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15 | 로고들의 무덤

Editor’s Comment

‘로고 R.I.P.’는 지금은 사라진 그러나 고전이라 할 로고들을 기념합니다. 책으로, 웹사이트로, 또 묘지의 비석으로도 말이지요. 암스테르담에서 브랜딩 컨설턴시인 더 스톤 트윈스를 함께 운영하는 쌍둥이 형제, 데클란 스톤과 가렉 스톤은 AT&T에서 제록스에 이르기까지, 사멸한 로고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마차 부고 기사 속 생애의 요약처럼요.

코끼리들은 죽음이 다가오면 알 수 없는 힘에라도 이끌리듯 특정한 장소로 걸어가 그 곳에서 숨을 거둔다고들 한다(그러나 막상 이‘코끼리 무덤’을 보았다는 사람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밧드 뿐인 듯 하다). 로고들도 죽으면 무덤으로 간다. 이는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닌 실제다. 

오늘날의 기업들은 무자비한 경쟁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은 CEO 교체, 긴축 경영, 노동자 해고와 같은 조치를 단행한다. 그러나 이로 인한 희생자가 단지 사람들만은 아니다. 로고 역시 기업의 운명에 따라 명멸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수많은 로고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잊혀진 것은 아니다. 사멸한 로고를 기리는 ‘로고들의 무덤’이 있으니 말이다. 

불과 1~2년 만에 교체의 운명을 맞이하는 수백만 달러짜리 로고들이 수두룩한 요즘이다. 심지어 한 시대를 풍미한 고전으로 남은 로고들 조차 변화의 바람 속에 언제 버려질 지 모르는 상황이 아니던가. Logo R.I.P.는 이들 로고를 위하여 실제 무덤을 만들었다. 이 곳에는 기념할 만한 로고들이 잠들어 있다. 비석에는 로고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지상에서 누렸던 생애의 햇수도 적혀있다.

또한 Logo R.I.P.의 홈페이지에는 이제는 가고 없는 수많은 로고에 추모글을 남길 수 있는 방명록 메뉴가 있다. “달콤한 도트여 안녕히…”, “오 로이터의 티커-테이프여, 어찌하여 나를 저버렸느냐? 너는 진실이 지닌 안식과 확신을 우리에게 전해주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정보의 자유를 수호하는 보루로 기억될 것이다. 부디 언젠가 다시 일어나 세계 소식을 테이프에 ‘틱틱’ 토해내길 기도한다.” 로이터의 티커-테이프 로고 아래 적혀 있는 탄식이다. 

매우 사적인 감회를 담은 글도 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로고 밑에는 “이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샀을 때 어찌나 행복했던지…”라며 추억을 술회한 이도 있고, 자신이 태어날 수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 사람도 있다. “아버지가 올림픽 대표 선수였는데, 공항에 마중나오기로 한 스태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 지나는 차를 얻어타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때 아버지를 태워준 사람이 바로 나의 어머니였다.”

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씁쓸한 풍경은 뭐니뭐니 해도 엔론의 로고일 것이다. 기업 역사상 최대의 오점으로 남을 엔론 사의 로고는 다름아닌 폴 랜드(Paul Rand)가 디자인한 것이었다. “폴 랜드 최후의 로고가 특정 기업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닉하고, 한편 슬픈 일이기도 하다. 어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 로고 안에는 어떤 이상이 담겨 있었다. 나는 랜드에게 개념을 전달해온 디자이너라는 영예를 선사하고 싶다…” 누군가 엔론의 처량한 로고 아래 남긴 글이다. 

‘사라졌을지언정 잊히지는 않으리라’. 로고의 역사를 남다른 방식으로 돌아보게끔 하는 ’Logo R.I.P.’는 책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Logo R.I.P. – 사멸한 로고타입을 위한 추모> 
저자 및 디자인 : 스톤 트윈즈(The Stone Twins)
서문: 헤르트 뒴바르(Gert Dumbar)
192 페이지, 12 x 17cm, 하드커버, 일러스트레이션 50개 수록 
언어: 영어 
ISBN: 90-6369-06-30
가격: 19유로 
출판사: BIS,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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