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적 디자인 #2 아이돌 팬덤 비공식 굿즈

바야흐로 K-pop의 시대다. 이번 세기 들어 그렇지 않은 적이 없지만, 최근 몇 년간은 더 그랬다. 단순히 BTS가 빌보드에서 몇 위에 오르고 무슨 상을 탔다는 수준이 아니다. 한국에서 ‘아이돌 덕질’은 시대정신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아이돌 팬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뿐 아니라 보통의 한국인들, 정확히는 어떤 대상에 대해 애정을 쏟으려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를 제공하는 보편적인 행동 양식이 되었다. 하물며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아이돌 팬덤의 양태에 따른 덕질 대상이 됨을 피할 수 없다.

팬덤 문화를 향유하는 수용자들이 아이돌을 생산하는 연예기획사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엄청난 양과 질의 2차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사진, 영상, 팬아트 등을 재료로 쌓아 올려진 K-pop 아이돌 팬덤 문화는 그 자체로 일종의 시각문화로 존재한다. 이러한 아이돌 팬덤의 정서적 지향, 즉 애정이 시각화된 물질적 산물이 바로 비공식 굿즈다.

〈MOOD FOR LOVE〉 ⓒ 2020. NUNA V

애정의 톤&매너

아이돌의 비공식 굿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시각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우선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제작자(홈마)[1]의 열정 섞인 애정이다. 또, 굿즈의 주인공인 아이돌 고유의 매력 포인트도 담긴다. 여기에 홈마 자신이 가진 아이덴티티도 더해질 수 있다. 이 세 가지 층위는 모두 같은 이데아에서 파생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중 어느 측면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굿즈의 시각적 온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팬들은 저마다 자기 아이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소망)상이 있다. 그것은 보통 ‘귀여움’과 ‘멋짐’ 두 가지로 나뉜 뒤, 그 안에서 세분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사실 귀여움과 멋짐의 스펙트럼이 모든 아이돌에게 거의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매력을 자본 삼아 먹고 사는 아이돌이니만큼 저마다 가진 귀여움과 멋짐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시각화하는 인간의 표현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굿즈 디자인에는 일종의 장르적 컨벤션이 존재하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표현 기법 몇 가지를 추려 보았다.

첫째는 블랙&화이트로, 주로 ‘멋짐’을 표현하고 싶을 때 사용된다. 모던함이나 세련됨, 기본에 충실한 깔끔함을 강조한다. 굳이 톡톡 튀는 아이덴티티 컬러를 칠하지 않아도 굿즈의 본질인 사진과 영상으로 충분히 승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현으로, 영향력이 강한 홈들이 많이 사용한다. 여기에 한 가지 포인트 컬러를 별색으로 인쇄하거나, 돈이 많이 드는 후가공을 해서 고급스러움을 더하기도 한다.

둘째는 우주 콘셉트다. 까만 콘서트장 무대 배경에 별이 총총 쏟아지는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사진 없이 어두운 배경에 홀로그램박 등을 활용해 우주를 표현한다. 여기에는 십중팔구 ‘너에게 우주를 줄게’ 또는 ‘너는 나의 우주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셋째는 솜사탕 같은 파스텔 톤이다. 색상보다는 색조가 중요하다. 팬톤이 선정한 2016년의 색 로즈 쿼츠와 세레니티가 한참 유행하던 때는 분홍과 소라색의 조합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기에 담긴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청춘, 순정, 봄(‘너는 나의 봄이야’) 등 애정 표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귀여움’의 표현이다.

이러한 관습은 2010년대 중후반까지 꽤 고착화되어 있었는데, 최근으로 올수록 컬러 사용이 다양해지고 그래픽 모티브도 더 과감해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디자인 문법에서 탈피해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굿즈 자체의 콘셉트 기획력과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더 강조되고 있다.

〈BACK TO SEPTEMBER〉 ⓒ 2020. Made In 1997

제도권 디자인과의 동기화

비공식 굿즈의 화려한 사양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이 업계의 매출 규모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포토북 표지나 DVD 케이스에 금박, 은박, 색박, 홀로그램박 등 각종 박인쇄를 넣는 것은 기본이고, 형압, 별색, 에폭시, 도무송 등 각종 후가공도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더스트백에 담겨 배송되던 굿즈들이 최근에는 마치 플레인아카이브의 한정판 블루레이처럼 하드케이스 박스에 담기기도 한다. 박스까지 제작하지는 않더라도, 굿즈를 담은 에어캡 봉투의 색상에까지 콘셉트를 고려해 신경을 쓴다.

비공식 굿즈 디자인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그것이 그래픽디자인, 특히 아이덴티티 디자인과 브랜딩의 트렌드에 거의 실시간으로 동기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2018년부터는 굿즈를 담아 배송하는 박스와 에어캡 봉투가 프리뷰 이미지 상에서 ‘목업’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일례로 Iridescent Boy의 2020 시즌그리팅[2] 〈Nuhes〉에서는 에어캡 봉투가 마치 상품의 일부인 것처럼 당당하게 티저 포스터 안에 얹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대카드가 2018년 엔트리 럭셔리 라인으로 출시한 ‘the Green’의 프로모션 이미지가 곧바로 연상된다.

이외에도 ‘오늘의집’에서 한참 인기를 끌었던 마블링 패턴이 활용된다든지, 시즌그리팅으로 양장본 다이어리 대신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6공 다이어리를 제작한다든지 하는 시도들도 꽤나 시의적이다.

(좌) 〈Nuhes〉 ⓒ 2020. Iridescent Boy, (우) the Green ⓒ 2018. 현대카드

비공식 굿즈의 제작과정에 있어서 홈마는 아이덴티티와 콘셉트를 설정하고 패키지를 구성하는 주체지만, 직접 오퍼레이팅하는 디자이너 역할은 맡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커미션 디자이너가 온라인 이미지부터 인쇄되어 나오는 제작물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그래픽디자인을 담당하는 주체가 된다. 비공식 굿즈의 디자인 문화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전업이든 부업이든 디자인 행위를 매개로 경제활동을 하는 커미션 디자이너들이 동시대의 그래픽디자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 작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이 베리에이션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변화하는 디자인의 흐름에 뒤처지다 보면 도태되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굿즈는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에버그린 디자인이 아니라 당장 호응을 얻을 수 있는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순리다. 또한, 짧은 기간에 터무니없이 낮은 단가로 커미션이 이루어지는 업계 특성상 독자적인 디자인을 개발하기보다는 쉽고 빠르게 작업하면서도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쪽으로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치열한 브랜딩과 마케팅의 장

팬덤 내에서 형성되는 비공식 굿즈 시장도 엄연한 경쟁 시장이기 때문에, 홈마들은 자기가 제작하는 굿즈의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가한다. 물론 평소 업로드해온 사진과 영상을 통해 ‘품질’과 성실성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활동기간이 짧아 쌓인 데이터가 많지 않거나, 굿즈를 제작할 만한 퀄리티의 사진 촬영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 홈마가 포토북을 제작한다고 하면 누구라도 구미가 당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조건은 홈마 자신이 팬덤 내에서 다진 입지와 이미지다. 팬들이 굿즈를 구매하는 일차적인 동기는 그 안에 담긴 아이돌에 대한 사랑이다. 따라서 그들은 굿즈의 수익금이 최대한 ‘내 새끼’에게 돌아가기를 원하며, 수익활동을 많이 한 홈마들이 얼마나 서포트에 공을 들이는지 감시하기도 한다.

평소 별 실수 없이 애정 가득하고 정직한 모습을 보여 왔고, 압도적인 실력과 스케줄[3] 실적까지 갖췄다면 ‘리딩 브랜드’가 될 만한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다. 어느 정도 유력한 굿즈 생산자로서의 조건을 갖추었다면, 이제 홈마에게 남겨진 승부수가 바로 디자인 마케팅인 것이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방법은 도저히 입금하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특전을 만드는 것이다. 텀블벅에서 후원금액에 따라 전달 선물을 세분화하거나 얼리버드 기간 내 한정 수량을 판매하는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홈마들은 선입금 특전을 따로 구성해 얼리버드 구매를 장려하거나, 이벤트데이 특전[4]을 통해 빠른 구매 결정을 촉진한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특전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기획이 잘 통한다면, 마치 부록을 위해 잡지를 구매하는 것처럼 특전을 갖기 위해 본품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아이돌 인형의 원조 ‘체니덕’ ⓒ 2015. Citrus Thunder

아이돌 팬덤에서 수년간 그치지 않은 인형 신드롬을 일으킨 ‘체니덕’도 포토북 특전 출신이었다. EXO의 멤버 첸을 빼닮은 얼굴에 오리 옷을 입은 이 인형은 첸이 최애가 아닌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치사량을 뛰어넘는 체니덕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공세는 아이돌 팬덤에 불어닥친 인형 광풍의 티저에 불과했고, 이내 아이돌 인형은 공식 굿즈 시장으로 진출하기까지 했다. 인형뿐만 아니라 아이돌의 사진으로 만든 트럼프카드 세트, 키링, 뱃지, 해당 멤버의 팬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포인트를 모은 미니 포토북 등이 모두 이러한 특전 마케팅의 산물이다.

이외에도 ‘업계’에서 쓰이는 전략들은 굿즈 시장에서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의 콘셉트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여 고유한 브랜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Mr.Destiny[5]는 2015년 이래 모든 시즌그리팅에서 〈Here I Am.〉이라는 타이틀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2015년 EXO의 3집 앨범 〈Call Me Baby〉 발매 전 카이가 티저 영상과 함께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Here I Am Barcelona 10:10”이라는 글을 올려, 팬들로 하여금 다음 티저 공개 시각을 추리하게 했던 프로모션에서 유래한다. 그런가 하면 Nuna V[6]는 알파벳 ‘B’로 시작하는 단어를 뷔를 뜻하는 ‘V’로 바꾸어 타이틀을 짓고 있다. 〈Veautiful Hello〉, 〈Vreathtaking〉, 〈Happy Virthday〉 등이 그것이다.

〈Here I Am.〉 ⓒ 2019. Mr.Destiny

이처럼 비공식 굿즈 시장에서는 마치 기업의 CSR과 비슷하게 작동하는 이미지메이킹에서부터 단일 굿즈의 구매 촉진 전략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구매자를 확보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이를 통해 점점 더 창의적이고 발전된 디자인 산물들이 생산되고, 소속사가 만드는 공식 굿즈에 영감을 주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이렇듯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치열한 판촉 전략과 고도화된 디자인 마케팅은, 그러나 더 많이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자본주의의 목표를 좇지 않는다. 만약 수익이 목표였다면 차라리 그 노력을 좀 더 ‘돈이 되는’ 곳에 투자해 대성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막대한 열정과 노동력이 오로지 반짝반짝 빛나는 피사체, 아이돌에 대한 애정을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사실이다. 그야말로 사랑의 힘인 것이다.

[1]  홈마: 일명 ‘대포카메라’를 들고 아이돌 스케줄을 섭렵하며 높은 퀄리티의 사진을 찍는 팬으로, ‘홈페이지 마스터’의 줄임말이다. 팬페이지를 운영하지 않고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대포’나 ‘찍덕’ 또한 ‘홈마’로 통칭되지만, 그보다 활동 스케일이 더 크고 본격적이다. 직접 찍은 사진을 모아 포토북과 같은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기도 하며, 지하철 광고나 생일 선물 전달 등을 통해 주도적으로 아이돌을 서포트한다.

[2]  Iridescent Boy: 보이그룹 EXO의 멤버 세훈 팬페이지 이름 / 시즌그리팅: 달력이나 스케줄러를 위주로 구성되는 굿즈. 주로 연말연시에 출시된다.

[3]  스케줄: 콘서트, 각종 공연, 행사 참석, 방송 출연 및 출퇴근, 공항 입출국 등 아이돌이 공개적으로 수행하는 공식 일정을 말한다(방송국 출퇴근과 공항 입출국에 대해서는 공식 일정인지 사생활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홈마들의 활동 무대가 되며, 주로 동사형 어미 ‘뛴다’와 함께 쓰인다.

[4]  이벤트데이 특전: 특정 날짜에 입금한 구매자에게 주어지는 특전

[5]  Mr.Destiny: 보이그룹 EXO 멤버 카이의 팬페이지 이름

[6]  Nuna V: 보이그룹 BTS 멤버 뷔의 팬페이지 이름

Designflux 2.0 Essay Series
주변적 디자인⟫ 최은별

동시대 디자인의 주변부. 디자인사에서 아직 누락되지 않았지만 분명 누락될 것들을 엄선한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디자인학을 전공하고, 2000년대 디자인 공공성 담론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메타디자인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 현재 제주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세기 전환기, 한국 디자인의 모색 1988~2007』, 『행복의 기호들: 디자인과 일상의 탄생』에 필진으로 참여했고, 전자책으로 『잃어버린 미스터케이를 찾아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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