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04 | 허구의 디자인에 주목하라

Editor’s Comment

제품이 되기 위한 전 단계로서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전면화한 가상 또는 허구의 디자인. 2008년, 코어77의 수석 에디터 앨런 초치노프는 생산가능성과 무관한 상상과 아이디어를 담은 디자인 혹은 사물의 개념에 집중하여 그 자체를 소비의 대상으로 담은 디자인을 모두 아울러 ‘프로토타이핑’이라 부르며, 그러한 허구의 디자인에 담긴 가능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Core77의 수석 에디터, 앨런 초치노프(Allan Chochinov)가 최근 어도비 ‘싱크탱크’에 흥미로운 아티클을 게재했다. ‘창의적인 제스처 혹은 지루한 프로토타이핑? 허구적 제품의 중요성(Creative gesture or vapid prototyping? The importance of fictional products)’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그는 프로토타이핑의 개념을 보다 확장시킨다. 

글의 핵심은 ‘허구의 제품fictional products’이라는 용어에서 출발한다. 종종 네이버와 같은 포털 사이트에 누군가 퍼온 가상의 휴대폰 디자인이 메인 페이지에 붐업되어 올라오기도 한다. 이는 디자인 아이디어가 얼마나 폭넓게 유통되고 있는가를 반증한다. Worth1000.com과 같은 사이트가 주최하는 온라인 그래픽 공모전에 선보이는 수천 개의 아이디어들, 혹은 이사무 사나다의 iPhone 시리즈처럼 소위 ‘iAnything’이라 할 만한 가상적 애플 제품에 대한 상상. 이 모두는 편리한 디자인 툴을 이용해 빠르고 쉽게 생산된 산물로, 인터넷을 통해 바이러스처럼 전파된다.

프론트 디자인, ‘스케치(Sketch)’

앨런 초치노프는 이러한 현상 속에서 ‘아이디어를 소비의 대상으로 삼는 디자인’의 사례들을 발견한다. 단지 현실화되지 않은 상상의 산물만을 두고 허구의 디자인이라 부르는 것만은 아니다. 2006년 프론트가 공개한 ‘스케치’ 가구의 동영상은 그 즉시 세계 곳곳의 블로그로 퍼져나갔다. 이를 두고 초치노프는 “개념의 소비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라 언급한다. 영상을 본 그 누구도 가구를 구매하겠노라 다짐하지 않았고, 심지어 프론트 마저도 가구 판매에 목적을 둔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제대로 된 디자인과 공정을 거쳐, 실제 목표한 기능을 완벽히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판매는 염두에 두지 않은’ 제품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허구적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생산과 소비 개념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켈리 돕슨(Kelly Dobson), ‘블렌디(Blendie)’, 2004
– 마이크와 모종의 소프트웨어가 부착된 주방용 블렌더. 사용자가 실제로 ‘그르릉’ 소리를 내면 그제서야 작동하는 기계다. 본명히 실존하는 제품디자인이나, ‘과연 어느 정도 현실적인가? 혹은 어느 정도나 제품다운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케이스다. 
(동영상 보기)

이런 허구의 디자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이야기’를 전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소문을 탄 이 상상의 산물들은 기능에 충실해서가 아니라, 이야기거리를 내포하였기에 널리 전파된다. 반면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제품들의 경우, 스토리텔링의 요소란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기능 아니면 형식 둘 중 하나가 우세한 식이다.” 초치노프는 크랜브룩 예술학교에 재직중인 3D 디자이너 스콧 클링커(Scott Klinker)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더욱 많은 제품디자이너들이 사용자들의 행동을 파악하고, 경험의 접점을 찾기 위해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작가로서의 디자이너 designer as author’ 개념이 부상하는 이유다. 이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제품 디자인이 시장을 이끌게 된다면, 디자인은 대중문화 속에서 대안적 가치를 소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록 생산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 기발한 상상과 아이디어의 디자인, 혹은 사물의 개념에 집중해 이를 소비의 대상으로 삼는 디자인. 이 모두가 또 다른 의미의 ‘프로토타이핑’이라는 것이 앨런 초치노프의 요지다. 실제 모형의 제작이라는 좁은 의미의 프로토타이핑 개념에 한정하지 않고 용어의 근원적 함의를 돌이켜본다면, 이와 같은 논지도 수긍이 간다. 

그리고 이런 허구의 디자인을 ‘만일 그렇다면?’이라는 시나리오를 통해 현실로 끌어온다면, 이 ‘디자인 픽션’이야말로 실제 디자인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만한 잠재성을 지지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심지어 가까운 미래 RP 기계나 3D 프린터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모형의 생산이 곧 제품의 생산이 되는 때가 온다 하더라도, 초치노프는 여전히 허구의 디자인이 픽셀의 형태로 소비되고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되며 그렇게 ‘아이디어의 영역’에 머무르는 편이 최선일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앨런 초치노프의 아티클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Allan Chochinov] Creative gesture or vapid prototyping? The importance of fictional products

ⓒ designflux.co.kr

기사/글에 대한 소감과 의견을 들려주세요.

More

뭉크 미술관 가구 디자인

지난 10월 22일, 노르웨이 오슬로에 뭉크 미술관(Munch museum)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개관했다. 개관 전부터...

2009-08-25 | 그 미용실 황량하다

철거 중인지 완성된 것인지 아리송한 실내의 상점들이 부쩍 늘어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매끈함의 정반대에 선 반폐허의 미감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었지만, 미감을 논하기 이전에 위생을 걱정해야 할 곳들도 적지 않았지요. 2009년의 어느 ‘황량한’ 미용실 인테리어 소식을 보며, 오늘 여기의 어떤 상점들을 생각해 봅니다.

2009-12-02 | 콘크리트, 천이 되다

콘크리트에는 틀이 필요하다는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콘크리트. 콘크리트 캔버스 사의 ‘콘크리트 천’이 그것입니다. 방염 패브릭과 방수 PVC 사이에 콘크리트 믹스가 든 형태로, 콘크리트 천을 시공한 후 물을 부으면 단단하게 굳어 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거뜬히 제 역할을 해냅니다.

2009-09-03 | 인타입스, 인테리어의 유형학

1997년 코넬 대학의 잰 제닝스 교수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유형 분류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시대, 양식, 문화권에 걸쳐 반복되어 등장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패턴들을 연구하고 분류하여 그것에 일정한 이름을 부여하는 작업이었지요. 가령 라운지 의자들이 서로 마주한 익숙한 배치(때로 커피 테이블이나 러그가 사이에 놓여 있기도 한)에는 ‘대면(Face to Face)’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2013년에는 두 명의 학부생이 만들어낸 ‘언룸(Unroom)’이라는 신조어가 인타입스에 추가되기도 했지요.(...)

Designflux 2.0에 글을 쓰려면?

Designflux 2.0는 여러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에세이, 리뷰, 뉴스 편집에 참여를 원하시면 아래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