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9 | 타시타 딘의 ‘필름’

Editor’s Comment

타시타 딘은 줄곧 필름을 매체로 활동해온 미술가입니다. “화가에게 물감이 필요하듯 내게는 필름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요. 2011년 그가 테이트 모던에서 선보인 ‘필름’은 위기에 처한 필름의 물질성과 특유함을 전면에 드러냅니다. 아날로그 매체로서의 필름을 찬미하는 기념비인 동시에 쇠락해가는 매체의 초상. <가디언> 리뷰는 이를 두고 “오마주이자 레퀴엠”이라 표현하기도 했지요.

타시타 딘(Tacita Dean), ‘필름(Film)’, 2011
Courtesy of the artist, Frith Street Gallery, London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Paris.
Photo: Lucy Dawkins

테이트 모던 내 터빈 홀에 수직의 스크린이 들어섰다.  유니레버(Unilever) 시리즈, 그 열 두 번째 작품인 ‘필름(Film)’이다. 타시타 딘(Tacita Dean)은 이번 작업에서 필름이라는 매체의 초상을 그려보인다. 

터빈 홀에 설치된 스크린은13m 높이로, 독특하게도 세로로  길게 서 있다. 이는 실제로 시네마스코프 렌즈를 90도로 돌려 촬영한 영상에 상응하는 것이다. 스크린의 외양은 셀룰로이드 필름 띠와 유사해서, 양 옆으로 스프로켓 홀이 나 있고, 또 투명하여 스크린 너머로 터빈 홀의 벽이 비춰 보일 정도이다. 그리고 그 위로 11분 길이의 무성 영화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번개와 나무, 바다의 풍경 등이, 시각적 시처럼 리듬과 음보 속에 펼쳐진다. 

타시타 딘은 비디지털 매체로서 필름의 물질성을 작품 속에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마스킹, 이중노출, 유리 매트 페인팅처럼, 영화 역사의 초창기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기법들이 다시금 등장하며, 보통 영화 제작 과정에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이미지들마저 끌어안는다. 필름 롤의 끄트머리에 남은 페이드 아웃의 이미지, 카메라를 멈추었다 다시 작동시키며 생긴 노출과다 프레임들, 색상 필터를 교체하며 변해가는 희미한 변화의 프레임들 모두가, ‘필름’의 일부이다.

아날로그, 광화학, 비지디털 매체로서 필름을 찬미하는 기념비. 그러나 ‘필름’은 쇠락해가는 매체의 서글픈 초상이기도 하다. 디지털 기술이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잡는 동안, 이제 필름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이는 그저 엄살이 아니다. 영국 최후의 16mm 프린트 현상소였던 소호  필름 랩(Soho Film Lab)이 작년 문을 닫았다. 아리(ARRI), 파나비전(Panavision), 아톤(Aaton) 등 주요 영화카메라 제조사들은 이제 더 이상 카메라를 생산하지 않는다(관련기사 보기). 

타시타 딘은 이러한 미래를 깊이 우려한다. ‘필름’은 지금 이 매체가 처한 위기를 근심하며, 필름의 위기가 우리의 시각 문화에 미칠 영향, 우리 시대에 중단되고 말지 모를 필름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필름’은 매체 스스로가 밝히는 당위의 증거이다. 

www.tate.org.uk

© designflux.co.kr

기사/글에 대한 소감과 의견을 들려주세요.

More

사물이 말을 한다면 #1 나의 짧은 생애

나는, 안락의자다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꿈꿨던 것일까? 하얀 쉬폰 커튼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연둣빛 잎사귀가 한껏...

2008-09-10 | 보철미학

2008년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을 졸업하며 프란체스카 란차베키아는 의료용 보철기구를 재해석한 일련의 기구들을 졸업 작품으로 선보입니다. 이름하여 ‘보철미학’은 그의 설명대로 “오로지 기능적 측면만 강조된, 기계적이고 일반적인 외양의 보조기기들”을 표현의 매체로서 바라봅니다. 졸업 후 란차베키아는 학교에서 만난 훈 와이와 란차베키아+와이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

2011-08-30 | MIT 미디어 랩 아이덴티티

2010년대는 아이덴티티 디자인에 ‘변화’라는 테마가 더해진 시기였습니다. 여기 MIT 미디어 랩의 시각 아이덴티티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린 에일과 강이룬은 시스템으로서의 아이덴티티라는 개념으로, 일정한 요소가 무한히 변주되는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그렇기에 매번 달라지면서도 하나의 기반을 공유하는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탄생했죠. 

2010-03-24 | MoMA, @를 소장하다

탄생은 멀리 6~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 같은 기능으로 이처럼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2010년 MoMA의 건축·디자인부가 부호 ‘@’를 영구 소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누구의 것도 아니며 실물로 존재하지도 않지만, “소장에 요구되는 다른 기준들을 만족”하며, 더불어 기존의 부호를 전유해 새로운 쓰임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디자인 행위”를 보여준다고, 수석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는 설명합니다.

Designflux 2.0에 글을 쓰려면?

Designflux 2.0는 여러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에세이, 리뷰, 뉴스 편집에 참여를 원하시면 아래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