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내 방이 생긴 건 6살 때였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하고, 혼자서 어두운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것이 가능해진 무렵이었다. 나의 첫 독립과 동시에 내 방에는 피아노가 생겼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갈색 피아노였다. 나는 그 해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피아노에 소질이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기 이전부터 내 방에는 피아노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또래 여자아이들은 모두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그 친구들의 집에도 당연히 피아노가 있었다.
엄마는 우리 집에 피아노가 들어온 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아빠의 사업 성공으로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피아노가 내 방에 놓이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중산층’이 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아파트에 피아노가 빠지는 것은 고수 없는 쌀국수 같은 그런 것이었나보다.
우리 집에 들어왔던 피아노의 가격은 180만 원이었다. 88년까지만 해도 월 소득이 80만 원에 그치지 않았던 중산층 가정의 물건치고는 꽤 비싼 금액이었다. 당시 수입 피아노는 400~600만 원까지 거래되고 있었다.[1]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그 시기 중산층 키즈는 누구나 피아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월간지 「말」은 이 시기 피아노를 중산층의 필수품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만약 스스로 중산층인지 아닌지를 측정해보고 싶다면 간단하게 다음의 15가지 품목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한번 살펴보면 된다.
△전화, 냉장고, 컬러텔레비전, 카메라
△오디오 시스템, 피아노, 전자레인지, 비디오, 크레디트 카드, 승용차
△에어컨, 컴퓨터, 콘도회원권, 골프회원권, 헬스클럽회원권
이 중에 두 번째 항목과 세 번째 항목은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 한두 가지 없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만 있으면 구입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2]
각종 회원권과 시대의 흐름으로 사라진 물건들을 차치하고는 대부분이 현재는 가정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 물건들이다. 다만 피아노는 이야기가 다르다. 피아노는 현재 전화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과 같은 필수품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피아노는 편리함이나 효율성과 같은 속성과는 거리가 먼 사물이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90년대 중산층 가정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피아노는 어떻게 중산층의 필수품이 되었을까? 무엇이 이 시기 중산층들을 피아노 소유에 열망하도록 만든 것일까?
피아노는 상류층을 표현하는 매개로 미디어에 종종 등장해왔다. 영화 <하녀(1960)>는 피아노 선생님인 동식의 집에 들어오게 된 하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름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하녀’에게 동식은 말한다. ‘얘기해두지만, 피아노는 절대로 만지면 안 돼.’ 피아노는 그 집의 아이들도,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여공도 만질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하녀는 만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영화에서 피아노는 하녀와 동식을 구분하는 하나의 계층적 기호였다. 하지만 하녀와 동식이 하룻밤을 보내고 난 후, 하녀는 서슴없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동식과의 교류가 계층적 질서를 무너뜨린 것이다.
1960년 경향신문 연재소설 <장미와 태양>에도 피아노를 치는 주인공 영식이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영식을 ‘집에도 피아노가 있을뿐더러 재산가의 집 자제라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워온’ 사람으로 표현[3]한다. 피아노의 소유와 배움의 이유를 ‘재산가의 집 자제’라는 단서 하나만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피아노는 영식의 계층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인식된다. 19세기 중반 부르주아 가정에서도 피아노가 상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에릭 홉스봄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르주아 가정의 전형적인 악기 형태는 정교하고 값비싼 극히 대형의 악기, 즉 피아노였다. … 부르주아 풍의 실내란 피아노 없이는 제대로 갖추었다고 할 수 없었다. 피아노 없는 부르주아 집안의 따님이란 어불성설이었다. 하긴 그 따님들은 그리하여 밑도 끝도 없이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려야만 했지만.”[4]
소설 <장미와 태양>의 영식과 마찬가지로, 19세기 중반의 부르주아 따님들 역시 부르주아라는 이유만으로 피아노를 쳐야 했다. 피아노의 비싼 가격과 큰 덩치가 경제적 능력과 충분한 공간을 전제로 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피아노가 90년대 확산된 중산층의 ‘필수품’이 되었다고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싼 가격과 큰 덩치로는 피아노를 대체할 수 있는 사물들은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고급 침대라던가, 가족들이 모이는 공간을 안락하게 만들어주는 가죽 소파라던가, 구첩 반상이 세팅 가능한 넓은 식탁 등은 피아노만큼의 공간과 경제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90년대 초 ‘책상 겸용 피아노’가 탄생할 정도로 이 물건들을 집 안에 욱여넣으려는 시도는 없었다. 중산층의 필수품에도 이 물건들은 포함되지 못했다. 피아노가 중산층의 필수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비싼 가격과 큰 덩치가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중산층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1980년대 후반, 조기교육 붐과 함께 예술을 기반으로 한 학원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1년 만에 음악, 미술, 무용, 연극영화학원은 21개, 규모가 작은 과외교습소의 경우는 무려 63개소가 늘어나기도 했다.[5] 조기교육에 대한 관심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지만, 유달리 예술 교육에 집중되었던 부분은 영어 조기교육이 관용어처럼 쓰이고 있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래리 쉬너는 예술의 매력은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이 아닌, 고상한 즐거움을 향한 취미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고상한 즐거움을 느끼는 경험이 보편화 될수록 품위 있는 대중과 무지한 빈곤층 또는 상스러운 부자들의 ‘조악한’ 즐거움과 구별된다[6]고 설명한다. 예술 조기교육은 중산층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고상함과 품위를 덧씌우는 활동이었다. 당시 내 또래의 중산층 부모들이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1955~1964년생)임을 감안하면, 그들이 누리기 힘들었던 문화적 혜택에 대한 갈망이 자녀 교육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단순히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너머 품위까지 갖춘 고상한 집단으로의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다. 경제적 여유로움과 예술을 즐기는 고상함을 겸비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오던 이상적인 중산층의 모습이었다.
확산된 중산층은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으로의 이동을 통해 변화한 계층을 드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는 이상적인 중산층의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아파트는 표정이 없다. 주택이 대문의 형태, 벽돌의 색깔, 건물의 모양 등으로 집주인의 취향과 생활 수준을 드러낸다면, 아파트는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 모든 정보를 포커페이스로 일관한다. 90년대 후반 브랜드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아파트는 알맹이를 알 수 없는 선물 상자와 같은 공간이었다. 집주인의 취향이나 생활 수준을 드러내기는커녕, 드러낼 만한 요소도 마땅치 않았다. 알맹이를 넘볼 수도 없지만, 드러낼 수도 없는 단절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90년대 중산층으로 편입한,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아파트의 외형은 너무나 폐쇄적이었다.
그런데 피아노, 정확히 말하면 피아노의 소리는 공간의 단절을 넘어선다. ‘심금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가 현관을 넘어설 때면, 포커페이스의 현관문은 비로소 표정을 갖기 시작한다. 중산층에 편입한 여유로움이, 예술을 향유하는 고상함이, 자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엄마는 피아노를 사들이면서 온 가족들이 피아노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엄마는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는 집을 바라보면서 그런 풍경을 그려왔을 것이다. 문밖으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는 ‘즐거운 나의 집’, 아니 ‘즐거운 너의 집’을 그린다.
피아노가 있을 무렵 우리 집에는 피아노 조율 아저씨가 방문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조율을 받고 난 뒤의 피아노 소리는 더 맑은 음색을 퍼뜨렸다. 그럴 때는 왠지 집안의 공기마저 화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예술을 즐기는 고상한 취미를 갖춘 가족들이 현관문을 넘어선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피아노의 소리는 문을 열지 않고도 그 집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여기 이상적인 중산층 가족이 살고 있어요!’
외환위기 이후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사물은 피아노였다. 아파트에서 피아노의 소리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사라진 피아노 소리가 중산층에서의 이탈을 대변했다. 피아노 소리가 사라지고는 이사를 가는 집이 늘어났다. 다시 현관문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즐거운 너의 집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1] 「사치품 즐비… 서민 고외감 깊어」, 매일경제, 1989.05.27.
[2] 「말」, (주)월간 말, 1993.03.
[3] “처음에는 서서 한손가락으로 피아노의 키이를 눌러보며 가벼운 곡을 치던 이영식은 선주 어머니가 얼른 들어오지 않기에 의자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 결코 잘치는 편은 아니지만, 자기 집에도 피아노가 있을뿐더러 재산가의 집 자제라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워 왔던 것이다.” 박계주, 「장미와 태양 (76)」, 경향신문, 1960.07.12. 4면
[4] 에릭 홉스봄, 정도영 역, 『자본의 시대』, 한길사, 2012, p.444
[5] 「다양화사회 (24) “똑똑한 우리 아이”… 조기교육 열풍」, 『동아일보』, 5면, 1989.08.19
[6] 래니 쉬너, 김정란 역, 『예술의 탄생』, 들녘, 2007, p.204
Designflux 2.0 Essay Series
⟪중산층의 잇템 : 90년대 가정의 디자인문화⟫ 양유진
중산층의 시대. 그들의 집에 자리한 ‘필수 아이템’은 무엇이었는지, 그 물건들은 왜 ‘필수 아이템’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며 그 시절 디자인문화를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