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29 | 몰스킨의 “브랜드 고고학”

Editor’s Comment

이 수첩은 본래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름이 된 것은 이탈리아의 한 회사가 이 브랜드를 인수한 이후입니다. 바로 ‘몰스킨’의 이야기입니다. 2006년 이탈리아에서 다시 프랑스 브랜드로 되돌아간 몰스킨 소식을 계기로, 그해 오늘은 몰스킨의 부활의 밑거름이 된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도 앤드 모도는 100년 동안 예술가들의 친구였던 이 수첩의 역사와 유산을 되살렸고, 애호가들은 기꺼이 몰스킨의 자발적 마케터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놀라운 성공을 두고 “브랜드 고고학”이라 불렀죠. 

몰스킨 브랜드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르 피가로(Le Figaro)〉에 의하면, 프랑스의 한 회사가 몰스킨 브랜드를 되찾기 위해 투자한 돈은 무려 미화 9천만 달러, 한화로는 약 900억 원에 이른다. 몰스킨은 원래 프랑스 회사가 소유한 브랜드로, 소규모 제지업을 하던 장인에 의해 생산되었다. 1986년 장인이 죽자 몰스킨은 그 찬란한 전통과 수많은 이야기를 뒤에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1998년 오랫동안 잊혀졌던 몰스킨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자리잡고 있던 한 작은 회사에 의해 재생산되기 시작했고,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버려진 브랜드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누린 이 회사의 이름은 ‘모도 앤드 모도(Modo and Modo)’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몰스킨
image: moleskine.com

몰스킨의 디자인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몰스킨은 검은색 양장에 프렌치 바닐라 컬러의 내지, 그리고 노트가 펼쳐지지 않도록 커버에 부착되어 있는 밴드가 곧 트레이드마크이다. 그리고 이 브랜드를 둘러싼 수많은 역사와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모도 앤 모도의 공동 대표인 프란체스코 프란체스키(Francesco Franceschi)와 마리오 바루치(Mario Baruzzi)는 몰스킨을 둘러싼 역사와 이야기들에 주목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했다. 몰스킨은 빈센트 반 고흐와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와 어네스트 헤밍웨이, 장 폴 사르트르 등 수많은 예술가들과 탐험가,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사랑을 받았다. 헤밍웨이는 몰스킨에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를 집필했고, 고흐는 그의 유명한 그림들을 스케치했으며, 사르트르는 한 시대를 이끌 사상을 메모했다.

한 애호가의 몰스킨
image: pedalpower, flick.com 

몰스킨의 이야기는 애호가와 소비자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이들은 몰스킨을 사랑했던 역사적인 명사들의 뒤를 이어 자신의 이야기를 몰스킨에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웹을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몰스킨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바로 이러한 애호가 집단에 의한 자발적인 마케팅에 있었다.

한 웹사이트는 몰스킨의 성공을 두고 ‘브랜드 고고학(brand archeology)’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수명이 다해버린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을 발굴해내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함으로써 브랜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제품의 가치와 신뢰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몰스킨은2005년 한 해 동안 4백 5십 만개가 팔려나갔으며, 총 수익은 7천만 유로에 이른다.

http://www.moleskine.com
http://www.moleskinerie.com
[Le Figaro] Les carnets Moleskine redeviennent francais

ⓒ designflux.co.kr

기사/글에 대한 소감과 의견을 들려주세요.

More

2021-10-18 | 건축가 키쇼 쿠로카와 타계

건축가 키쇼 쿠로카와가 2007년 10월 1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급진적인 건축 운동이었던 메타볼리즘 사조의 선구자로서, 대표작인 나카긴 캡슐 타워는 도시의 변화에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건축이라는 개념을 유감 없이 보여주었지요. 그가 떠난 지 14년이 된 지금, 이제 나카긴 캡슐 타워도 퇴장합니다. 타워의 철거 계획은 이미 2007년에 전해졌지만, 건축 50주년을 맞은 올해 실제 철거가 시작된다는 소식입니다. 하지만 캡슐들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해체한 캡슐들은 자리를 옮겨 전시, 숙박 등의 다른 용도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또 타워의 마지막을 담은 기록 서적도 내년 2월 출간된다고요.

자동차 없는 베를린 법안 제안

자동차 없는 베를린은 어떤 모습일까? 독일 시민단체 ‘베를린 아우토프라이’(Volksentscheid Berlin Autofrei)는 2020년부터 자동차 없는 안전한 도시 만들기 운동을...

2009-10-21 | 네덜란드 베스트 북 디자인

지난 한 해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책들 가운데 빼어난 북 디자인의 사례들을 선정하여 한자리에 모읍니다. 네덜란드 우수디자인도서재단과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네덜란드 베스트 북 디자인’입니다. 2009년에는 어떤 디자이너의 어떤 책들이 선정되었을까요. 참고로 네덜란드 북 디자인하면 떠오르는 그 이름도 역시 있습니다. 

2010-06-18 | 디자인 프로브 ‘메타모포시스’

2020년 팬데믹의 한 해를 지나며, 집은 그야말로 피난처이자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감염의 위험을 안은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때로 자신을 집에 가두어야만 했습니다. 아직 진행형인 팬데믹의 와중에,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상상된 근미래의 집을 되돌아봅니다. 디자인 프로브의 ‘메타모포시스’는 집을 일종의 필터로 규정하며, 외부의 나쁜 요소를 걸러내면서도 자연을 안으로 들이는 주거공간의 변형태를 연구했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극복한다는 다소 추상적인 주제가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Designflux 2.0에 글을 쓰려면?

Designflux 2.0는 여러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에세이, 리뷰, 뉴스 편집에 참여를 원하시면 아래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