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omment
건축 소식은 보통 설계 단계나 완성 단계를 다루곤 합니다. 전자의 경우 누구의 설계인가에 방점을 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모’가 필요한 규모의 설계라면 더욱 그렇죠. 그런데 어느 건물이 설계되어 완성되기까지, 그 사이에는 건설 과정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어떤 건물이 말 그대로 노동자의 피 땀 눈물, 심지어 목숨으로 세워진다면요? 2011년 오늘의 뉴스는 프랭크 게리의 설계로 유명한 구겐하임 아부다비 건설 현장의 노동 착취 현실 그리고 그에 항의하는 미술계의 보이콧 운동 소식입니다.
루브르, 구겐하임, 해양박물관, 공연예술센터… 아부다비의 문화지구 사디야트 섬(Saddiyat Island)이 나날이 조감도에 약속된 모습에 가까워져 간다. 소위 “행복의 섬”이라 불리는 이곳은 이민 노동자들의 손으로 지어지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도 사디야트는 행복의 섬일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빚의 늪에 빠져 있으며, 보잘것없는 임금을 받으며, 최소한의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일을 그만둘 자유조차도 없다. 사막의 파리를 자처하는 문화의 섬은 착취의 연쇄 위에 서 있다.
일군의 미술가, 큐레이터, 비평가들이 구겐하임 아부다비의 보이콧 운동에 나섰다. 3월 16일, 130여 명 이상의 미술계 인사들이 서명한 항의서한이 구겐하임 재단의 디렉터 리처드 암스트롱 앞으로 발송되었다. 건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즉각적이고 의미 있는 행동이 취해지기 전까지, 구겐하임 아부다비에 대한 보이콧을 진행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명에 동참한 다수의 미술가들은 구겐하임의 다른 분관들에 대해서도 거부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노동자를 착취하여 지어진 건물에서는 작품을 전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개발 초기부터 이민 노동자에 대한 착취 문제가 제기되어 온 바, 불법적인 채용 수수료, 열악한 임금 수준 및 거주 환경과 같은 문제들이 전반에 산적해 있다. 게다가 현 시스템은 고용자에게 노동자에 대한 거의 무한한 권력을 보장한다. 여러 단체들이 이와 같은 문제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고, 마침내 작년 9월 구겐하임 재단은 구겐하임 아부다비의 건설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였다.
이어 지난 10일 사디야트 섬의 개발을 책임진 관광개발공사(TDIC) 역시 기존의 외부 감시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한편, 고용실천정책(EPP)을 수정하여, 그간 하도급자들이 채용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간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배상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간 건설 노동 문제를 지켜본 이들에게 TDIC의 발표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가령 TDIC의 감시 프로그램이란 아랍에미리트연합 국내법에 의거한 위반만을 대상으로 하며, 국제법에 의해 보장된 주요한 노동권 및 인권 보호 내용들이 배제되어 있다. 게다가 채용 수수료 배상과 같은 내용 역시 강제적인 시행 절차가 빠져버린, 구속력 없는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이콧에 참여한 미술가 왈리드 라드(Walid Raad)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벽돌과 모르타르로 일하는 사람들도 카메라와 붓으로 일하는 사람만큼 존중 받아야 한다.” 미술가들의 보이콧 운동에는 왈리드 라드를 비롯해, 에밀리 야시르, 이토 바라다, 재닛 카디프, 윌리 도허티, 바바라 크루거 등의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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