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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의 디자인』 리처드 세넷, 파블로 센드라 (지은이) 

『무질서의 디자인』 – 도시 디자인의 실험과 방해 전략
리처드 세넷, 파블로 센드라 (지은이), 김정혜 (옮긴이) | 현실문화 | 2023년 12월

『무질서의 디자인』 (리처드 세넷, 파블로 센드라, Verso, 2020)의 한국어 번역본이 2023년 12월 출판되었다. 분량이 많지 않은 책이지만 세넷이 50여 년간 일관성 있게 발전시켜 온 도시 디자인에 대한 방향성과,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디자인 실천 방안이 건축가-도시디자이너 파블로 센드라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개입’이나 ‘전복’이 아닌, ‘방해'(disruption)라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디자인의 역할이 기존의 질서와 법칙에 따라 존재하는 것들 – 그것이 무엇이든 – 이 경직성을 풀고 상호 침투할 수 있도록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훼방을 놓는 과정이라는 뉘앙스가 어느 정도 반영되기를 바란다.

번역자로서, 책에 실린 최종 해제와 별도로 썼던 ‘초기 버전'(결과적으로 매우 다른)의 번역자 글을 여기 공유한다. 이 글은 『무질서의 디자인』에 대한 직접적인 해제라기보다, 세넷이 도시와 무질서에 대한 생각을 처음 제기했던 『무질서의 효용The Uses of Disorder』 (1970년 초판)에서 나타난 핵심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번에 출판된 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이 책의 내용과 간극도 있고 다소 장황해진 경향이 있어서 결국 출판을 위한 역자 해제를 새로 썼지만, 이 글은 제인 제이콥스와 세넷의 유사한 듯 하면서도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을 이해하는 데 나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점

무질서를 대면할 용기, 그리고 디자인

『무질서의 디자인: 도시 공간의 실험과 전복 Designing Disorder: Experiments and Disruptions in the City』이 시선을 끄는 이유는 아마도 질서를 제안하고 구축하는 근대적 디자인 개념에 맞서는 ‘무질서’, 그것을 통한 전복적 가능성에 대한 다소 낭만적인 기대감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저자 파블로 센드라는 무질서가 근대적 질서에 도전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디자인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무질서를 혼돈과 동일시하거나 안정성을 잃은 불균형, 위기에 노출된 상태로 보면 이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무질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서-질서 없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무질서는 질서의 대척점에 있는 혼돈이나 혼란, 미개발, 비문명이 아닐 뿐만 아니라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표명의 행위로서의 해체와는 더욱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낯선 이들과의 마주침이 이어지는 도시 삶의 근원적 조건으로, ‘무질서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디자인적 개입을 통해 무질서에 대면할 수 있는 도시의 거주자, 성숙한 시민을 만드는 형식에 관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도시 계획에서 ‘무질서’가 의미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디자인해야’ 하는 이유와 가치를 모두 포착해야 한다.  

리처드 세넷이 도시 계획에 있어서 무질서가 가지는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50여 년 전 『무질서의 효용 The Uses of Disorder: Personal Identity and City Life』(1970/2008, 국역본 2014)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세넷은 『눈의 양심 The Conscience of the Eye: The Design and Social Life of Cities』(1990)을 통해 도시 공간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것과의 마주침에 대해 역사적으로 조망하였고,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짓기와 거주하기 Building and Dwelling: Ethics for the City』(2018, 국역본 2020)에 이르기까지 이 개념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마침내 『무질서의 디자인』에서 파블로 센드라와 함께 무질서를 어떻게 실제 도시 삶을 위한 공간 계획과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제안하며, 무질서를 디자인한다는 것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21세기 신자유주의 도시 디자인에서 무질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전 세계적으로 고급주택지화gentrification와 외부인 출입 제한 구역화 현상이 눈에 띄게 확산되면서 계층, 인종, 민족 등의 다름과 차이가 도시 내에서 뚜렷이 구획화 되는 경향이 짙어졌다. 지역을 불문하고 대도시에서 구역과 구역을 가로지르기 어렵게 차단하는 경계가 서서히, 그러나 단단하게 강화되어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때 양측을 구분하는 경계boundary를 상호 교류의 경계border 혹은 경계 공간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의식적인 무질서의 디자인이 요구된다. 둘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혹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정책들의 한계 때문에 우리는 다시금 무질서를 고려해야 한다. 고급주택지화와 외부인 출입 제한 구역화의 부인할 수 없는 폐해에 관해 논의가 진척되면서 우리에게는 개발에 대한 일종의 공포와 적대감이 커졌고, 때로는 미개발과 가치의 보존이 동일시되면서 양자에 대한 견해가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사실상 이 둘 사이에 절충이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해결책이 되기도 어렵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소통이 가능한 무질서의 공간 만들기, 즉 세넷이 말하는 무질서를 마주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을 만드는 공간적 조건의 디자인일 것이다.

무질서자유와 자율의 조건

경제적인 차원에서 대도시란 산업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공간으로, 이 곳에는 많은 수의 인구가 모여 상호 교류와 교역을 통해 삶을 영위하게 된다. 한편, 사회적인 측면에서 대도시란 다수의 낯선 이들과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가운데 일상의 사건이 발생하는 곳을 의미하는데, 게오르그 짐멜은 「대도시와 정신적 삶 The Metropolis and Mental Life」(1903, 국역본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중, 2005)에서 무엇보다 낯선 군중 속에서 고독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1] 세넷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율적으로 공동체에 참여하거나 반대로 고독을 선택할 자유의 조건으로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관리,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강조한다. 도시는, 삶 그 자체를 무질서의 원리로 인지하고 성인으로서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마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서 모호함, 모순, 복합성과 한데 엉켜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세넷은 1970년대 이후로 줄곧 대도시의 마주침을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조건으로 보면서, ‘대면하는 능력’을 특히 청소년기(성년으로 살 수 있는 기능은 갖추었지만 경험은 부족한)의 성장 심리학에 초점을 맞춰 논의해왔다. 청소년기에 맞게 되는 낯선 것, 예기치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무질서와 고통스러운 어긋남을 배제하면서 기존 질서에 귀속되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무질서를 마주하길 두려워하며 욕망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2] 자아의 무질서화는 내적 혼돈의 상태와 분명히 구분되는데, 이것은, 세넷의 표현에 따르면, 내면의 긴장을 푸는 일이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계층적,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타인들과 연결되기 위해 개인이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내려 놓는 것, 그리하여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는 여유와 탄성을 가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렇게 무질서는 사람들이 미지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힘, 그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조건이며, 통제 불능의 혼란에 빠져 방어적으로 대처하는 상황과는 엄밀히 구분된다.

무질서를 받아들이고 대면할 수 있는 대도시의 구조에서 사람들은 상호 개입할 수도, 비-개입할 수도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대도시에서 개인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즉 이방인으로 살 수 있다는 짐멜의 견해를 상기시킨다. 도시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 사회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공동체 형태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커뮤니티가 가지는 친밀한 교류 가능성과 집단적 힘 때문일 것이다. 한편, 세넷은 공동체의 이 같은 동일성communal sameness을 향한 욕망, 일관성을 향한 욕망에 대해 경고한다. 공동체의 통일된 이미지를 이상화하면 개인들의 내면에서는 다름에 대한 포용보다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외부인에 대한 공격성이 발현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라는 가짜 공동체 의식[3]이 자라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세넷이 무질서의 효용에 대해 논하는 조건은 20세기 후반 이후, 경제적인 풍요(경제적인 결핍과 생존의 문제를 해결한 상태)를 전제로 하는데, 이런 조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타적인 공동체 의식, 허울뿐인 유대로 연결된 방어막으로서의 ‘우리’ 개념을 경계한다. 실제 삶의 여건이 풍요로워질수록 사람들은 끊임없이 상대적으로 다름을 강조하며 차별화를 추구하기 마련으로, 이는 소수의 최상류증만 접근할 수 있는 펜트하우스나 초고가의 리미티드 에디션 명품이 순식간에 소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도시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자유와 자율이며, 따라서 개입과 비-개입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특히 자율성이란 ‘자기 통치’, ‘자기 결정’, 즉 개인이나 단체가 외부의 영향 없이 자신(들)의 선택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궁극적으로 자율적 선택은 인간의 자유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으로, 개인적 존엄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정치 철학적 관점에서 자율성은 근원적인 인권의 사안으로 연결되고, 또 나아가 이것은 민주주의, 개인주의individualism, 자유주의liberalism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와 반대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삶의 환경을 대면하지 못한 채 방어 기제로 대응하면, 개인이나 집단의 특징은 그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규정되고, 예상치 못했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삶의 태도는 전체주의적인 특성을 나타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안전과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고통 없는 면역 상태로 이끄는데, 이것을 사회 변혁적인 차원에서 보면, 결국 이상화된 삶의 조건을 향한 꿈 혹은 허구를 위해 전체주의적인 경직성에 갇히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4]

자율적으로 구성되는 작은 단위의 마을이나 지역 공동체는 도시에서 이룰 수 없는 자발적인 집단의 유희 혹은 공생공략conviviality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형태를 도시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에는 개인의 자율적 공간을 침해하거나 집단주의적 공동체에 의해 개인이 억압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또 역으로, 개인의 자율성이 확보되지 못할 경우에는 단체의 생각이 집단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높아진다. 이는 물리적인 차원의 도시 환경에서 뿐만 아니라 미디어 환경에서 또다른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자율성을 습득하지 못한 개인은 편향적인 정보에 이끌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런 상황이 극단적으로 확장되면 미디어 포퓰리즘으로 인한 집단적 비이성에 빠지는 상황마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공간 디자인으로 자율과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무질서를 제시하고 있는데, 현재와 같이 포퓰리즘이 발현하기 쉬운 조건에서는 자율적인 미디어 정보 인지와 습득 방식에 대한 논의도 절실하다.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고통을 피하고 안전감을 유지할 수 있는 정보의 알고리즘에 갇힐 때 세워지는 정신적 차단의 벽은 매우 빠르게 사람들을 양극단으로 분리시킨다. 따라서 물리적인 교류 경계 공간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과는 또다른 층위의 새로운 기술적, 사회 심리학적 접근이 요구된다. 이렇게 무질서의 디자인은 이제 물질 세계와 가상의 비물질 세계에 모두 개입하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제이콥스와 다른 유대보다 접촉점

20세기 중•후반, 제인 제이콥스[5]나 마크 프리드, 허버트 갠스 같은 도시학자들은 추상적인 도시 개발이나 도시 재생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많이 파괴되는지를 역설하면서 대부분 과거의 공동체 형태로 회귀하거나 그러한 요소를 되살릴 것을 제안해왔다. 이 때 도시의 삶은 ‘마을의 이미지’로 제시되곤 하는데, 사실상 도시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촌락 지역의 마을과 같은 통일성을 구축하는 일은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 한편, 세넷은 다양한 계층이나 민족, 인종이 모여 사는 조밀한 도시 지역의 경우 문화적으로나 인구학적으로 안정된 장소의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도시 내부에서나 도시들 간에 지속적으로 많은 이동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포착한다.그리고 결국 이런 도시 생활에서는 통일성에 기반한 ‘유대의 신화’라는 것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러 도시 연구자들 가운데 제인 제이콥스는 특히 과거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의 미국, 즉 각지의 이민자들이 모여드는 도시 삶에서 이웃들 간에 작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보고, 그 상태로의 복원을 추구했다. 반면, 세넷은 20세기 후반 이후, 풍요로운 소비 자본 시대의 도시에서는 이런 부활을 기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새 시대에 적합한 도시 생활의 조건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무엇보다 그는 성인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 즉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차이를 마주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에 있어서 도시적 경험, 그리고 그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절대 필요 요건으로 본 것이다.도시 삶에서 이웃들 간의 작고 친밀한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과거 도시의 특성을 복구할 것을 주장했던 제이콥스의 입장과 세넷의 입장은 이렇게 달랐다.[6]

제이콥스는 개발의 반대를 무질서 또는 자유로운 유대가 보장된 상태로 보았는데, 이 같이 개발에 대한 절대적인 배척은 도시 기획과 디자인을 통한 개입 과정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퇴색시킬 수 있고, 무질서가 곧 자유로 단순화될 우려가 있다. 무질서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또한 책임감 있는 성숙한 시민을 키워내는 토대와 여건이지, 그 자체가 자유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물론 밀집도와 다양성 속에서 무질서한 삶이 자란다는 점에서는 제이콥스와 세넷은 입장을 공유한다. 그러나 제이콥스는 거대 자본주의와 권력화된 개발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에 집중했던 반면, 세넷(과 센드라)은 디자인적인 개입을 주장하며,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무질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답 혹은 대안을 모색한다.

21세기 현재의 도시 개발 계획은 20세기 후반보다 한층 더 환경을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실제로 경제적인 결핍의 문제를 넘어선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이들로부터 분리된 채 균일한 환경에서 안정과 안전감을 찾고, 그 곳에 머물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근원적으로 차별화를 지향하는 현대 인간의 본능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단순하고 균일한 환경에서는 외부 요소나 미지의 존재,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세넷은, 고통스러운 혼란을 피하고 안전하고 평온한 생활을 일반화한다는 미명 아래 인간의 다양성과 자율성(자율적인 참여)이 철저하게 제한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단순화와 균질화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마을 공동체의 ‘유대’가 아니라 다양한 ‘접촉점’contact points이라고 강조해왔는데,[7] 바로 이 책을 통해 파블로 센드라와 함께 그 접촉점이 교류 경계border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지금의 과제는 물리적으로 또 사회적•제도적으로 무질서한 접촉을 촉발할 수 있는 교류 경계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하는가이다.  

이 책에서 세넷과 센드라가 제안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대안 가운데, 불확실성을 위한 디자인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도시 기획과 디자인에 있어서 불확실한 위험 요소를 완화시키기보다 이를 관리하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불확정성이란, 최종 결과가 가져오는 이득 이상의 이점을 ‘진행 과정’ 중에 만들어낼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도시 디자이너의 역할은 이런 배움의 프로세스를 고안하고 진행하면서 그 경험을 하나의 결과로 제시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세넷은 『짓기와 거주하기 Building and Dwelling: Ethics for the City』(2018, 국역본 2020)에서도 ‘위험 요소를 완화시키기보다 관리’하는 것을 도시 디자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으로 강조한다. 그 예로, 스마트 시티로 계획된 도시 중 모든 불확실한 요인들이 사전에 통제되는 송도와 불확정성을 관리하도록 기획된 브라질의 리우를 비교 분석한 데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열린 프로세스는 예상치 못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흔히 ‘참여’라는 말로 표현되는 능동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다. 이 때 참여는 자동반사적인 대응이 아니라 필요를 자각하고 배움에 가치를 두는 태도를 담고 있는 자율성에 기반한 것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불확정성의 여지를 두는 열린 프로세스가 또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센드라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 때 불확정성은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목표이면서 동시에 디자이너의 작업 방식 또는 태도이기도 하다.

도시의 아나키성숙을 위한 무질서

20세기 후반 이후 세넷이 무질서의 논의에서 지속적으로 함께 다루는 개념으로 아나키 혹은 아나키즘을 들 수 있다. 이 때 아나키즘은 ‘정부가 없는’이나 ‘통제가 없는’을 뜻하는 사회 비판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넷이 말하는 아나키는 도시 안에서 다양한 사회적 접촉점과 무질서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일종의 혼란 장치로, 이것은 사람(상대)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더 풍부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한다.세넷이 특히 청소년기에 강해지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대한 굴복(예속 상태)을 이겨내기 위해 계속해서 낯선 것을 접하면서 일정한 아나키를 통해 삶의 불완전성을 깨닫고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다름’을 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무질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세넷은 특히 풍요로운 세계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뿌리 깊은 문제가 바로 사람들이 틀에 박힌 삶의 편안함, 그 예속 상태를 향하는 것이라고 진단하였고, 따라서 이러한 권태를 향한 욕망을 버리게 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여겼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조밀하고 탈집중화되고 무질서하게 계획된 도시 공간이야 말로 바로 이런 권태를 포기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때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도시의 아나키가 사람들 간의 교류에 기반한 공존 양태를 추구하지만, 이것이 질서와 폭력의 절충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도시의 아나키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 누구도 양극단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을 지향한다.

요컨대, 현재 고립을 야기하는 도시의 구조와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 다시 말해, 기존 아나키 개념에 기반한 행동만으로는 다양한 공동체가 자생적으로 생겨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생적으로 유지되지도 않는다. 시민들 스스로 권태의 틀에서 벗어나게끔 무질서한 접촉점을 생성하고 이를 통해 불확정성에 대면할 수 있는 자극을 발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기획과 디자인적 개입이 요구되는 이유이고 이 책의 제목이 ‘무질서’가 아닌, ‘무질서의 디자인’인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혜


[1] 21세기 전지구적 대도시화의 맥락에서 발생하는 마주침에 관해서는 앤디 메리필드의 『마주침의 정치』(김병화 옮김, 이후, 2015/2013) 참고.

[2] 리처드 세넷, 『무질서의 효용』, 유강은 옮김, 다시봄, 2014, 1-2장 참고.

[3] 앞의 책, 73쪽.

[4] 같은 책, 6장 참고.

[5]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유강은 옮김, 그린비, 2010 참고.

[6] 물론 여기에서 세넷은 제이콥스가 조밀한 도시에서 주목하는 윤리적 가치에 대해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가 그릇된 사실적 토대에 기인한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리처드 세넷, 위의 책, 209쪽).

[7] 앞의 책, 3장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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