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말을 한다면 #3 사랑의 시간을 잃고 수난의 시간으로

@hyejin-chae

나는 달린다

나는 매일 달린다. 큰 키에 무성한 이파리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들의 호위아래서, 둥실 떠오른 태양 빛에 반짝이는 호수를 보며 공기를 가른다. 쏟아지듯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모든 잡생각을 날려 버린다.   

첫 기억 

이렇게 행복한 순간을 나에게 선사한 사람은 작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젊은 남자다. 그는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나를 데리고 왔다. 우린 대형 마트 안에 입점해있던 자전거 샵에서 만났고 그는 마트에서부터 나를 끌고, 타고 왔다. 

“아, 좋다.” 

나를 타고 처음 달리며 했던 그의 말을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다. 나에게 그 말은, 이제 너의 손을 잡고 내가 함께 달릴 거야, 너와 함께 하게 되어 참 좋다, 라는 의미였다. 과장된 해석이겠지만, 갑갑한 상점에서 탈출한 직후엔 그 말을 무조건 그런 의미로 믿고 싶었다. 나에게 올 새로운 시간에 대한 희망이 차올랐다. 그 말과 함께 그의 집으로 온 첫 날도 잊히지 않는다. 너무도 낯선 풍경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세네 걸음 걸어가니 양쪽으로 아주 긴 복도가 있었다. 긴 복도의 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똑같은 문이 나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새엄마를 따라가며 길을 잃을까 바닥에 하나씩 놓던 돌이 떠올랐다. 일정한 간격의 이 문을 거꾸로 따라가면 밖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별 의미 없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나를 끌고 오른쪽 복도 끝까지 쭉 걸어갔다. 분명히 끝인 줄 알았는데 오른편으로 방향을 꺾으니 또 다른 복도가 나왔다. 새로운 복도의 문 다섯 개를 지나고, 여섯 번째 문 앞에서 그가 멈췄다. 

이렇게 많은 문들이 있는 건물은 처음이었다. 난 이 집에 오고 꽤 오랫동안 문 밖에 세워져 보관되었다. 그동안 소실점을 향해서 점점 작아지는 문들을 보며 살았다. 문들은 정말 다 똑같이 생겼는데 그럼에도 구분할 수 있는 단서가 있었다. 어떤 집 앞엔 항상 박스가 많았고, 어떤 집 앞에는 주기적으로 쓰레기 봉지가 놓였고, 어떤 집 앞에는 아이를 태우는 빨간 유아차가 세워져있었다. 똑같은 문 앞의 서로 다른 풍경으로 집을 구분할 수 있었다.  

도착한 첫날 문 밖에 나를 세워놓고 자물쇠를 채워놓았던 그는 얼마 안 있다가 다시 나와 나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사라질까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단단한 쇠줄로 묶어놨는데 어떻게 훔쳐갈까 싶었지만, 자전거샵에 있을 때 온 몸이 해체될 정도로 수난을 당했던 다른 자전거의 사건 사고를 전해들었던 터라 약간은 안도했다. 그리고 며칠은 집 안 현관에 세워져있었다. 

그 때 본 집 안의 풍경은 단순했다. 현관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양쪽 벽에는 수납장 문이 있었고 정면으로는 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창문이 보였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천장이 높아서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계단이 슬쩍 보였는데 현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위층도 있는 것 같았다. 복층형 구조였다. 여기저기 박스가 쌓여있고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놓여있는 모습을 미루어 보아 그가 이 집에 살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걸 짐작했다.

찬란한 달리기

그는 신입사원이었다. 지방에 살며 취업 준비를 하다가 취직이 되어 신도시에 집을 구했다. 그의 부모님은 가끔 바리바리 반찬을 싸들고 올라왔고, 아들이 밥은 잘 먹는지 청소는 잘 하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고 무거워라… 그래도 아무리 바빠도 먹는 건 잘 먹어야 된다 아이가.”, “아 요놈 신발 좀 정리하지 이게 뭐고, 이 쬐깐한 집에 열댓명은 사는 줄 알겄네.” 현관 앞에 있던 나는 그의 부모님이 아들의 집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던 이런 말들을 종종 들었다.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인지, 원래 성격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본 날들의 그는 꽤나 성실한 모습이었다. 월, 화, 수, 목, 금. 일주일에 다섯 번 빠지지 않고 출근했고, 매일 아침 8시 전후로 집을 나섰다. 거의 늦은 적이 없었고, 늦어서 정신없이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본 일도 없다. 매번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와서 나를 묶어놓은 자물쇠를 풀었다. 난 그때마다 산책을 나가는 강아지의 기분이 되었다. 건물 밖을 나가서 마주하게 될 풍경을 알기 때문이다. 

오피스텔 건물의 작은 복도를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면 그는 내 위에 올라타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무와 벤치가 있는 공원길을 통과하면 넓은 자동차 도로가 펼쳐졌다.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 가에는 울타리가 세워지고 색상이 다른 좁은 자전거 길이 있었다. 그는 이 길을 따라가다가 횡단보도로 넓은 차도를 건너, 건너편의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차가 없는 곳, 나무가 많고, 새소리가 들리고, 호수가 있는 곳, 아침 해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입성한 사람들의 기분을 난 매일 아침 느꼈다. 다닥다닥 붙은 문들에 압도당할 것 같은 복도, 씽씽 달리는 커다란 자동차들의 소음에서 해방될 수 있는 나의 낙원! 호수공원! 

그는 아침마다 나를 타고 커다란 호수가 있는 이 공원을 통과해서 출근했다. 굳이 공원을 통과하지 않아도 회사를 갈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그도 나처럼 이 공원의 시간을 사랑했다. 빨리 갈 수 있는 단거리의 길, 시간과 체력을 최대한 아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길을 두고 공원을 둘러서 가는 일은, 이 시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을 제외하고 우리는 이 사랑하는 시간을 충만히 누렸다. 조금 춥거나 조금 더운 건 충분히 참을만했다. 

웰컴 투 더 헬

아침을 달린 후 회사 건물 아래 자전거 보관대에 묶여서 그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갈 때의 경로는 매번 달랐다. 단거리로 돌아가는 날이 꽤 있었고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갈 때도 있었다. 퇴근길을 공원으로 선택하는 날은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였다. 가끔 가는 공원에서 만나는 노을도 정말 아름다웠다. 

퇴근하고 집으로 도착해 복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문들을 보고 있던 어느 날 저녁, 남색 모자를 쓴 아저씨가 오더니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세워놓으면 안되는데…” 그는 잠시 주춤하더니 문 옆의 벨을 눌렀다. 방금 샤워를 했는지 젖은 머리 상태의 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이 자전거 때문에요. 공용 복도에 세워놓으면 안되거든요. 이번 달부터 관리소에서 집 앞에 개인 물건 놓는 거 단속하기로 했어요.”

“아…. 그래요?”

“밑에…1층에 자전거 대는 곳 있으니까 거기에 가져다 놓으세요.”

갑작스러운 통보로 나는 일단 집 안으로 옮겨졌다. 그 사이 현관은 재활용 쓰레기를 담는 박스들에 점령을 당한 상황이라, 집 안으로 들어가 벽수납장이 있는 통로에 세워졌다. 그는 변함없이 다음날 아침 나를 데리고 공원을 통과해 출근을 했고 단거리로 퇴근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그의 집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건물 1층, 재활용 쓰레기장 뒤편에 위치한 자전거 보관소에 묶인 것이다.

보관소에는 자전거들이 정말 많았다. 뽀얀 먼지를 덮고 있어 이곳에 있었던 시간이 꽤나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친구도 있었고, 나처럼 새롭게 온 친구도 있었다. 오래돼 보이는 자전거 중 하나가 갑자기 걸걸한 소리로 “웰컴 투 더 헬!”이라고 외쳤다. “뭐야… 아, 왜 갑자기 복도에 세우지 말란거야. 여기 더러워서 싫은데.”, “그래도 매일 나가니 다행이지 뭐야”, “다행이라고? 내가 왜 헬이라고 했는지 곧 알게 될걸… 여긴 한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야…”, “껄껄걸 절대 못나갈걸. 그리고 너네 공유자전거라고 아냐? 우린 걔네한테 밀렸어.”, “참 나, 뭐라고 하는거야?” 갑작스럽게 옮겨지는 바람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자전거들과 먼지를 뒤집어쓴 회색빛 자전거들이 티격태격했다.

공유자전거… 회색빛 회의주의자 자전거의 말을 통해 그 이름을 듣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난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길에도, 공원에도 똑같이 생긴 자전거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특정한 곳에 함께 보관이 되어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전거를 빼서 타고 갔다. 그런 보관소는 여기저기에 있었는데 현재 위치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 후에 도착한 곳 주변에 반납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공유자전거에 밀렸다는 그 말이 갑자기 나의 현실을 다시 보게 했다. 난 단순히 자리만 옮겨진 게 아닌 것일까? 

방치된 자의 눈으로 본 세상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진리다. 한동안 그가 변함없이 나를 찾아서 타고 다녔기에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추위가 시작되던 계절 무렵부터 그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영문을 몰랐지만 추위 때문일 것이라고, 다시 봄이 올 때 우리의 사랑하는 시간을 다시 만나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봄이 되도 그는 오지 않았고, 어느 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갑자기 찾아온 그가 나를 데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난 처음 보는 차 트렁크에 실렸고, 그는 옆자리에 친구를 태우고 운전을 해서 함께 조금 먼 공원으로 갔다. 그사이 자동차를 구입한 것이었다. 차에서 내린 그는 나를 타고 공원을 돌았고, 친구는 공원에 세워져 있던 공유 자전거를 타며 낙원의 시간을 즐겼다. 공원에서 보낸 시간은 어김없이 행복했지만, 그에게 생긴 새로운 차와 1층 자전거 보관소의 모습이 교차되며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바람에 충분히 그 시간을 누리지 못했다. 

이후로 나는 회색빛의 회의주의자 자전거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예상대로 그는 나를 가끔씩만 찾아오다가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정말 친구들의 말대로 다시 나갈 수 없는 지옥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자전거들의 입장에 대해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자전거를 왜 구입하는 것인가? 언젠가는 쓸 수도 있다는 그 막연한 이유로 어떤 관리와 돌봄 없이 방치해도 되는가? 그에 대한 책임은 어느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가? 단지 생명이 없는 사물이라는 이유로? 

공유 자전거의 등장 또한 방치된 자전거 수의 증가와 이어져 있을 것이다. 친환경 교통수단의 제공이 결국 폐기물로서의 자전거를 늘리는 상황이라니, 정말 아이러니다. 공유라는 이름은 얼마나 미래 가치적인가? 하나의 자전거를 너도 타고 나도 탄다. 생산량은 줄이고 사용 가치를 극대화 시킨다. 사용하는 과정은 얼마나 매끄럽고 편리한가?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을 키고, 현재 위치 인근의 자전거를 탐색해서 자전거를 이용하고 사용한 시간만큼 자동으로 결제하고, 도착 장소 근처에 자전거를 세워두면 된다. 

가치있고 매끄럽고 편리한 세상 뒤에 내가 있는 이런 세상을 사람들은 기억할까? 도심의 길거리 자전거 보관소에는 언제부터 왔을지 모를 자전거들이 가득 세워져 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자전거 보관소도 마찬가지다. 안장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았고, 바구니에는 저마다 형형색색의 쓰레기가 담겨있다. 뚜껑과 따로 노는 유리 병, 커피가 말라붙은 플라스틱 컵, 무엇에 쓴지도 모르는 휴지 뭉치 같은 것들, 구겨진 전단지, 담배꽁초가 가득한 종이컵…

게다가 공유가 만드는 가치에 모두가 선량한 태도로 동참하진 앉는다. 공유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을 개인 소유의 물건보다 험하게 다루거나, 아무 곳에나 던져버리거나, 훔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더 빨리 망가지고 더 쉽게 폐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더 나은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도달하고자 하는 미래와 오늘의 현실이 어긋나는 모순적인 순간들이 나타나더라도 잘 참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좋은 세상이 오는걸까? 

@hyejin-chae

6개의 발톱을 마지막으로

1층 보관소로 세 명의 아저씨가 찾아왔다. 그들은 우리를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이고 아직도 많네.”

“그냥 이제 업체 부를까요?”

“버린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개인 재산이라 마음대로 폐기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없어지고 나서야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뭐 우리 세 번이나 공고했으니까, 마지막으로 공고하고 그 후에도 남아있는 것들은 진짜로 치웁시다.”

그리고 마지막 공고가 붙었다.

자전거 보관소와 건물 주변에 방치된 자전거에 대해 소유 관계를 확인한 후 일괄 수거하여 폐기 처리하고자 지난 9월 30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안내 해 드리고 10월 초까지 수거 정리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소유자 스티커가 붙지 않았거나 소유 확인이 되지 않은 자전거에 대해서는 폐기 처분을 할 예정이니……

그동안 종종 자전거의 소유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전거 친구들에게 하얀 스티커를 붙이고 갔다. 그 스티커는 아직 버려지지 않았다는 증거였으며 다시 달릴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내 몸엔 몇 달 간 어떤 스티커도 붙지 않았다. 나에게 찬란한 기억을 심어준 그가 이곳에 살고 있는지 이사를 갔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다.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겠지. 나무와, 새와, 호수와, 햇빛과 바람을 만날 수 없겠지. 나는 포기했다. 

어느 날 새벽, 커다란 트럭이 컴컴한 보관소 옆으로 왔다. 트럭이 어찌나 컸던지 필로티 구조의 건물 1층 천장에 닿을 것만 같았다. 트럭은 정말 조화롭지 않은 모습이었다. 포크레인이나 지게차 같은 것은 중장비로서의 전체적인 조화로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트럭은 무언가를 가득 쌓아서 실을 수 있도록 몸통 양 쪽에 높은 칸막이를 붙였고, 또 무언가를 집을 수 있도록 뒤쪽에 집게가 달린 관절 크레인이 붙어있었다. 각각 기능이 다른 사물들을 무작정 이종결합시킨 모습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무언가를 한 번에 집어 트럭으로…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양껏 벌어진 6개의 발톱이 내 쪽으로 향했다. 아악! 

Designflux 2.0 Essay Series 
사물이 말을 한다면⟫ 채혜진

사물의 일대기를 상상하는 일을 통해 우리의 일상 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것은 사물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다. 

채혜진은 디자인 연구자다. 건국대학교 디자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디자인 문화와 디자인 역사다. 현재 한국 주거 공간과 여성을 중심으로 나타난 디자인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생활의 디자인》, 《코리아 디자인 헤리티지 2010》, 《신혼집 인테리어의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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