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omment
급진의 시대에 태어난 작은 건축 잡지들. 2007년 뉴욕에서 열린 전시회 ‘클립/스탬프/폴드: 급진적 건축 리틀 매거진 196x – 197x’의 이야기입니다. 전시는 1962년부터 1979년까지의 시간선 위에 폭발했던 작은 잡지들의 역사를 재조명합니다. 참고로 전시는 2010년 동명의 서적 출간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리틀 매거진(little magazine)’이란 소규모의 인디펜던트 문예지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 잡지는 상업성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운 내용으로 독자들을 찾았다. 리틀 매거진은 특히 20세기 초 문학 분야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했는데, 건축에도 이러한 잡지들의 시대가 있었다.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혁명’의 기운이 물씬했던 1960~70년대, 급진적인 건축 잡지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뉴욕 스토어프론트 포 아트 앤 아키텍처에서 ‘클립/스탬프/폴드: 급진적 건축 리틀 매거진 196X – 197X’ 전시가 열리고 있다. 건축사가 베아트리스 콜로미나(Beatriz Colomina)가 기획을 맡은 이 전시는 잡지를 통해 당대 지적인 활기로 가득했던 건축의 역사를 조망한다. 아마 잡지 디자인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번 전시는 흔치 않은 기회일 것이다. 과연 이것이 건축 잡지인지 표지만 보아서는 도저히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낯선’ 디자인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한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으로 돌진하는 코끼리. 이는 마치 거장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위협적인 움직임처럼 보인다. <아키그램> 4호는 수퍼히어로 장르 만화책처럼 디자인되어 있다. 건축의 근엄함은 모두 털어내고 팝 컬처의 외양을 택한 파격이 돋보인다. 현재에도 계속 발행되고 있는 <도무스>의 ‘젊은 시절’ 역시 흥미롭다. 최근의 잡지들과 비교할 때 오히려 더욱 신선한 느낌이다.
‘클립/스탬프/폴드’ 전시 구성은 타임라인 구조에 기반한다. 1962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직선 위에 해당 잡지가 발행된 시점을 표시하고 주석을 다는 형식으로, 결과적으로 이 선은 건축사에 있어 리틀 매거진이 거쳐온 흥망성쇠의 궤적이 된다. 팸플릿과 매뉴얼 등 부록을 포함하여 약 70여 잡지의 오리지널 희귀본 전시와 함께, 당시 활약했던 잡지 편집자와 디자이너들과의 대담 ‘리틀 매거진/스몰 토크’와 같은 프로그램이 전시의 깊이를 더한다.
이 전시는 어쩌면 현대 디자인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주석일지 모른다. 한때 이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잡지들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연스레 매끈함으로 무장한 오늘의 디자인 문화를 돌아보게 된다.
비록 직접 전시장을 방문하기는 어렵지만 다행히도 전시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감상이 가능하다. 가로로 길게 펼쳐진 매거진 페이지를 스크롤 하다 보면, 그 누구도 급진을 믿지 않는 시대로 귀환한 ‘날카로운’ 건축 잡지의 20년 역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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