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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말을 한다면 #1 나의 짧은 생애

나는, 안락의자다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꿈꿨던 것일까? 하얀 쉬폰 커튼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연둣빛 잎사귀가 한껏 빛을 받고 있다. 옅은 베이지 컬러의 바탕에 나뭇결이 그려진 모노륨 장판에는 벌어진 커튼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눈부신 태양의 흔적이 찍혀있다. 이 고요한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바로 고양이. 하지만 고양이의 움직임은 이 순간을 전혀 훼방하지 않는다. 조용하고 얕게 들썩이는 숨 같아서, 오히려 고요를 더 고요하게 만든다.

나는 이 풍경 속에 있다. 높은 하늘과 높은 아파트가 시원하게 보이는 커다란 창문 곁에서 가만히 앉아있다. 나의 모습은 평화로운 풍경에 일조할 것이다. 사람들은 편안히 쉬고 싶거나 잠시 멈추고 싶은 마음과 나를 연결 짓곤 한다. 내 이름 앞에 붙은 ‘안락’이라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움’ 나는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만드는 사물이다. 나에게 붙여진 이름은 ‘안락의자’다. 모든 사물은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숟가락은 음식을 떠먹기 위해서, 연필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처럼. 그렇다면 나의 존재 목적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만드는 의자’였던 것이다.

근본 있는 의자의 대량 생산

중국의 커다란 공장에서 익히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조상이 있다고. 핀란드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무려 100년이라는 오랜 시간 전에 만들어진 의자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 지금은 수많은 의자에, 심지어 옷걸이에도 사용되는 나무를 휘는 곡목(bent wood) 기술이 확산 할 때 우리의 조상이 탄생했다. ‘파이미오 체어(Paimio Chair)’라는 이름의 그는, 결핵 환자들을 위해 지은 파이미오 요양원에서 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자작나무 합판을 구부려 만든 튼튼한 팔걸이에다 환자들이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 쉴 수 있는 기울기의 일체형 좌석 등받이가 결합된 모습은, 정말이지 머릿속으로 그려만 봐도 내 모습과 흡사했다.

작업자 아저씨들의 기계적인 움직임에 따라 이쪽저쪽 옮겨 다니는 동안 동료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자부심 같은 게 생겼다. ‘나는 근본 있는 물건이다!’라는 마음이 피어나며 괜히 당당해지는 것이다. 곡목 기술이 일상화 되고 대량 생산 시스템이 갖춰지며 우리 조상과 엇비슷한 수많은 종류의 자작나무 합판 의자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로 변주했고, 그 다른 형태 중에는 나도 속하지만, 우리에겐 기본적인 정신 같은 게 깃들어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신기한 건 ‘IKEA’라는 스티커가 붙은 나와 비슷한 형태의 친구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개수로 쌓여서 옮겨지곤 했다. 그와 나는 유사한 모양이었는데 서로 다른 이름이 쓰인 박스에 넣어졌다. 왜 그런지 궁금했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동료는 내가 그 장면에 반응을 보일 때마다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고 화제를 돌리곤 했다.

@moma (www.moma.org)
@artek (www.artek.fi)

이동, 이동, 이동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박스에 포장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던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그대로 지게차에 실렸고, 어딘가로 계속 옮겨졌다. 트럭에 실렸다가, 다시 커다란 컨테이너 안으로, 컨테이너는 하늘로 높이 올라가는 것 같다가 다시 어딘가로 내려갔다. 꿀렁대는 움직임이 미묘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한참 지났을까. 어느새 문이 열렸고 또 다시 지게차에서 트럭으로 옮겨졌고 땅 위를 달리는 거친 마찰을 온 몸으로 느끼다가 문이 열려 또 지게차에 실렸다. 밖은 한적하지만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진한 회색의 커다란 창고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한국이야, 한국.” 동료들의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는데,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지게차 소리에 눈을 떴다. 주변엔 다양한 크기의 박스가 가득했다. 정신을 차리고 동료에게 상황을 전해 들었다. 이곳은 한국의 물류 창고이고, 중국의 공장에서부터 이곳으로 옮겨져 왔으며 우선 여기서 지내다가 우리를 구입하겠다는 주문이 들어오면 곧장 택배 트럭으로 실려서 주문한 사람에게 배송이 된다고 했다. ‘당일 배송’이라는 시스템으로 이렇게 빠른 속도의 이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 그렇다면, 내가 완성된 의자로 변신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주문만 들어오면 되는 거였다.

나는 사람이 바로 앉을 수 있도록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진 의자가 아니다. 사용할 사람이 직접 나의 최종 형태를 만들어 내야 한다. 택배 박스에서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감싸진 나의 부분 부분을 꺼내어 하얀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완성시켜나가는, 조립식 의자인 것이다. 아주 합리적이지 않은가? 물건의 부피를 줄여 제품 운송 과정의 비용을 절약하고, 게다가 고객 스스로 조립을 하는 방식으로 노동 비용을 절약해 소비자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고객은 저렴한 가격으로 가구를 구매하고, 직접 조립을 하는 행위를 통해 내가 쓸 가구를 스스로 만드는 DIY(do it yourself) 체험도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족을 드높이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아무튼 나는 그날부터 매일매일 의자로 완성된 내 모습을 상상하며 주문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당일배송으로 도착한 곳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선택’되었다. 소식을 듣고 정말로 하루 만에 주문한 사람에게로 배송되었다. 커다란 사람 둘이 나를 포장한 박스를 거침없이 뜯었다. 찢어진 박스 틈 사이로 오후의 묵직한 빛이 보였다. 그와 함께 음식 냄새, 사람의 체취도 풍겨왔다. 아, 내가 있을 곳은 집이구나. 어느 누구는 사무실이나 카페 같은 곳으로 가기도 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단단하고 납작하게 포장된 박스 안에 있어서 그랬는지, 풀어헤쳐진 채 덩그러니 누워있으니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다.

“자 한번 해보자~”
“여기, 설명서 있네.” 
“됐어~ 안보고 할 수 있지.”

커다란 두 사람은 짧은 대화를 나누더니, 많이 해본 솜씨로 큰 어려움 없이 나를 완성해갔다. 나사와 육각렌치로 나의 부분들이 결합되고 단단하게 조였다. 온 몸이 분리되어 볼품없던 상태에서 완성된 의자의 모습이 되니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아 이제 정말로 사람을 앉히는 일을 하는 의자로 살아갈 수 있다니!

수유 의자. 이 집에 온 나의 목적은 명확했다. 솔직히 말하면 예상하지 못했다. 파이미오 의자부터 시작된, 나의 원래 목적이라고 하는 안락의자만이 미래의 모습이었다. 요양원의 환자를 보필하는 지고지순한 쓰임새의 꿈은 아니더라도, 크고 환한 거실에 놓여서 초록 식물이 내뿜는 신선한 내음을 맡는 평화로운 꿈을 꾸고 있었을까? ‘안락’이라는 단어가 아닌 ‘수유’라는 단어가 붙은 의자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의 꿈이 좌절될 것 같아 조금 불안해졌다. 

처음에는 이 일이 정확히 어떤 건지 몰랐다. 같은 박스에 포장된 친구들이 하나 둘씩 떠나며 던진 말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가 수유 의자에 딱이래.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부담이 없고 크기도 커서 아기를 안고 앉기에 꽤 편하대. 그럼 안녕.” 지잉 큰 소리를 내며 달려와 멈춘 지게차에 실려 떠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갸우뚱 했다. 아기는 누구며, 왜 아기라는 걸 안고 우리 위에 앉아야 하는 건지 상상이 잘 안됐다. 커다란 사람 둘은 나를 거실이 아닌 방으로 들여놓았다. 확 트인 거실의 시원한 개방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방은 나름 아늑하고 따뜻했다. 그날 전까지는.

수유 의자로의 시간

잘 알지 못하고 시작하는 일. 우린 사랑의 어려움을 잘 모르고 첫사랑을 한다. 상상과 다른 난감한 상황에 속수무책이다. 어디 사랑뿐일까, 일도, 결혼도, 육아도, 심지어 인생도, 모르기에 시작한다. 심지어 흔쾌히 시작한다. 무지가 용기인 것이다. 나의 시작도 그랬다. 의자의 형태가 되었다는 기쁨에 취했고, 새로 시작될 날들에 무작정 설렜다. 아, 물론 모든 걸 알았다 하더라도 선택을 바꿀 능력이 나에겐 없지만. 

바깥에서 부산한 움직임과 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사람 둘은 한동안 보이지 않았었다. 해가 뜨고 지는 빛의 움직임만이 내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변화였다. 꾸벅꾸벅 졸다가 다시 깨서 멍하게 있다 보면 공장의 소란스러운 시간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동료들이 해주었던 이런 저런 말들이 스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현관문으로 갑자기 들어온 왁자지껄한 소리가 방 앞으로 몰려오더니 벌컥, 방문이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몽롱한 공기가 순식간에 도망갔다.

많은 사람들이 데리고 온 건 나와 같은 물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둘둘 말린 이불을 벗겨내니 커다란 사람처럼 생겼지만 크기가 무진장 작은 사람이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은 그 작은 사람을 ‘아기’나 ‘아가’로 불렀다(간혹 ‘우쭈쭈’라고 부르기도 했다). 동료가 말했던 아기가 바로 이렇게 작은 생명체였다니! 아기는 큰 사람처럼 말을 하지 못했고 ‘끙애, 꾸앙, 아앙, 잉, 으응앙’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소리가 점점 커지고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아기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거였고, 그것은 대부분 배가 고프거나, 배설을 했으니 치워달라는 요구였다. 여기서 나의 역할이 필요했다. 배가 고픈 아기에게 커다란 사람이 ‘수유’라는 행위를 하기 위해 내 위에 앉았다.

큰 사람 중에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아기를 안고 내 위에서 음식을 먹인다. 그것은 고체가 아니라 액체, 그러니까 마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엄마의 가슴 부근에 아기의 입을 가져다 대고 먹이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작은 통을 가지고 와서 아기의 입에 물렸다. 상체를 의자에 한껏 기댄 엄마는 침대에 발을 올리고 무릎을 세워서 그 위에 아기를 눕히고 먹였다. 아이고 잘 먹네, 이제 안 먹을거야?, 아아앗 나온다, 으아 다 흘렸네, 배불러?, 많이 먹어야 쑥쑥 크지, 또 남겼네, 에휴… 같은 엄마의 혼잣말이 매번 들려왔고, 아기는 여전히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응대했다. 아니, 응대라기보다는 그냥 소리를 냈다.

해가 뜬 시간에는 대부분 엄마와 아기가 내 위에 앉았고, 달이 뜬 시간에는 아빠라 불리는 커다란 사람이 아기를 앉고 내 위에 앉았다. 아빠는 엄마보다는 조금 더 무거웠다. 그는 내 위에서 아기를 앉혀서 먹이고, 때로는 아기를 안은 채 잠이 들기도 했다. 처음엔 사람들이 내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상황이 뿌듯했다.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나는 일종의 사명감에 휩싸여 ‘수유’라는 그 일이 편안하고 무사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의 온 몸을 내주었다. 아기를 보며 웃거나 행복해하는 큰 사람들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뿌듯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망가짐, 회생불가

쉬는 몸짓과 노동하는 몸짓의 차이를 아는가? 의자에 앉는 행위는 동일해도 그 둘은 큰 차이가 있다. 아기를 돌보며 앉아있는 건 가만히 앉아서 쉬는 것과 달랐다. 큰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기가 울지 않고 최대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계속 자세를 바꾸거나, 본인이 아기를 들고 앉기에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움직여댔다. 무거운 사람 몸의 쉼 없는 움직임 덕에 나는 이곳저곳이 계속 눌렸다. 압력에 의해 조금씩 본래의 형태가 틀어질 때마다 견디기 힘들었다.

그뿐 아니었다. 이 방에 처음 와서 들었던 소리는, 배앵- 차가 지나가는 소리, “명품 가방 단 돈 만원에 판매합니다”하는 기계 목소리,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 밤이 되면 시작되는 술 취한 사람의 늘어진 목소리나 제어하기 어려운 웃음소리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기가 방으로 들어온 이후 창밖에서 들렸던 소리들은 인지되지 않는 배경음악이 되었고, 대신 아기의 울음소리를 끝없이 들어야했다. 의미를 읽어내기 힘든 울음소리. 그는 뭐가 그렇게 힘든지 요구를 해결해 주는 엄마의 손길을 느끼고도 끊임없이 울었고 또 울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그 소리에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 신호가 느껴졌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사람이 내 위에 앉으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기본자세로 앉았는데도 무게를 지탱하는 힘이 이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았다. 사람도 평소와 다르게 불편했는지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또 다시 앉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나를 바닥에 눕히곤 지퍼를 내려서 안을 확인했다.

“어, 끊어졌네? 여기 엉덩이 앉는 부분 끈이 끊어져버렸어.”
“아이쿠, 다시 이을 수 없나?”
“음… 어쩌지… 테이프는 떨어질 것 같고, 호치키스로 연결해볼까?”

그들은 응급조치를 하듯 나의 몸을 나름의 방식으로 수리했다. 나의 몸체는 등받이와 좌석을 통으로 이어서 만든 스테인리스 관 프레임에 압력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플라스틱 끈이 격자로 팽팽하게 묶여있었고, 그 위를 푹신한 스티로폼으로 감싸는 구조였다. 그런데 그 중 하나의 끈이 끊어지니 좌석 한부분이 푹 꺼져버린 것이다.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무게를 견뎠을까? 나의 원래 수명은 어느 정도였을까?

호치키스로 연결시킨 끈은 사람이 앉자마자 다시 뜯어졌다.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느다란 결을 따라서 찢어진 것이다. 회생불가라고 판단했는지, 사람들은 그 후 내 위에 거의 앉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 몸 위에는 입었던 옷가지들이 겹겹이 걸쳐지거나 어디선가 들고 온 쇼핑백 같은 짐이 올라왔다. 사람에 비해 훨씬 가벼운 것들이라 힘들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뿌듯함, 만족스러움 같은 감정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침대 곁에서 방구석으로 밀려난 건, 아이가 땅으로 내려오고 땅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아이는 아빠 엄마 품을 벗어나서 집 안을 누비고 다녔다. 공간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던 나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이에게 위험한 존재였다. 딱딱한 합판 다리에 부딪히거나, 위에 올라섰다가 아이와 내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질 수도 있었다. 나는 방의 끝에서 아이의 움직임을 지켜봤지만 사람들의 일상생활 대부분은 거실에서 이루어졌기에, 자는 모습을 보는 게 전부였다. 할 일이 없어진 나도 잠을 잤다. 하루 종일 잠만 잤던 것 같다.

남겨진 시간

이 집에 온지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바닥을 기던 아이는 뛰어다니고, 더 이상 의미를 알 수없는 소리가 아닌 큰 사람들과 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집을 통째로 옮기는 ‘이사’가 있었다. 이때 소파와 책장, 거실장, 식탁 등의 친구들은 함께 오지 못했다. 방 안에 있던 나는 이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진 못했는데, 망가진 나를 그래도 사용해보겠다며 거실로 꺼내놓았던 짧은 시간 동안 안부를 나눴던 관계였다. 

이사 날, 거실의 큰 창문이 창틀에서 분리되었다. 마치 집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그곳엔 큰 소리를 내며 위 아래로 움직이는 사다리 같은 것이 걸쳐졌는데, 집 안의 모든 짐들이 그 구멍을 통해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와 친구들도 이곳을 통해 집 밖으로 나왔다. 나는 밖으로 내려와 다른 짐들처럼 곧장 트럭에 실렸다. 그런데 나와 달리 소파, 책장은 트럭에 오르지 않고, 건물 밖의 작은 터에 세워졌다. 책장은 180도 돌아서 벽에 붙어있던 뒷모습이 보이는 상태로, 소파는 90도로 회전해서 길쭉한 형태로 세워져있었다. 모든 쓸모에서 벗어나 생의 마지막을 향하고 있는 슬픈 각도였다.   

회생불가라는 딱지가 붙은 줄 알았는데, 그래서 쓸모가 없어진 의자가 된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남겨졌다. 바깥에 덩그러니 서있던 친구들이 어디로 간지는 잘 모른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건 내가 회색 창고에서 느꼈던 그런 설렘, 누구에게 선택될 것이며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사용될지를 꿈꾸는 마음은 아니었을 거라는 사실. 찢어지고, 부서지고, 더러워지고 낡은 친구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이곳에 오지 못했다면 나도 그들과 ‘어떤 마음’으로 어디론가 실려 갔겠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상인데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 속에 있으니 나도 모르게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낡은 나의 몸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꿈꿨던 풍경이다. 커다란 창과 따뜻한 햇빛, 싱싱한 식물의 숨소리, 조용히 움직이는 고양이, 평화로운 분위기.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순간. 그런데 아무도 앉지 않는 의자가 되었다는 그 작은 사실이 나의 남겨진 시간을 자꾸만 계산해보게 한다. 한 줌의 불안이 이 평화를 흔든다. 나는 언제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

Designflux 2.0 Essay Series
사물이 말을 한다면⟫ 채혜진

사물의 일대기를 상상하는 일을 통해 우리의 일상 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것은 사물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다. 

채혜진은 디자인 연구자다. 건국대학교 디자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디자인 문화와 디자인 역사다. 현재 한국 주거 공간과 여성을 중심으로 나타난 디자인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생활의 디자인》, 《코리아 디자인 헤리티지 2010》, 《신혼집 인테리어의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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