의 개성을 멋진 포즈와 표정을 통해 2020년 서울의 엄마들을 기록했다. 참여자들의 눈, 손, 귀 등 신체를 부분적으로 클로즈업한 사진은 특히 인상적이다. 여성, 시민, 그리고 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공고히 보여주는 느낌이다. 참여자들의 집에서의 일상, 일터에서의 시간들, 또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들 등을 일회용 카메라로 직접 기록한 사진들은 내 일상처럼 익숙하면서도 때론 이국의 한 장면인 듯 생경하게 보인다. 이 스냅숏들로 텍스트 너머에 있는 참여자들의 삶을 더 가까이 상상할 수 있는가 하면, 책 속의 텍스트를 내 일상으로 데려와 가까이에 있는 ‘돌봄’의 행위들을  관찰해보기도 했다. 또 이 무사하게 보이는 일상 속 장면들은 코로나19 이슈나 여성의 관점에서 접하는 수많은 사회 문제들, 가령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낙태죄, 정치계 성범죄와 n번방 사건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첨예한 글을 읽고 상승한 괴로운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내 주변에 잡음이 일어도 꿋꿋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니 왜인지 위안이 되었다. 사진 속 장면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한편 전통적인 돌봄의 주체로 여성이 호명되는 사회 인식과 시스템에 목소리를 낸 엄마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대목이다. 돌봄이라는 행위를 수행하는 데 더 적합한 성별이 존재할 수 없지만, 아직도 가정 내 돌봄 영역의 전통적 주체로 모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엄마들에게 지워진돌봄의 책임은 이들의 경제・사회・정치적 지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령 노동시장에서의 생산노동과 가정 내 돌봄노동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이유로 고용이나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위치의 여성은 소득 불안정을 경험할 가능성도 커지며 따라서 사회・정치적 참여 기회 또한 박탈당하는것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는 결국 불평등하게 지워진 돌봄의 부담으로 인해 여성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봄이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일이나 일상생활의 일부를 포기하고 다른 이에게 전념해야 하는데, 여기에 최적화된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런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밑도 끝도 없이 그 의무를 강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황을 고려해서 가장 적합한 사람이 하는 게 올바르다고 본다.’

‘코로나19 때문에 애들을 긴급돌봄교실에 보냈는데, 돌봄 선생님 중 남성은 없다. 여성이 돌봄 선생님으로 채용되는 시스템이더라. 여성에게 씌워지는 돌봄의 프레임은 견고하고 기대도 높다. 역사 대대로 내려오는 그 인식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걸 나처럼 작은 한 명의 사람이 깨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 게다. 어찌 보면 큰 인식 전환의 경계에 있는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숙제 같다.’

낯선 세계에서 공통의 감각을 발견하기

『서울의 엄마들』에서 보여준 돌봄은 아이를 먹이고 입히는 것부터 아픈 이웃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식물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는 것까지 넓고도 다양하다. 그리고 이 돌봄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누구나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고, 누군가를 돌보거나 돌봄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날 기사에서 만났던 다수의 여성이 짊어지고 있는 돌봄의 무게가 내 처지에서는 그리 무겁지 않은 편이라는 생각에 안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위치가 돌봄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을 오롯이 공감하기 어려운 조건의 사람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많은 여성과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길 원하지만 나 자신이 어떤 여성들과는 이질적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서 그들과 결속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엄마들』은 이런 나를 그들의 일상으로 초대해 개인의 경험과 조건은 동질할 수 없으며 누구나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또 누구에게나 돌봄과 무관한 시간은 존재할 수 없기에 돌봄이라는 행위와 가치에 대해 폭넓은 관점으로 바라보고 논의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서울의 엄마들』처럼 여성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시간과 경험은 어디선가 고르지 않게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이 고르지 않은 기록에서 더 많은 공통의 감각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균일하지 않은 경험이 모여 하나의 관점을 형성하고 그 관점을 확장해 나감으로써 결국에는 또 다른 연대의 장을 생산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낯선 세계에 동참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응원을 보낸다.

* 이 글은 FDSC.txt에 게재한 ‘낯선 세계에서 발견하는 공통의 감각 – 『서울의 엄마들』 돌봄, 그 행위와 가치에 대하여’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Designflux 2.0 Essay Series
Design of Voice⟫ 이지원

우리 주변에 자리하는 사회적 불균형에 목소리를 내는 창작자,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들의 작업은 실천적이며 연대의 동기를 제공한다.

2007-04-30 | 벌들의 도움으로

Editor’s Comment

쾌속조형의 반대에 서 있는 완속조형의 사례. 혹은 동물의 힘을 빌린 디자인. 토마시 가브즈딜의 ‘벌들의 도움으로’는 일주일 동안 4만 마리의 꿀벌이 빚어낸 꽃병입니다. 하이테크와 대비되는 로우테크, 인간의 공예가 아닌 동물의 공예. 또 꽃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벌과 꽃병은 멋진 한 쌍이기도 하지요.

일반적으로 RP(Rapid Prototype) 기술은 시제품이나 모델을 제작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이지만, 특정한 경우 RP로 곧 완제품생산 단계를 대체하기도 한다. Material.MGX나 FRONT의 가구, 전등 등이 그러한 사례로 손꼽힌다. 이들은 복잡한 구조와 디자인조차 단 번에 소화하는 3차원 프린팅 기술의 힘을 극대화한 제품을 통해, 디자인 프로세스의 하이테크적 국면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토마시 가브즈딜(Thomáš Gabzdil)의 작업은 그와는 정반대 지점을 향해 있다. 그는 RP와는 정반대의 개념, 즉 ‘SP(Slow Prototype)’이라 부를 만한 디자인 과정을 통해 흥미로운 제품을 창조해냈다. 앞서 2007 밀라노 가구박람회 리뷰에서 잠시 소개했던 바, 그의 꽃병 ‘벌들의 도움으로(With a little help of the Bees)’는 4만여 마리의 벌들이 일주일에 걸쳐 부지런히 만들어낸 작품이다. 

토마시 가브즈딜은 왁스 시트로 꽃병의 기본 형상을 잡고, 벌들이 그 모양대로 집을 짓도록 모니터링했다. 벌들은 꿀과 밀랍으로 시트의 안쪽과 바깥쪽 모두에서 집을 지어가며 꽃병의 모양을 잡아나갔다. 디자이너가 한 일은 벌들이 본래의 디자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 그리고 언제 이 꽃병을 벌들로부터 떼어낼 것인지 결정하는 일 정도였다. 소재의 생산과 제품의 생산 모두 벌이 도맡은 셈이다. 그렇게 하나의 꽃병이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일주일이었다.

‘벌들의 도움으로’는 디자이너가 통제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를 디자인 안에 도입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 하다. 가령 꽃병의 어느 부분이 좀 튀어나왔다고 해서 벌들에게 “여기를 좀 다듬어 달라”고 주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디자인 과정에 동물을 참여시킨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다 – 가령 FRONT의 ‘쥐 벽지(Rat Wallpaper)’는 쥐들이 벽지를 뜯어먹은 자욱을 ‘문양’화 한 제품이다. 

기술과 트렌드가 속도의 경주를 펼치는 오늘날의 디자인 씬을 돌이켜 볼 때, 토마시 가브즈딜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느림’을 강조하는 선택을 했다. 그렇다고 인간의 ‘손’을 강조하는 전통적 공예 단계로 회귀한 것도 아니다. 사실 제품의 조형을 값비싼 3차원 프린터가 담당하건, 4만 마리의 벌이 담당하건 간에 조형의 수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서로 동일하다. 다만 토마시 가브즈딜은 ‘슬로우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속도와 매끈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 designflux.co.kr

2008-04-29 | 평범한 일상에 근거하라

Editor’s Comment

변화와 혁신을 말하는 목소리야말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변화와 혁신은 평범하고 지루하기까지한 일상의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웬디 마치는 말합니다. 2008년 미국산업디자인협회의 컨퍼런스에서 그가 이야기했던 “평범한 미래”를 다시 만나봅니다.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미국 포틀랜드에서는 미국산업디자인협회(IDSA)의 컨퍼런스, IDSA 웨스턴 디스트릭트(IDSA Western Distric Conference)가 개최되었다. 디자인플럭스의 콘텐츠 파트너 core77은 3일 간의 컨퍼런스 소식을 전했는데, 특히 인텔의 웬디 마치(Wendy March)가 제기한 논점에 관해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인텔 내 인간과 행동(People and Practices) 연구 그룹의 리더인 그녀는, “평범함”에 초점을 맞춘 발표로 청중의 호응을 얻었다. “미래는 평범할 것이다”라는 이름의 대담에서, 그녀는 일상의 평범한 관점이 미래 기술을 결정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평범함이라는 관점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이 연구자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등을 이야기했다. 40분간 진행된 강연을 통해 마치는 신선한 논지를 제기했다. 

IDSA WDC 2008 패널들의 모습. 우측에서 두 번째 인물이 웬디 마치이다. 

그녀는 인도, 브라질, 중국 등의 국가에서 사람들이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한 연구를 몇 년간 수행해 왔는데, 연구의 관점은 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차원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한 관점은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낳는다. 위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디자인은 일상적이며 심지어 지루하기까지 한 행동들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연구자들과 제품 개발자들의 시선 속에 잘 포착되지 않는 부분들이다. 

웬디 마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사물을 막힘없이, 또 쉽게 만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막힘 없고 쉬운 것을 바라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위와 같은 논지를 뒷받침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었다고. 일본의 한 주부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치는 그녀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주부는 매주 현금 다발을 직접 가지고, 각기 다른 3개 은행의 계좌 세 군데에 예금하고 있었다. 이 주부에게 온라인 뱅킹을 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온라인 예금은 너무 비싸고 또 너무 쉽다”고 대답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후자의 대답이다. 그것이 너무 쉽기 때문에 오히려 피하게 되는 것. 말하자면 은행까지 걸어가 그곳에서 직접 돈을 예금하는 그 모든 과정이, 이 주부가 돈을 관리 방법에 결합되어 있다. 

via core77 

ⓒ designflux.co.kr

2010-04-28 | 아이들에게 안경을

Editor’s Comment

퓨즈프로젝트의 작업을 분류하는 카테고리 중에는 ‘사회적 영향’이 있습니다. 2010년의 이 프로젝트도 그에 속하죠. ‘잘 보이면 더 잘 배울 수 있어요’는 아이들의 시력이 학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시작된 무료 안경 배포 프로그램입니다. 퓨즈프로젝트는 안경에 대한 아이들의 거부감을 줄일 만한 유쾌한 모양의 안경을 디자인했습니다.

Boy (9-11) wearing white t-shirt, portrait

OLPC에 이어 다시 한 번, 이브 베하(Yves Behar)와 퓨즈프로젝트(Fuseproject)가 아이들을 위한 멋진 디자인에 나선다. 이브 베하와 그의 디자인 팀이, 멕시코 정부의 함께 무료 안경 제공 프로그램, ‘잘 보면 더 잘 배울 수 있어요(See Better To Learn Better)’을 전개한다.

연구에 따르면 취학 아동의 11%가 시력 문제 때문에 학업에 방해를 받는다고 한다. 칠판의 글씨가, 책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멕시코에서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모레요스, 소노라, 치아파스 주의 취학 아동 가운데 60~70%가 교정 렌즈를 필요로 하며, 시력 보정 안경이 필요한 아이들 50만 명이 매년 또 입학한다. 시력 검사 및 안경 구입 비용도 부담이지만, 아이들 역시 안경을 낀다는 사실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안경을 끼면 놀림거리가 된다는 이유다.

‘잘 보이면 더 잘 배울 수 있어요’ 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다. 이브 베하와 퓨즈프로젝트 팀은 안경의 디자인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안경테의 소재로는 극도로 가볍고 유연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튼튼하다. 독특한 것은 안경테의 조립 방식이다. 안경테는 상하 두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기 다른 색상이나 모양의 프레임을 조합하면 재미 있는 안경테가 완성된다. 안경 착용에 대한 아이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다. 

퓨즈프로젝트는 OLPC 개발 때와 비슷하게, 아이들의 요구와 생활, 환경에 부합하는 안경을 디자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비영리적인 디자인 역시 영리적 목적의 작업만큼이나 감성적인 소구와 효율적인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이브 베하와 퓨즈프로젝트의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무료 안경의 배포는 바로 이달부터 시작되었다. 매년 30만 개의 안경이 멕시코 아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안경 생산을 맡은 멕시코의 렌즈 생산 기업 아우헨(Augen)은 이 프로그램을 위해 엔세나다에 새 안경 생산 시설을 마련하며, 생산 비용을 50% 가까이 절감했다. 이는 무료 안경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긍정적인 기반이다. 한편 무료 안경 프로그램을 멕시코 이외의 국가로 확대하기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이 안경이 앞으로 더욱 많은 아이들에게 선명한 세상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www.fuseproject.com

ⓒ designflux.co.kr

2011-04-27 | 다운로드를 위한 디자인

Editor’s Comment

음악이나 영화처럼 디자인을 내려받는다면. 2011년 드로흐가 ‘다운로드용 디자인’을 위한 플랫폼을 발표했습니다. 생산 도구부터 판매 방식까지, 디자인을 둘러싼 환경이 디지털화되었다면, 아예 이를 겨냥해 그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보자는 발상입니다. 애석하게도 이제는 어디로도 연결되지 않는 웹사이트 링크가 말해주듯, 드로흐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0년 전 제안된 디지털 디자인 플랫폼의 이야기를 되돌아봅니다.

1974년 엔초 마리(Enzo Mari)는 ‘자급자족 디자인(Autoprogettazione)’[i]이라는 이름으로 DIY 가구 설명서를 배포했다. 오늘날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와 유사하게 완제품이 아닌 디자인 청사진을 판매한다. 제품에서 아이디어, 디자인만이 추출되어 상품이 되고, 제작은 소비자의 몫이 되는 식이다. 

드로흐(Droog)도 이와 유사한 개념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올해 말 문을 열 www.make-me.com은 ‘다운로드 가능한’ 디자인을 위한 플랫폼이다. 오픈 디자인과 디지털의 가능성을 토대로, 디자이너와 제조사, 소비자를 위한 플랫폼을 마련한다는 것이 드로흐와 미디어길드(Mediagilde)의 목표다. 

제품 디자이너, 건축가, 패션 디자이너를 비롯하여,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 학교 및 기관들이 플랫폼에 참여, 각자의 디자인 청사진을 판매할 것이다. 다운로드할 수 있는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디자인들이 판매된다. 여기에는 소비자를 위한 맞춤화의 길도 열려 있다. 자신의 필요와 상황에 맞게 해당 디자인의 내용을 직접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최종 결정되었다면, 남은 것은 이제 제작이다. 소비자가 직접 제작에 도전할 수도, 혹은 지역의 제조업체를 이용할 수도 있다. 플랫폼의 또 다른 축은 제조사들이다. 소규모 공방, 3D 프린팅 전문 업체 등 지역 제조사들의 네트워크 역시 구축될 것이다.

드로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디자인에서 제조, 배급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개입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려 한다. “디자인을 디지털 영역으로 이끌게 되면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열린다. 그저 운송이나 보관 상의 효율성만이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 접근 방식, 혁신적인 디지털 디자인 도구, 온라인 쇼핑 경험, 배급 참여자들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불러온다.” 또한 그것은 드로흐를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열린 ‘다운로드를 위한 디자인(Download for Design)’은 디지털 디자인 플랫폼을 예시하는 자리였다. 이벤트아키텍처(EventArchitectuur), 미날레-마에다(Minale-Maeda)가 디자인한 CNC 컷 탁자와 책상, 수납장, 그리고 3D 프린터로 제작된 전원 소켓 등이 전시를 통해 소개되었다. 더불어 일반 컴퓨터 사용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을 디지털 디자인 도구들도 함께 선보였다. “프로세스의 핵심은 디자인을 단순화하고 더 많은 선택지들을 제공하는 데 있다.” 이벤트아키텍처의 설명이다.

이벤트아키텍처, ‘박스오라마(Box-o-rama)’
이벤트아키텍처, ‘파사드 & 기능(Facades & Functions)’
미날레-마에다, ‘인사이드아웃(Inside-out)’ 가구 

www.droog.com

ⓒ designflux.co.kr


[i] 번역 수정: 자가디자인 -> 자급자족 디자인

2010-04-26 | HP, 3D 프린터 출시

Editor’s Comment

2010년 HP는 스트라타시스와의 제휴로 3D 프린터 시장에 진출합니다. 2010년 4월 26일의 뉴스는 HP가 처음으로 선보인 3D 프린터 2종에 관한 소식입니다. 돌아보면 2000년대는 3D 프린팅 기술의 발전과 기기의 대중화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모형이나 시제품의 쾌속 제작을 넘어 기술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시도가 활발했던 시기입니다. 가령 2006년 프론트의 ‘스케치’ 가구 시리즈처럼요. 이제 3D 프린팅 기술의 활용 사례는 제품에서 건축에까지 더욱 넓게 더욱 자주 만나볼 수 있습니다.

“2D 프린터로 3D 제품을 디자인하는 수백만 명의 디자이너들이 있다.” 올해 초 HP는 스트라타시스[i] (Stratasys)와의 제휴를 발표하며, 3D 프린터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그 첫 번째 제품들이 5월 유럽에서 첫 선을 보인다 ‘HP 디자인젯 3D’과 ‘HP 디자인젯 컬러 3D’, 두 가지 모델이 내달부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다섯 개 국가에서 먼저 시판된다.

‘HP 디자인젯 3D’는 스트라타시스가 보유한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기술에 기반한 제품이다. 플라스틱 층을 쌓아 올려 입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소재로는 ABS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출시된 모델 가운데는 컬러 출력 모델이 포함된 바, 아이보리 기본 컬러 이외에도 검정, 빨강, 올리브그린 등 총 8가지 색상으로 결과물을 출력할 수 있다.

깔끔한 사무실용 3D 프린터. HP는 제품의 작동을 자동화하여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제품의 가격은 13,000유로. 한화로 약 1,900만원 수준이다. 아직까지 만만치 않은 가격대로, 개인 사용자보다는 기업, 학교 등에 적합한 제품이라 하겠다. 하지만 3D 프린터의 가격 장벽이 해를 거듭하여 낮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몇 년 안에 개인용 3D 프린터의 양산도 기대해 볼 만 하다.

www.hp.com
www.stratasys.com

ⓒ designflux.co.kr


[i] 스트래터시스에서 스트라타시스로 표기를 정정합니다.

2010-04-23 | 탑승권 리디자인 릴레이

Editor’s Comment

코로나19를 지나며 가장 먼저 여행이 ‘멈춤’에 돌입했고, 어느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항공권을 들던 때가 그리울 정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뉴스로 ‘항공권’ 이야기를 골라보았습니다. 어째서 항공권을 손에 들고서도 우왕좌왕하게 될까. 표를 언제 왜 들여다보게 되는가를 중심으로, 탑승권의 정보에 순서와 강조점을 부여한 어느 개인의 리디자인 제안과 그에 이어지는 릴레이입니다.

스퀘어스페이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일러 톰슨(Tyler Thomson). 그가 ‘안구 정화를 외치게 만드는 비행기 탑승권 디자인’을 이야기한다. 발단은 델타 항공의 탑승권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뉴욕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던 차, 무료함을 달래려 무엇인가 읽을 거리를 찾다 손에 쥔 것이 탑승권이었던 것. 문제는 비행기 표의 디자인이 그에게 모욕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는 데 있다. 결국 타일러 톰슨은 몰스킨 수첩을 꺼내들고 ‘내맘대로’ 탑승권 디자인에 나섰다.

“탑승권을 살펴보는 것은 언제이며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는 자신의 경험들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내가 탈 항공편이 무엇인지, 어느 게이트로 입장해야 하는지, 좌석은 어디인지, 출발 / 도착 시각은 몇 시인가. 이 모든 정보가 기존의 항공권에도 모두 적혀 있지만, 어째서 매번 사람들은 손에 표를 들고서도 우왕좌왕하는 것일까.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아래의 비행기표들이다. 물론 모두 ‘타일러 톰슨 버전’으로, 델타 항공의 정식 항공권은 아니다.

한편 타일러 톰슨의 글 아래로, 다른 디자이너들의 리디자인 도전기가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아예 문장으로 정보를 표기한 항공권처럼 흥미로운 제안들이 눈에 띈다. 아래 패스페일 패이지에서, 여러 리디자인 버전들을 비교해 보시길. 

passfail.squarespace.com

via core77

ⓒ designflux.co.kr

2010-04-22 | 덴버 ‘B-사이클’

Editor’s Comment

2010년 덴버가 도시 차원의 공유 자전거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B-사이클 사와 손잡고 도시 곳곳에 대여소와 공유 자전거를 설치했지요. 당시에도 공유 자전거는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새롭다면 그것이 자동차의 나라라고 해도 좋을 미국의 소식이었다는 점이랄까요. 2010년 지구의 날에 달리기 시작한 덴버 B-사이클은 덴버 시민의 유용한 발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비판도 있었습니다. 보관소가 주로 백인들이 사는 살림 넉넉한 동네에 설치되어, 막상 이용해야 할 사람과 지역을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덴버 B-사이클은 2020년 1월 운영이 종료되었습니다. B-사이클만이 아닌 여러 업체의 경쟁 입찰 방식으로 하이브리드 자전거, 스쿠터 등으로 프로그램을 전환하겠다는 시의 결정에 따른 결과입니다.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도시 규모의 자전거 공유 프로그램이 전개된다. 덴버 시가 B-사이클(B-cycle)과 손잡고 ‘덴버 B-사이클’을 런칭한다. 이를 통해 50여 곳의 대여소, 총 500대의 자전거가 이용객들을 맞이하게 된다. 덴버 시장 존 히켄루퍼는 “덴버의 시도가 다른 모든 주의 모범이 될 만한 사례가 될 것이며, 자전거 공유가 미국인의 건강증진과 탄소발자국 감소를 위한 실현가능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리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B-사이클은 휴매너(Humana)와 트렉 바이시클(Trek Bicycle), 크리스틴 포터+보거스키(Crispin Porter + Bogusky)가 공동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미국의 도시 환경에 적합한 자전거 공유 시스템을 모색해왔다. 덴버는 B-사이클이 처음 도입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모든 자전거에는 컴퓨터가 장착되어 있어, 이동거리, 칼로리 소모량과 같은 운동량을 표시하고, 더불어 자전거를 타는 동안 탄소배출량이 얼마나 절감되었는지도 알려준다. 

자전거 공유 시스템 도입은 그리 새로운 소식은 아니어서, 유럽에는 이미 성공적인 사례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미국은 차라리 자동차 공유가 더 현실적이라 여겨질 만큼, 자동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덴버의 자전거 공유 시스템 도입은, 미국에서는 실질적으로 초유의 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덴버 B-사이클’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다.

www.bcycle.com

ⓒ designflux.co.kr

2010-04-21 | 식탁에 오른 자연

Editor’s Comment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의 ‘살로테 사텔리테’는 나이 제한이 있는 전시입니다. 35세 이하의 디자이너만 참여할 수 있지요. 1998년 첫 전시 이래 1만 명 이상의 젊은 디자이너가 참여했고, 이제는 익숙한 이름이 된 디자이너들도 여럿입니다. 2010년 살로네 사텔리테에서 단연 주목받은 신인은 나오 타무라입니다. ‘계절’이라는 이름의 식기 디자인으로 1등상을 수상한 그는 2010년 그때 밀라노 그곳이 커리어의 시작이었다고 단언합니다. 반갑게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년 화제가 되었던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에서처럼요.

디자이너 나오 타무라(Nao Tamura)에게 올해 밀라노 전시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지 모른다. 영 디자이너들이 주인공인 ‘살로네 사텔리테(Salone Satellite)’ 전시 현장. 그녀의 푸르른 식기 컬렉션, ‘계절(Season)’은 다른 디자인들 사이에서도 유독 존재감을 자랑했다.

실리콘 소재의 접시. 겉보기에 영락 없는 푸른 잎사귀로, 여러 장을 겹쳐 쌓으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장식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계절’은 지극히 기능적인 식기이기도 하다. 소재 자체의 부드러운 성질 때문에 접시를 돌돌 말아 수납해도 좋다. 또 뛰어난 내열성으로 오븐이나 전자레인지에도 걱정 없이 사용 가능하다. 

“내가 자란 곳에서는 봄이면 벚나무 잎으로 과자를 감싸고, 여름에는 토마토 가지를 깎아 음식을 담았다. 가을이면 단풍나무의 낙엽으로 식탁을 장식했고, 겨울이면 대나무의 향기가 상 위에 감돌았다.” 나오 타무라는 ‘계절’을 통해, 일본의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자연과 기술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식기, ‘계절’은 2010 살로네 사텔리테 어워드에서 1등상을 수상했다. 

www.nownao.com

ⓒ designflux.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