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22 | 벨크로의 힘

Editor’s Comment

특정 제품의 이름인 고유 명사가 그런 물건 일반을 통칭하는 보통 명사가 되기도 합니다. 벨크로도 그런 경우죠. 생활 속 익숙한 물건이 된 벨크로는 또 생체모방 디자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2007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아트리움은 벨크로에 습격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신진 디자이너 루이스 에슬라바는 이 저렴하고 익숙한 물건으로 조명과 벽장식을 선보이며 여러 모로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흔히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는 의류, 신발, 가방 등의 제품에 흔히 사용되는 유용한 발명품이다. 벨크로의 한쪽 면에는 작은 갈고리들이, 다른 면에는 둥근 올가미들이 촘촘히 배열되어 있어 서로를 단단히 부착시킨다. 1940년대 초 발명된 이래 광범위한 제품에 응용되어 왔지만, 벨크로는 사실 그다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일단 단단히 부착되고 나면 겉면의 봉제선만이 벨크로의 존재를 암시할 뿐이다.

스페인의 떠오르는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루이스 에슬라바(Luis Eslava)는 가려져 있던 벨크로를 디자인의 전면에 부각시킨다. 지난 1월부터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아트리움에는 벨크로를 이용한 조명, 벽 장식이 설치되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최신 소재와 생산 기술에 몰두하는 요즘의 추세를 돌이켜볼 때, 벨크로는 다소 초라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에슬라바의 디자인에 주목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 전시를 통해 루이스 에슬라바는 벨크로만의 독특한 유연성과 촉감을 극대화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배치에 따라 무한히 재배열되어 빛의 패턴을 바꾸는 전등갓과 어떠한 벽에도 부착 가능한 장식물까지, 에슬라바의 디자인은 마치 벨크로로 그려낸 3차원 드로잉처럼 보인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자유롭게 붙여보며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들은 ‘DIY(Design It Yourself)’라는 트렌드와 맞물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스페인 발렌시아 출신의 루이스 에슬라바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디자이너로, ‘성모 마리아여, 우리의 데이터를 보호하소서’와‘벨크로 라이트’와 같은 작품으로 작년 한 해 유수의 디자인 페어를 순회했다. 최근 하이메 아욘을 필두로 스페인 디자인의 영향력이 새롭게 주목받는 가운데, 루이스 에슬라바와 같은 탄탄한 신진 디자이너들 역시 속속 국제적인 무대로 진출하고 있다. 

ⓒ designflux.co.kr

기사/글에 대한 소감과 의견을 들려주세요.

More

2010-06-21 | 벌들이여 다시 한 번

2007년 4월 30일 뉴스의 주인공, 토마시 가브즈딜 리베르티니가 다시 한 번 오랜 파트너와 손을 잡았습니다. 4만 마리의 벌들과요.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에서 그는 앞서보다 정교한 조각상을 선보였는데요. 벌들이 분주히 작품을 최종 완성하는 과정을 전시 현장에서 그대로 보여주며,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리베르티니와 벌의 인연은 올해에도 이어져, 지금 2021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벌집 건축’이 전시 중입니다.

2008-05-02 | 가구로 다시 만나는 그녀, 발렌티나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 루이즈 브룩스를 빼어닮은, 핫셀블라드를 든 사진가인 그녀는 관능, 희열, 백일몽, 사도마조히즘의 위험한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이탈리아의 만화가 귀도 크레팍스의 대표작 〈발렌티나〉의 이야기입니다. 1965년에 태어난 발렌티나 시리즈는 1980년에 막을 내렸고, 작가 귀도 크레팍스도 2003년 세상을 떠났지만, 이 유명한 여인은 책을 떠나 2008년에는 가구의 모습으로 2017년에는 벽지의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2011-11-04 | 야생 순록 관찰소

노르웨이 도브레 국립 공원에 야트막한 단층 건물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고원을 내려다보며 지역의 야생 순록을 살펴보는 관찰소입니다. 건물은 단순한 직선의 상자 실루엣을 지녔지만, 벽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결치듯 일렁이는 나무 벽은 옛 선박 건조 기술과 최신의 기술을 동시에 활용하여 구현한 것이라고요. 스뇌헤타의 작지만 인상적인 건축을 만나봅니다.

2010-02-08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패럴림픽 시상대 디자인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5일째인 오늘, 디자인플럭스는 12년 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시상대 디자인을 다루었습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 나고 자란 목재와 밴쿠버 출신의 디자이너와 목공들이 함께 지역의 산세를 닮은 시상대를 만들어냈지요.

Designflux 2.0

Designflux 2.0는 여러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에세이, 리뷰, 뉴스 편집에 참여를 원하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