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식 집합주택의 꿈: 발터 그로피우스와 콘라드 바흐슈만

조립식 집합주택의 꿈: 발터 그로피우스와 콘라드 바흐슈만 (길버트 허버트 지음, MIT 출판사, 1984) The Dream of the Factory-Made House: Walter Gropius and Konrad Wachsmann (Gilbert Herbert, MA: Cambridge, 1984)

최근 MIT 출판사에서 20세기 후반에 출판된 서적과 최근의 모든 저널을 무료로 오픈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목록을 훑어보던 중 익숙한 이름 ‘그로피우스’를 어찌 그냥 지나치랴. 특히 조립식 대량생산 주택이라는 아이디어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충분히 시선을 끄는 주제이다. 물론 국내외에서 그로피우스의 블록 유닛 주택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왔지만, 이 책은 공법적인 면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또 유럽과 미국의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전개하고 있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모듈화, 표준화에 기반한 근대 디자인에서 출발한 조립주택(패브리케이션 fabrication)은 근대 디자인의 본질적인 의미를 재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가의 대량생산을 통해 주택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접근으로 볼 수도 있는 반면 삶의 환경을 동질화하는 문제, 그러면서도 또 모듈화를 통해 일정 정도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여러 입장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로피우스가 이 프로젝트를1910년대 바이마르에서부터 시작하여 데사우 시기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1950년대까지, 일생의 핵심적인 프로젝트로 지속했다는 점이다. 이 조립주택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는 실제 바우하우스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고, 프랑크푸르트, 슈트트가르트 등지에서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브론 시스템, 베를린, 1926년 경

‘조립주택’, 그리고 이에 기반한 ‘집합주택’ 개념은 양차대전을 겪으면서 각지로 확산되지만 지역과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르게 수용된다. 독일에서는 집합주택이 특히 1차대전 이후에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받아들여진 반면, 미국에서는 포디즘의 연장선상에서 산업적 생산에 대한 낭만적 꿈에 기반하여 수행된다.

1933년 바우하우스 폐교 이후 그로피우스는 유럽 각지를 오가던 중, 전 유고슬라비아에서 유태인 콘라드 바흐슈만을 처음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약 10년 후 미국에서 두 사람이 재회하면서 미국 산업자본주의를 배경으로 조립주택 사업이 재시도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집합주택 혹은 사회적 주택이 19세기부터 노동자들의 공동 거주지로 사용되어온 역사가 있어서 긍정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의 디자인은 대공황 이후 그리고 2차 대전 중에 미국 연방에서 시행된 거대한 주택 사업에 참여하지 못한다. 결국 미국에서 이 조립주택 프로젝트는 제조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상대적으로 작은 단위의 표준화 된 구조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변화된다. (‘패키지드’ 하우스 또는 ‘유연한(flexible)’ 하우스로 명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업은 1940년대에 일시적으로 붐을 일으키는 데 그치고 만다. 그로피우스와 바흐슈만은 모두 기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프로젝트 실패에 대한 평가 과정에서 그로피우스는 기술, 경제적 상황보다 더 큰 비전 즉 도시의 형태와 문화적 특성에 따른 수용 방식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 책은 조립주택과 집합주택이라는 주제를 통해, 바우하우스 폐교 이후에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 이주한 디자이너들의 행보도 보여준다. 당시 유태인들의 디아스포라를 통해 근대 디자인 형식이 각지로 전파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 중, 조립주택 방식이 적극 적용되면서 도시 풍경 전체가 변화된 전 팔레스타인의 사례 연구는, 바우하우스의 근대 디자인이 삶의 환경 조성에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텔아비브 시 풍경, 바우하우스 건축의 영향, 1933

이 책은 근대 대량생산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관한 본질적인 이슈들을 돌아보게 한다. 조립주택이 일반 공산품과 같은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는가? 모듈화 유닛 구조에서는 무엇보다 엔지니어의 역할이 강조되는데, 이 생산 체계에서 디자인은 어디에 위치하고 크레딧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디자인과 제조업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구조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도 빠지지 않는다. 표준화된 패널 구조를 바탕으로 한 유니버설 시스템에 대해, 구축적인 관점에서는 ‘닫힌 시스템’으로 여겼지만, 디자인 시스템 그 자체를 최종 제품으로 여기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본질적으로 유연한 접근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논의는 대량생산 방식에서 구조의 표준화와 모듈화의 유연성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지, 그 기준과 방식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알루미늄 벙갈로, 어셈블리 라인 생산, 미국, 1947년 경

아울러 그로피우스에 대해서는 바우하우스 이후 영국을 거쳐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교수로 초청되기까지의 여정, 콘라드 바흐슈만과의 만남과 협업 과정, 교육기관과 기업에서의 활동이 전기적으로 묘사되어, 그의 개인적인 면모도 친근하게 엿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독일에 거주할 당시 바흐슈만이 그의 집을 이 조립주택 방식으로 지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화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조립주택 개념이 이동식 주택(모바일 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고 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건축디자이너는 이동식 주택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삶의 조건 구축에 몰입한 진지한 고민에는, 자신이 의도나 의식과 관계 없이, 이렇게 어김없이 시대정신이 관통하고 있고 그 실천은 늘 미래를 향한다.

발터 그로피우스(좌)와 콘라드 바츠만(우), 제너럴 패널사(社)의 시험 주택 건설 현장, 뉴욕 퀸즈, 1946
콘라드 바흐슈만, 아인슈타인 저택, 포츠담, 독일, 크리스토프 앤 운막 기법 활용, 1929 (하)

 


The Dream of the Factory-Made House
Walter Gropius and Konrad WachsmannBy Gilbert Herbert

기사/글에 대한 소감과 의견을 들려주세요.

More

2011-07-06 | 영수증 다시 보기

2011년 〈아이콘〉 매거진 97호에서 ‘다시 생각해 본’ 대상은 영수증입니다. 보통은 들여다 볼 일 없는 이 작은 종이 조각을, 런던의 디자인 컨설턴시 버그는 정보 매체로 보았습니다. 버그가 디자인한 가상의 식당 영수증에는 응당 담겨야 하는 정보 외에도, 꼭 필요하지 않아도 읽어볼 만한 거리들이 담겨 있습니다. 가령 당신이 먹은 음식이 하루 중 언제 가장 잘 나가는지, 영양성분은 어떤지, 또 식당 주변의 가볼 만한 전시 정보라던지요. (...)

2011-06-14 | 캄파나 형제의 러그 디자인

브라질을 대표하는 형제 디자이너 움베르투 & 페르난두 캄파나의 2010년도 러그가 2011년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을 찾았습니다. 풀밭 위에 누워 있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평면이 아닌 입체로, 그러니까 봉제 인형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봉제 인형일까요. 또 그것에 담긴 함의는 무엇일까요.

2010-07-08 | 2010 서펀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2010년은 런던의 서펀타인 갤러리에 의미 있는 해였습니다. 개관 40주년에 매년 여름 선보인 파빌리온 프로젝트 10주년을 맞이한 해였지요. 여러 모로 기념할 만 했던 그 해, 서펀타인 갤러리가 선택한 파빌리온 건축의 주인공은 장 누벨이었습니다. 켄싱턴 가든의 녹음과 대비되는 강렬한 적색의 캔틸레버 구조물이 기하학적 형상을 이루며 존재감을 강변합니다. (...)

User Friendly : How the Hidden Rules of Design Are Changing the Way We Live, Work, and Play

<유저 프렌들리>라는 400쪽이 넘는 책부터 시작해 보련다. 한때 무슨무슨 프렌들리 식의 말이 유행했던 터라...

Designflux 2.0에 글을 쓰려면?

Designflux 2.0는 여러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에세이, 리뷰, 뉴스 편집에 참여를 원하시면 아래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