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에 온 걸 환영한다.” 시작부터 이런 달갑지 않은 문장이 등장한다. 지겹게 들어온 뉴노멀 타령인가 싶지만 저자인 기어트 로빈크가 말하는 뉴노멀은 IT 인프라의 전지구화, 전지구적 컴퓨테이션(planetary-scale computation)이 우리 삶을 통째로 재편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러니 책 제목의 ‘디자인’이라는 말이 디자인 분야에서 통용되는 것과 다를 것이라 짐작할 법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공학 관련 영문도서의 경우, 디자인이 그야말로 ‘설계’를 뜻하지만 이 책에서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디자인이 맞다. 디자인 대상이 개별적인 사물과 이미지에서 소프트웨어, 시스템까지 확장되었을 뿐.
실제로 이 책에서는 바우하우스부터 인터넷 초창기까지 디자이너, 예술가, 건축가가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회고하면서 그들이 꿈꾸면서 쌓았던 것이 구글, 페이스북 같은 소수의 성공과 이익으로 빨려 들어간 상황을 설명한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이 노동 계급의 일상적인 현실에 힘을 실어주려던 시절”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부자와 유명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한다. 즉, 99%인 우리가 1%의 독점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니 “H&M 행성의 열망”이라는 표현이 틀리진 않다.
이 슬픈 구도는 네트워크, 플랫폼 구조에서 “offline as the new luxury”라는 역설로 나타난다. 즉, 행복한 소수는 개인 비서들이 온라인 업무를 담당하는 덕분에 오프라인을 만끽하는데 불쌍한 디지털 노동자(cognitive precariat)는 밤낮으로 네트워크 신호를 좇기 바쁘다. 여기서 저자는 또한번 달갑지 않은 문장을 남긴다. “디지털 디바이드 2.0에 온 걸 환영한다.”
이런 비판적 미디어 이론이라면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를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저자가 1987년에 미디어 이론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클라우스 테벨라이트(Klaus Theweleit)와 함께 키틀러가 자신의 롤모델이었다고 고백했으니 이 책이 <축음기, 영화, 타자기>(문학과지성사, 2019)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참, 저자가 1987년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진로를 결정한 것은 아니고 그때 컴퓨터를 샀을 뿐이란다.
이 책에는 또다른 중요한 인물과 개념이 등장한다. 사회학자이자 미디어와 디자인 이론가인 벤자민 브래튼(Benjamin Bratton)의 스택이다. 기어트는 브래튼의 저서 <스택(The Stack)>(2016)이 레브 마노비치의 <뉴 미디어의 언어>(2001)를 이어받은 것으로 보았다. 아무튼 스택은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등장한다. 기어트가 네트워크, 미디어, 플랫폼의 관계를 “우리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플랫폼 기반의 미디어를 공유한다”고 절묘하게 정리했는데 브래튼은 이 세 가지가 더 이상 따로 놀지 않고 겹쳐지고 연결되어 거대한 데이터 구조와 인프라를 구축한다고 보았고 그것이 바로 ‘스택’이다.
정부와 기업의 무차별 개인 정보 침탈 등 techno-sadness의 우울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막판에 마스크 이야기가 약간의 반전을 보여준다. 인터넷 문화의 핵심 가치인 익명성(anonymity)을 위한 장치로서 마스크(예컨대, 소설과 영화로 유명해진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Guy Fawkes))가 언급된 것이다. 감시 기술에 대항하는 아티스트와 패션 디자이너들이 정치적인 형태로 익명성을 고수하려는 전시 사례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면서 약간의 가능성 또는 행동을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책을 덮으면서 기어트는 초기 인터넷 문화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가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가 언급한 대로 우리가 진실을 알아냈다한들 뭘 어쩔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저자가 플랫폼과 스택의 실체를 열심히 정리해서 알려줬으니 슬픔에 잠기기보단 정신 바짝 차리고 일단 마스크라도 잘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