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10 | 시게루 반의 종이 다리

Editor’s Comment

시게루 반에게 종이는 훌륭한 건축 자재입니다. 연약하다고 여겨지는 재료이지만 그것으로 만든 건축물까지 연약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종이 건축’으로 반증해 보였지요. 2007년 오늘의 소식은 그가 프랑스에 지었던 종이로 된 다리입니다. 지관을 이용해 한 번에 스무 명이 지나가도 끄떡없는 종이 다리를 완성했지요. 

종이로 된 다리를 건넌다? 종이 인형이라면 모를까,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 일본의 건축가 시게루 반은 상상 속에나 가능한 일을 눈 앞에 펼쳐낸다. 그의 전작들을 떠올려본다면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종이 집, 종이 교회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일체의 장식 없는 미니멀한 구조 미학과 재활용 종이나 두꺼운 판지, 대나무 등 약한 재료를 이용한 건축 테크놀로지를 강조한 바 있다.

종이 파이프 조립 분야의 개척자인 시게루 반은 환경 친화적인 가벼운 재료를 이용해, 건축 프로젝트에 생태학적 요구와 지속가능성을 결합시킨 대표적인 인도주의 건축가다. 약한 자재나 재료를 선호하는 그는 재료들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구조물의 강도 및 미학적 효과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더 튼튼한 재료, 더 비싼 재료 등이 작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시게루 반은 이러한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제작 방식을 보여준다.

이번에 선보인 종이로 된 다리는 UN 세계 유적지로 선정된 프랑스 남부의 퐁뒤가르 다리에서 반 마일 정도 떨어진 가르동 강에 위치한다. 돌로 지어진 퐁뒤가르 다리와 종이 다리는 매우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돌 다리와 비교해 한없이 약해 보이는 종이. 시게루 반은 이러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종이 역시 반영구적이며 강하며 오래 지속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24 명의 프랑스 건축과 학생들과 3 명의 일본 학생들의 도움으로 한 번에 20 명이 지나가도 끄떡없는 7.5 톤 무게의 종이 다리를 완성하는 계기가 됐다. 자재의 강도가 구조물의 강도를 좌우한다는 편견을 한방에 날린 셈이다. 

종이 다리는 폭이 11.5 센티미터, 두께가 11.9 밀리미터인 종이 파이프 281 개로 제작됐다. 종이의 보강재료는 모래로 채워진 나무 박스. 여러 개의 종이 파이프들을 엮어 강 위에 다리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구조물을 완성한 것이다. 이는 정확하게 계산하고 창조적으로 고안한 설계과정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게루 반은 줄곧 “다리는 내 꿈의 하나였다”고 말한다. 약한 자재나 재료를 선호하고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제작 방식과 건축 테크놀로지로 드디어 그 꿈을 이뤄낸 것이다. 그의 최신 작품인 종이 다리는 6주 동안 대중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며 장마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철수할 예정이다. 종이로 된 다리를 건너고 싶다면, 서둘러야 할 듯. 

ⓒ designflux.co.kr

기사/글에 대한 소감과 의견을 들려주세요.

More

2009-04-14 | 포르마판타스마의 ‘자급자족’

어제에 이어 또 다른 ‘자급자족’의 디자인입니다. 2010년 디자이너 듀오 포르마판타스마가 선보인 ‘자급자족’은 재료로 보나 제작 방식으로 보나 모두 소박한 자급자족의 공동체에서 태어났을 법한 물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포르마판타스마는 앞서 소개했던 ‘다음 10년, 20인의 디자이너’에서도 언급되었는데요. 지난 10년 정말로 그러했고, 또 앞으로의 10년도 묵직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이름입니다

2009-01-06 | 익스페리멘털 젯셋의 새 웹사이트

익스페리멘털 젯셋의 첫 웹사이트 리뉴얼의 핵심은 ‘아카이빙’이라 하겠습니다. 그간의 작업 전체를 망라한다는 것은 실패작까지도 포함한다는 뜻이고, 익스페리멘털 젯셋은 이를 두고 “일종의 아카이브 몬스터”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개별 작업은 ‘아카이브’ 메뉴의 텍스트형 목록과 ‘프리뷰’ 메뉴의 이미지형 목록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조는 2022년 지금의 홈페이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지요. 

2010-08-20 | 듀폰 상하이 ‘코리안® 디자인 스튜디오’ 오픈

2010년 상하이에 듀폰의 코리안® 디자인 스튜디오가 문을 열었습니다. 듀폰이 개발한 이 인조대리석은 건축에서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활용됩니다. 그리고 코리안® 디자인 스튜디오는 바로 이 소재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이해 태어난 공간이고요. 홍콩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마이클 영이 실내 디자인을 맡아, 가구에서 벽체까지 코리안®을 십분 활용한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2007-02-22 | 벨크로의 힘

특정 제품의 이름인 고유 명사가 그런 물건 일반을 통칭하는 보통 명사가 되기도 합니다. 벨크로도 그런 경우죠. 생활 속 익숙한 물건이 된 벨크로는 또 생체모방 디자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2007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아트리움은 벨크로에 습격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신진 디자이너 루이스 에슬라바는 이 저렴하고 익숙한 물건으로 조명과 벽장식을 선보이며 여러 모로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Designflux 2.0에 글을 쓰려면?

Designflux 2.0는 여러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에세이, 리뷰, 뉴스 편집에 참여를 원하시면 아래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