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5 | 접힌 잎

Editor’s Comment

스웨덴의 디자인 스튜디오 클라에손 코이비스토 루네가 화웨이의 휴대폰을 디자인하며 생각한 이미지는 살짝 접힌 잎사귀였습니다. 오래된 전화기, 초창기 휴대폰의 형태를 가져온 것이죠. 스마트폰이 우세종으로 자리잡던 즈음, 이처럼 반작용 혹은 반동이라 할 계열의 휴대폰 디자인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의도적인 시대착오라고 할까요.

휴대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휴대폰은 많은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무엇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휴대폰 시장의 중심은 스마트폰이다. 어느 새 전화로서의 기능이 ‘멍청하다(dumb)’고 불릴 정도이다.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휴대폰들이 이례적으로 여겨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클라에손 코이비스토 루네(Claesson Koivisto Rune)의 휴대폰 디자인, ‘접힌 잎(Folded Leaf)’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2009년 화웨이(Huawei)는 새로운 휴대폰의 디자이너로, 스웨덴의 디자인 트리오를 선택했다. 

화웨이가 클라에손 코이비스토 루네에 제시한 디자인 개요란, 전화기를 전화기의 핵심으로 되돌린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걸고 받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이 기능의 전부다. 이것은 전화로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는 기능 과잉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능을 축소한다는 것은 곧 ‘제품 디자인’에 주력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화웨이가 애초 우리 스튜디오에 끌린 이유는 우리가 건축, 가구 디자인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의 다분야적인 접근법은 전문 휴대폰 디자이너와는 다른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접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름이 암시하듯 ‘접힌 잎’의 가장 큰 특징은 각도이다. 상단의 디스플레이와 하단의 키패드 부분의 경계를 기점으로, 몸체가 살짝 구부러졌다. 여기에서 클라에손 코이비스토 루네는 지극히 익숙한 두 가지 전화 디자인의 곡률을 참조했다. 1930년대의 고전적 수화기와1990년대 후반의 덮개 달린(clam shell) 휴대폰 혹은 플립 휴대폰이 그것이다. 휴대폰의 ‘접힌’ 몸체는 귀에서 볼까지 연결되는 얼굴선의 각도를 고려한 것으로, 손 안에서도 안정감 있게 붙는다. 곡률 덕분에 휴대폰을 탁자 위에 두면 디스플레이가 약간 들린 상태로 사용자 쪽을 향하게 된다. 반대로 휴대폰을 엎어두는 경우, 전면이 바닥에 직접 닿지 않아 화면에 날 수 있는 자잘한 흠집을 예방한다. 

클라에손 코이비스토 루네의 ‘접힌 잎’은 전통적인 제품 디자인의 영역으로 복귀한다. 스크린을 위한 케이싱이 아닌 그야말로 몸체의 부활이다. ‘접힌 잎’의 소개에 ‘단순화’, ‘디자인주도적’과 같은 수사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제품 디자인의 강조는 기본 기능으로의 축소와 발맞춰 이뤄진다. 에시르(Æsir)가 이브 베하를 찾았듯, 화웨이가 클라에손 코이비스토 루네를 찾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접힌 잎’은 지난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공개되었다. 수퍼스튜디오 피우(Superstudio Píu)에서 열린 전시에서 화웨이는 휴대폰과 함께 서적 <접힌 잎 / 클라에손 코이비스토 루네>도 함께 선보였다. 

www.claessonkoivistorune.se
www.huawe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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